도매, 우리는 '콤플렉스'지만 일본은 '프라이드'

우리 한국과 일본은 '도매상'이라는 업의 명칭에서부터 사고(思考)가 다르다. 우리는 업(業)에 대한 '계급(신분)'의 관점으로 보는데, 일본은 전통적인 상업의 한 종류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의약품 유통업계는, 도매상을 업으로 하면서도 이 도매상이라는 호칭에 대해 달갑지 않은 찜찜한 콤플렉스를 보여 왔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특히 경영자가 고학력 새 세대로 바뀌어가면서 노골적으로 부쩍 더 그랬다.

꽤 지난 얘기지만, 당시 식약청 모 국장이 "도매업계가 발전하려면 이름부터 고쳐라. 지금 21세기 첨단 세상에 진부하게 '도매'협회가 무어냐" 라고 하면서 개명하라고 권고한 일이 있었다. 비록 사적이라지만 '도매'라는 개념이 그렇게 낡고 진부한 것일까?

결국, 2014년7월 업계의 대표 조직인 도매협회가 '유통'협회로 개명했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분도 반론이 없었다. '도매'라는 업의 정체성(正體性)이 뜻한 대로 감춰졌다. 유통은 도매와 소매로 나누어짐에도 그 이후 의약업계에서 도매가 유통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왜 그랬을까. 이름만 바꾸면 자동적으로 위상이 승격되고 발전되는가. 진부(陳腐, 낡음)와 전통은 180도 다르다.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의 태두 '초당 김기운'은 “순금에는 도금을 하지 않는다"고 일찍이 갈파했다. 금칠로 위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금이니까.

왜 도매상이라는 단어가 그렇게도 싫을까. 장사하는 사람을 제일 밑바닥 신분으로 규정하고 '장사치, 장사꾼'이라 부르면서 천민으로 깔보았던 선비 제일주의, 조선시대의 첫 번째 척결되어야 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들 무의식속에서 알게 모르게 망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일까. '세일즈맨', '영맨(營man)' 등의 호칭에 그 일을 하는 분들조차 소름 돋는 듯 질색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리라.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다고 귀에 딱지가 박힐 정도로 배웠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러는 것 같다.

우리가 아주 멸시했던 상업과 공업으로 일군 경제력으로 국력을 키워 우리 조선을 멸망시키고 36년 동안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참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업과 상업으로 또다시 곧 일어나 경제대국을 건설한 일본은, '도매상'이라는 이름과 이 업에 자금심이 대단하다. 우리와는 정반대로 프라이드를 갖는다. 관련업계나 관련기관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제약업계는 필생의 역할분담 파트너로 도매상을 대우한다. 그래서 영업은 모두 도매에게 맡긴다. 제약업계의 도매상에 대한 매출비중이 무려 97%에 달하는 이유다.

□ 국내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는 없고 일본은 있는 것이 있다. '판촉기능'이다. 판촉기능은 의약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으로 마케팅의 꽃이다. 일본 도매유통업계는 이 판촉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의약산업 선진국 중 도매마진율이 6.3%로 제일 높다. 우리처럼 판촉기능을 안 하는, 미국 도매유통업계의 마진율은 2.7%, 영국과 독일 및 프랑스 등은 평균 4%다.(일본 '의약품도매업연합회' 자료)

따라서 우리 한국 도매유통업계의 2017년 가중평균 유통마진율 6.5%(일간보사 2018.5.2. 참조)는 앞으로 EU(영국,독일,프랑스 등)나 미국처럼 갈수록 계속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도매유통마진율은 차차로 거품이 꺼져가면서 결국 '하는 일'에 대한 적정 대가로 수렴되기 마련인 때문이다. 1976년 보험약가 책정에 참고하기 위해 보건사회(당시) 당국이 도매업체 표본조사를 했을 때 평균 도매마진율은 10.45% 이었다. 그때보다 지금이 4%가량 거품이 사라진 것이다.

일본 도매유통업계는 20여 년 전 1990년대 중반에 기업공개 붐(boom)이 일었다. 그 당시 상장(上場)을 주도했던 '산에스(サンエス)', '유니크(ユニック)', 부전(富田)약품 및 구굉(九宏)약품 등 도매업체들의 년 매출액 규모는 약 5백억~천3백억 엔(약 4천억~1조 원, 당시 환율 약 100엔=800원)정도였다.

당시 일본 의약시장 규모가 우리보다 약 10배 정도 컸으니까 이를 감안하여 우리 한국 시장에 대입?환산해 보면, 국내 도매유통업체 년 매출 약 4백억 원~1천억 원(4천억~1조원÷10)에 해당할 때 일본 도매업체들은 벌써 기업공개를 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들 보다 매출 규모가 큰 일본 도매업체들은 물론 이미 '기업공개 붐' 이전에 모두 공개됐다.(藥事ハンドブック '96, 藥業時報社)

하지만 국내 도매유통업계의 경우, 2017년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회사가 2개사, 5천억~1조 원인 회사가 3개사, 3천억~5천억 원인 회사가 9개사, 2천억~3천억 원인 회사가 8개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장한 회사는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기업을 공개하여 상장한다는 것은 증권시장에 명패를 내건다는 뜻이다. 때문에 아무 기업이나 공개가 허용되지는 않는다. 증권거래소로서는 공신력을 위해 경영실적이 좋고 장래가 유망한 우량 기업만 골라서 상장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까다로운 소정의 상장심사기준을 정해 선별하고 있다.

따라서 일단 상장만 되면 그 회사는 공신력을 얻는다. 주식의 가치가 향상되고 자금이 필요할 때 주식발행을 통해 직접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비용 즉 이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기 때문에 유동성이 풍부하고 안정성도 높아지게 된다. 각종 세제상의 혜택도 있고 회사명성이나 지위 향상은 물론 광고효과의 제고 등 장점이 많다.

그러나 상장을 하면, 기업공시 의무가 부과되어 회사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경영과 재무에 대한 정보들을 투자자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 줄 의무가 주어져 만약 이를 어기면 강력한 제제를 받게 된다. 또한 비상장기업보다 훨씬 까다로운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고, 주식을 통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으며, 공시제도를 통해 기업의 비밀이 투자자 또는 경쟁기업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등 단점도 상당하다.

그런데, 국내 도매유통업계가 상장 능력은 갖추어져 있는데 단점 때문에 상장을 안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상장은 하고 싶은데 요건이 안 돼 장점은 많지만 상장을 못하고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도매유통업체들이 이미 20여 년 전에 기업공개를 한 바 있고, 국내 제약업계도 매출액 상위 71개 회사가 상장을 한 것을 보면, 물론 사정이 있겠지만 상장의 단점 때문에 국내 도매유통업계가 단지 공개를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지지만은 않는다.

우리 한국 의약품 도매유통업계, 이상을 유념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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