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면책보다 정확한 인과 관계 찾고 차근차근 종합 접근해야

병의원과 약국 현장에서 잠잠해진 고혈압치료제 발사르탄 문제가 제약 산업 현장을 한껏 긴장시키고 있다. 발사르탄 사태의 문제 파악과 인과 관계 분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허가와 약가 영역의 수단들을 얼버무린 '칵테일 처방'이 거론되는 탓이다. 발사르탄 사태 초기 이곳 저곳서 저가 중국산 원료 사용이 문제네, 제네릭 품질이 낮네, 제네릭이 너무 많아 신속한 유통실태 파악이 어렵네 등등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더니, 아니나 다를까 '허가는 조이고, 약가는 낮출 수 있다'는 익숙한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국회 의원들이 국정감사를 통해 추궁하고, 정부가 무엇인가 대책으로 제시한 후 본격적인 액션에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섞인 예상이 나온다. 

발사르탄 사태와 직접 관련된 정부의 조치

과연 발사르탄 사태의 진단은 MRI 촬영을 통한 입체적 사진일까, 엑스레이처럼 평면적일까? 식약처는 이미 '의약품의 품목허가 신고·심사 규정' 일부 개정을 통해 제약회사 등이 허가 신청할 때 시약, 출발 물질, 중간생성물질 등의 안전성 입증자료를 제출하도록 행정예고 했다. 발사르탄 원료물질에서 발암 의심 물질 NDMA 생성은 원료회사나 완제 제조회사 누구도 몰랐고, 완제 제약사 원료 관리 항목에도 없었던 터라 식약처의 이 조치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돼도 NDMA와 같은 모든 유해 의심 물질을 찾아내기 어려운 상황은 존재하는 것이라 제2, 제3의 NDMA가 발견될 때 기업들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로인해 기업들은 안전성 입증자료를 만드는 부담과 함께 제조물책임법에 저촉될 수 있는 또다른 걱정을 떠 안게 됐다.     

추후 발사르탄 사태에 대비하려는 식약처의 후속 조치는 부담스럽지만  그나마 인과 관계를 말할 수 있으니 납득 되지만 복지부 조치는 뚱딴지같다. 복지부는 발사르탄 사태 초기 해당 약물을 복용하던 소비자들의 불안과 의료 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약물로 대체 처방·조제하면서 쓰인 추가 건보 재정분을 제약회사에서 받아내기 위해 손해배상청구를 검토하겠다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런데 중국의 원료 공급회사는 물론 국내 완제 제약회사에게서 NDMA 생성을 알면서도 방치한 고의성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다, 식약처조차 관련 시험규정을 두지 않은 조건에서 어떻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책임없는 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발사르탄 시태서 파생된 엉뚱한 문제의 진단과 처방

발사르탄 원료 문제가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것은 맞고, 제네릭 숫자가 많아 혼란의 정도가 더해진 것도 사실에 가깝다. 그래서 '제2의 발사르탄 문제가 재발되지 않게 하려면 안전한 원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대책에 초점을 맞춰야 적격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식약처의 '의약품의 품목허가 신고·심사 규정' 개정이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의 원인 진단은 엉뚱하게도 ▶제네릭의 과도한 난립 ▶공동(위탁) 생동 도입 ▶보장된 제네릭 약가를 향하고 있다. '신속한 종합대책'을 주문하는 언론과 국회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 방식에 당국이 허겁지겁 반응하며 눈에 띄는 오래된 문제들을 죄다 모아 재구성한 탓이다. 감기에 항생제를 포함한 여러 약제를 무더기로 칵테일 처방해 부작용을 부르는 것과대체 무엇이 다른가. 신속한 종합대책이란 게 뚝딱 나올 수는 있을까.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태생적 문제가 제네릭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제약회사들이 제네릭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고, 이로 인해 한정된 시장 안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이 비즈니스를 통해 얻은 이익을 종잣돈 삼아 R&D 투자금을 확보하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데 필수적인 생산시설을 세우고, 어느 산업군보다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데 말이다. 단적인 예로 2012년 4월 일괄약가인하를 했지만 제네릭 숫자가 줄었나? 그렇지 않다. 매출이 떨어진 제약회사들 가운데 적잖은 회사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웃소싱에 나섰고, 제약업계 안에 또다른 산업군이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된 CSO를 탄생시켰을 따름이다.

산업 문제 해결은 1차 방정식 아냐...건보공단 연구결과 좀 봅시다

제약산업이라는 게 약가를 건드린다고 제네릭 숫자가 줄어드는 1차 방정식이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또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허가 측면의 공동(위탁)생동 폐지나 축소도 마찬가지다. 기업별 규모에 따라 미치는 영향도 각기 다르다. 그래서 입구를 좁히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약가를 건드리면 큰 기업이 먼저 휘청거리고, 공동생동을 폐지하면 중소기업들이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발사르탄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숙제처럼 제출하려는 소위 '종합개편안'은 산업의 장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복지부와 식약처가 소신을 갖고 임해야 한다. 납품기일을 맞춰야 하는 공산품처럼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제약산업에 관한 합리적 정책 결정과 정책 설계를 하려면 산업안의 여러 문제들의 원인 분석과 인과 관계 규명은 필수적이다. 불행하게도 아직 종합적인 연구가 시행된 적이 없다. 있다면, 새 정책이 타당한 이유를 뒷받침하는 연구들 뿐이다.     

때마침 건강보험공단이 발사르탄 사태를 계기로 요구받는 '종합대책'에 부응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단은 9월 의약품의 개발·생산·공급·유통·구매에 이르는 제약유통산업 전반의 현황과 향후 대응해야 할 정책과제들을 점검하고, 건강보험 지속가능성과 제약유통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정책 대안 도출을 목적으로 2억5000만원 규모의 외부 연구를 실시한다. 공개된 연구 내용은 ▶우리나라 제약산업 현황과 정책방향 ▶제네릭 의약품의 공급구조 분석 및 효율적인 약품비 관리방안 ▶신약의 공급 구조 분석 및 제약유통산업 효율성 제고 방안 ▶의약품의 유통 거래 선진화 방안 ▶의약품 공급 구조의 미래 비전과 과제 등이다. 이 정도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만 하지 않은가. 복지부와 식약처가 산업을 분재로 만들지 않으려면 '신속한 종합대책'이라는 사회적 강박에서 풀려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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