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사회장이 되려는 인물과 그들을 선택하는 사람들

다시 약사회 선거 시즌이 돌아왔다. '내 한 몸 바치겠다'는 인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문 언론들도 일간신문 정치면처럼 갖가지 역학 관계를 들먹이며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한 시나리오를 써 내고 있다. 약사들의 직접 투표로 치러지는 약사 회장 선거에는 정당 행세를 하는 동문회가 움직이고, 언론사의 여론조사가 가세해 양념을 친다. 후보를 깎아내리는 미확인 루머가 정처없이 떠 돌고, '매약노와 같은 못된 프레임 덧 씌우기도 빠지지 않는다. 선거 이후 논공행상을 염두에 둔 정치색 짙은 동문회 인사들의 이합집산도 활개를 친다.

콘텐츠가 없는 선거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그동안 약사회 선거에선 미래 약사 직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없었다. 비전과 철학이 실종된 선거였다. 후보들은 '비전 경쟁' 대신 과거에 풀지 못해 현재의 숙제로 남은 오래된 구조적 문제를 당장이라도 자신이 풀어낼 것처럼 말한다. '감옥 갈 각오로 풀겠다' '유권자들의 머슴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약사 회장 선거가 리더를 선출하는 자리지, 투사나 머슴을 뽑는 자리인가. 전문언론에 비싼 광고비를 내고 산 금쪽같은 자리엔 '성분명 처방 실현, 한약사 문제 해결, 약국수가 대폭인상' 같은 '단골 메뉴'만 나열하고 만다. 이런 공약들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약사는 없다.

선거가 끝나 새 회장이 나온 후에도 리더의 '약사 직능에 관한 비전'이 무엇인지, 7만 약사들을 어디로 이끌어 가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당연한 결과다. '비전과 철학'을 말하는 후보도 없었고, 비전과 철학이 뭐냐고 따져 보려는 유권자들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런 가운데 언론에 약사직능과 관련한 문제가 보도되고 나면 뽑아 놓은 리더는 이곳 저곳 허겁지겁 달려가고, '안 되겠다, 전체 약사들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집회 총 동원령을 내린다. 뭐든 강력히 막아낼 것 같았던 리더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는 약사들의 속은 뭉개질 수 밖에 없겠지만 따지고보면 보면 자업자득이다. 소통의 출발점인 비전과 철학의 공유 과정이 없었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며 뽑아 놓은 탓이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과거가 그랬다면 2018년 선거에서는 후보들의 비전과 철학 경쟁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에 대한 후보의 선언도 필요하고, 유권자인 약사들의 집요한 추궁도 필요하다. 약사 사회에 미칠 영향도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4차 산업혁명을 말하거나, 정부 정책의 변화와 약사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달라진 인식도 파악하지 못한 채 약국 수가 대폭 인상, 성분명 처방 실현 같은 오래된 유행가를 부르는 후보는 곤란하다. 시민의 눈에 비친 약사의 이미지는 시계열적으로 어떻게 변모했는지, 현재의 이미지는 무엇인지, 그래서 자신은 어떻게 하겠다는 소신을 말하지 못하는 후보도 마찬가지다. 

과거 약사회선거 개표 장면
과거 약사회선거 개표 장면

얼마 전 성남지역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이 주최한 '성남시의료원 성분명처방 실현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김종명 성남시의료원 공공의료정책연구소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골자인 즉, 의약분업 초창기 자신은 성분명처방을 옹호했으나 이젠 '성분명처방이 의료의 공공성에 기여할까'라는 관점에서 회의적이라는 내용이다. 동네약국이 많던 분업 초창기와 다르게 지금은 의원 옆에 약국이 있고, (오리지널 제네릭 동일가정책에서) 재정절감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 소장의 주장이 100% 맞다는 게 아니라 환경은 변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지탱하는 논리도 변하게 된다는 의미다.

질병 예방에 초첨을 둔 정부의 1차의료 활성화 정책에서 약사의 소외도 같은 맥락이다. 복약지도 같은 역할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약사의 정책 참여논리에 대해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조차 '그건 의사가 해도 되잖아'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약사 역할들이 의사 과잉시대에서 변형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제약산업 생산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약사 일이었지만, 약사를 구하기 어려워진 현실에서 다른 전공자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이다. '어찌됐든 나는 막는다'라는 의지는 가상하지만 모든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약사정체성과 미래비전은 재점검돼야 할때다.        

이번 약사회장 선거가 약사들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비전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려면 정당 노릇을 하는 동문회는 빠져야 한다. 내 동문이 회장이 된다고 명예롭거나 약사의 삶이 나아지는가. 그럴일 없다. 동문회를 앞세워 자신의 이익을 쫓는 일부의 욕망만 채워줄 뿐이다.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자고 비전도 철학도 없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약사직능을 내팽개치는 일이다. 현재 처한 약사직능의 위기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인물, 정책이 만들어지고 변하는 과정을 민감하게 파악낼 수 있는 인물을 찾으려는 노력과 민심에 다 부응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인물의 배제가 다 필요하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