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세상에, 이들 애환의 눈물 누가 닦아주나

다국적 제약회사는 내년부터 각종 판촉활동 때 어떤 종류의 판촉물도 쓰지 않기로 했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내년부터 각종 판촉활동 때 어떤 종류의 판촉물도 쓰지 않기로 했다.

우리 제약시장은 얼마 전까지 100% 인적판매 시장이었다. 인적판매(personal selling)란 방문영업 또는 대면(對面)영업을 말한다. 영업사원(Marketing Specialist, MS, 보병)과 판촉사원(Medical Representatives, MR, 포병)이 직접 병의원과 약국 등을 누비고 다니면서 행하는 마케팅 활동이다.

이러한 인적판매 활동에서 금과옥조처럼 널리 알려진 금언(金言)이 있다. '제품(상품)을 팔기 전에 먼저 자신과 회사를 팔아라'는 말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므로 제품을 구매할 때 대부분 이성(理性)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효용성이 같거나 엇비슷한 수많은 제품들 중 고객으로부터 선택받으려면, 친지 이상의 친근감(fellowship)과 신뢰감을 먼저 조성하여 고객의 마음을 활짝 열어 놔야, 보다 쉽게 판촉과 판매 활동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언의 실행 수단들, 예컨대 훌륭한 매너(manner)나 정중하고 유용한 각종 화법(話法) 등을 체득한다거나, 미리 준비해 간 가방 속의 모닝커피를 아침 일찍 고객과 함께 마시는 것 등과 같은 수단들은, 오래전부터 고전(古典)이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갈수록 그 강도가 더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도(程度)를 넘으면 '노무(勞務)형 리베이트'로 인식돼 '약사법 제47조제2항'에 의거 위법이 되는 데도 말이다. 제약시장의 치열한 경쟁이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

▲ A사는 '영업·판촉 사원'에게 컴퓨터 자격증을 따도록 해, 고객의 업무관리 프로그램 사용법을 철저히 가르친다. 고객의 행정업무를 내 일처럼 도와주도록 하기 위해서다.

▲ B사는 고객관련 행정전문가, 의료정보관리전문가 및 의료보험전문가 등을 채용해 마케팅(영업) '드림팀’을 꾸려, 신생 및 기존 고객을 공략하고 있다.

▲ C사는 노무사 또는 재무설계사의 자격증이 있는 인재를 영업 또는 판촉사원으로 채용한다. 고객 임직원들의 임금이나 고용문제를 해결해주고 고객의 경영을 상담해주기 위함이다.

▲ 영업·판촉 사원이 고객의 약제비 청구 업무를 대신 해주고 받아 주는 것은 예사다.

이러한 '자신과 회사를 파는 서비스의 전문화나 차별화'는 반응과 효과가 좋다. 그 결과로 이들은 목표달성이라는 기쁨을 얻는다.

하지만, 그 그늘은 아주 어둡다. 영업·판촉 사원을 만만하게 보는 상당수 고객들의 '갑질'은 괴롭힘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이들에게 피눈물과 직업에 대한 회의(懷疑)를 안겨줌으로써 결국 그 직업을 떠나게 만든다. 그 갑질은 영업·판촉 사원들의 이직률이 유난히 높은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어느 고객은 영업사원에게 오전 6시에 문자를 보내 해외로 여행 떠나는 자기 누나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다른 고객은 품절돼 공급이 안 되는 의약품을 어떻게든 가져오라 강요하기도 했다. 어떤 영업사원은 고객의 자녀등교 픽업을 비롯해, 빵 배달을 해주고 핸드폰을 개통해 줬다. 고객의 사무실 내 고장 난 컴퓨터와 전구 등을 수리해 주거나 바꿔주는 일도 한다.

또한 어느 영업사원은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이삿짐센터 직원, 흥신소 사설탐정, 고객의 판촉물 배포 아르바이트생 및 부동산 중개업자 등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리베이트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 분들이 전하는 단편적인 내용들이다. 따라서 실제 의약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을 모두 파악해 본다면 이 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기상천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이러한 것들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곁가지 문제에 불과하다. 숱한 애환(哀歡)을 겪으면서, 우리 한국 제약시장을 세계 15위권의 반석에 올려놓은 영업·판촉 사원들에게 지금 진짜 본질적인 위기가 닥치고 있다. 이들의 설 자리가 자꾸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제약업계의 영업 및 마케팅 활동 트렌드(trend)가 급변하고 있다. '인적 대면방식'에서, 비대면(非對面)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을 활용한 판촉 활동과 전자상거래 쇼핑몰(shopping mall) 영업이, 인기를 끌고 자리를 굳히면서부터다. 불법 리베이트와 이를 잡는 공적·사적 제도가 갈수록 다양하고 강력해 지고 있는 것이 이러한 변화 촉진에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약품의 'HMP몰'과 대웅제약의 '더샵' 및 일동제약의 '일동샵' 그리고 보령제약의 '팜스트리트' 등 제약업계의 '온라인 몰'이 성업 중이다.

GSK는 보건의료전문가 전용 포털 'health.gsk.kr'를 운영하면서 실시간 채팅서비스 '메디챗(MediChat)'을 오픈한 바 있다. 의료인들은 간단한 채팅만으로 회사 제품과 관련된 전문적인 학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한국로슈'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의료진을 방문해 제품 등 관련 정보를 전달하던 기존의 인적 방식에서 탈피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수준 높은 의약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update)하며 제공한다.

한국MSD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의학정보를 전화로 서비스하는 '콜미'를 운영 중이다.

한국릴리는 온라인 디테일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멀티채널 마케팅 'lillyon.co.kr'을 통해 의사와 판촉사원이 대면하지 않고, 제품 및 학술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한다. 의사가 편한 시간에 제품 담당자와 '온라인' 위에서 만나 설명을 듣고 질문할 수 있다. 의문 나는 사항을 바로 해결할 수 있고 서로 토론도 가능하다.

이렇게 제약 세상이 바뀌어 가는 동안, 우리나라 제약시장의 세계적 확대의 주인공들인 영업 및 판촉 사원의 일자리 땅은, 이들의 잘 못도 아닌데 가는 시간과 함께 좁아만 간다. 앞으로 이 이들이 흘릴 눈물은 누가 닦아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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