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패거리주의' 자성...코디네이팅 도입 한목소리

[종합] 국회, 공익적 임상연구 발전위한 정책토론

'공익적 임상연구'라는 용어는 아직 대중의 언어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 용어는 정부가 1840억원을 들여 향후 8년 간 추진하기로 한 연구사업을 통해 비전문가의 언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미 신약이나 신의료기술 등의 사후평가 방식으로 공익적 임상연구를 활용해야 한다는 데 거의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여기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다루고 있는 정책과제 등과 연계 필요성 등이 새롭게 제안되고 있다. 또 코디네이터센터 도입이나 재원 등에 대한 논의도 앞으로 한층 더 활발하게 이어진 전망이다.

이명수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주최하고 국민건강임상연구 코디네이팅센터가 주관해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우리나라 공익적 임상연구 발전을 위한 정책토론회'도 한 단계 더 진화된 고민과 대안을 내놨다.

공익적 임상연구란=김민정 국민건강임상연구 코디네이팅센터 연구개발지원팀장은 이날 주제발표에서 공익적 임상연구의 개념과 범위를 설명하면서 임상시험과 임상연구는 유효성과 효과성에 있어서 간극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 간극은 진료현장 근거 생산을 통해 메울수 있는데 이게 바로 공익적 임상연구가 다뤄야 할 의제다.

구체적으로 현 제도상 허가 임상(3상 RCT)을 포함한 임상시험과 시판후 연구가 제공한 근거를 기반으로 의약품 등이 사용되고 있다. 반면 허가범위 초과나 임상시험과 다른 인구집단 영역의 경우 관련 근거가 희박하다. 특히 연령대 차이(노인, 소아), 인종이나 성별의 차이, 다른 동반질환을 가진 환자, 중증도의 차이, 다양한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 낮은 약물순응도 등 임상시험과 다른 인구집단에 사용했을때 간극은 더 커질 수 있다.

영국 NIHR이나 미국PCORI는 이런 간극을 메우기 위한 공익적 임상을 수행한다. 김민정 팀장은 이런 사례를 벤치마킹해 공익적 임상연구를 실행할 접근 모델을 제안했다. 연구수행 지원을 위한 공공재 투여, 공공조직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거버넌스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환자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하는 과정, 사사로운 이해관계 개입을 배제하고 공적 가치를 생산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공적가치의 창출로 이어지는 일련의 체계다.

남효석 연대의대 교수는 이런 공익적 임상연구에 부합하는 사례로 '허혈성 뇌졸중에서 정맥 내 혈전용해 치료 및 동맥 내 재개통 치료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선별기준 개발 및 근거생산' 연구사례를 이날 발표했다.

2016년 5월에 시작해 올해 10월 마무리되는 이 연구에는 전국 34개 병원이 참여했는데 응급실 CT 영상에 기초한 선별기준과 동반질환 지표에 근거한 선별기준을 개발에 허혈성 뇌졸중의 진료지침과 급여기준 등을 마련하고, 궁극적으로는 혈전용해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를 높이면서 의료비를 절감하는 게 목표였다.

남효석 교수는 이 연구성과로 정맥 내 혈전용해치료와 동맥 내 재개통치료 등을 20% 감소시켜 직접 의료비를 매년 70억원 이상 절감하고, 환자선별에 따른 치료효과 향상 및 사망률 감소, 불필요한 고위험 치료 회피 및 심각한 합병증 방지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도 패널토론에서 "3년치 연구 중간결과로 아직은 기간이 짧다. 예비타당 조사를 할 때는 9년으로 했다가 8년으로 조정됐지만 추후 결과가 나오면 연간 100억 이상의 건보재정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공익적 임상연구, 각종 보건정책과 만나야=주제발표자로 나선 윤영호 서울의대 교수가 던진 화두다. 현재 정부는 급여 적정성 평가와 함께 위험분담제, 선별급여, 각종 시범사업 등 한시적 급여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윤영호 교수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참여한 2017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 간 안건으로 올라온 시범사업이 11개나 된다.

이중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도 포함돼 있는데, 이전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없이 본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이 건정심에 안건으로 올라왔다. 세부내용을 보면, 이 시범사업은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2016~),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2014~).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2012~), 고혈압·당뇨등록관리사업(2007~) 등을 단계적으로 통합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윤영호 교수는 비교우위 검증을 위한 서비스 모델 설계와 평가설계 부족, 시범사업 미참여환자군과 비교우위 및 기존 만성질환관리사업들과 비교우위, 비용-효과성 분석 설계에 대한 고려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시범사업에 대한 보완적인 공익적 임상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심사평가원 산하에 시범사업전문평가위원히를 설치해 시업사업들에 대해 설계단계부터 평가까지 독립된 전문위원회를 통해 평가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허가초과 항암요법의 경우도 2013년 528건, 2014년 474건, 2015년 421건, 2016년 424건, 2017년 8월 341건 등 매년 심의가 이뤄지는데 사후평가를 통해 급여전환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지적했다.

특히 2006년 이후 3000여개 요양기관이 신청한 242개 허가초과 항암요법이 승인됐지만 연도별 사용환자수와 치료성과 등의 사후평가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윤영호 교수는 따라서 항암제 사용의 적정관리와 보장성 강화, 국민의료부 부담과 위해성 검증을 위해 체계적인 사후평가에 관한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연계되는 게 바로 공익적 임상연구다. 윤영호 교수는 의료기술 평가, 건정심, 허가초과 항암제 등과 공익적 임상연구를 연계하면 환자의 경제적 부담 경감, 한시적 급여에 대한 근거와 가치 기반 재평가 및 보완, 신의료기술과 첨단약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 향상, 근거중심 진료를 통한 진료의 질 향상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허가초과 약제 사용승인제도, 예비급여 등에 대해 '리얼월드 데이터'를 토대로 성과연구, 비용효과성 연구, 비교효과 연구 등 공익적 임상연구를 수행해 사후 의사결정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건정심과 연계는 보험등재나 퇴출 등을 판단하는 중요한 '리소스'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과 건강보험정책국이 긴밀히 협조하고 연계해야 한다고 윤영호 교수는 강조하기도 했다. 마침 정부는 '환자중심의료기술 최적화연구사업'에 내년부터 매년 230억원 씩 8년간, 1840억원을 투입하기로 방침을 정해놓은 상태다.

윤영호 교수는 ▲전문가, 환자,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협력사업단 구축 ▲공공의료기관-공단-심평원-보건의료연구원 간 협력체계 ▲건보재정의 일정비율 투자재원으로 활용(미국 가입자가 2달러 부담, 영국 의회 재정지원) 등을 공익적 임상연구 기본방향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또 사업내용으로는 건강보험자료와 공공의료기관들의 환자등록, 전자의무기록 네트워크와 연구팀 구성, 건강보험 정책결정에 필요한 급여/비급여 자료 공공빅데이터 분석 등을 열거했는데, 이를 공익적 임상시험 조건부 급여 등과 연계할 수 있다고 했다.

'공익적'의 부재 또는 난맥상=허대석 서울의대 교수는 패널토론에서 "특정 병원을 주관기관으로 지정하면 다른 병원 전문가들은 안간다. 또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새로운 세력이 생겨서 관련학회와 엄청난 갈등을 불어오기도 한다. 과거 경험된 이런 병폐는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희영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교수도 "공익적 임상연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은 이뤄진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선행연구를 보면 정책연계성이 낮은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건강 임상연구사업인데 왜 그 과제가 선정된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2년전에 항암제 재정독소 관련 주장을 듣고 충격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심사평가원 등에 연구를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호응이 없었다. 그런데 이걸 지금 건보공단이 하고 있다. 로봇수술이나 카바수술 등 몇몇 연구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환자들이나 국민이 관심없는 주제, 연구자 관심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 공익적 연구는 면역치료나 마눌주사 문제 등 국민적 관심 주제를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국일 과장은 "환자단체가 연구주제를 제안할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설계하겠다"고 했다.

공익연구 코디네이터 설치 한목소리=허대석 교수는 "2004년부터 몇년간 질환별 연구센터를 대학별로 선정해 지원했었다. 논문은 많이 썼는데 비판을 받았던 게 주제나 결과가 주관책임자의 '수월성'에 의존했을 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업단이나 코디네이팅센터가 필요하다. 누군가 전체적인 흐름을 코디네이팅해야 하지, 개인의 창의에 맡겨선 안된다. 코디네이터 센터는 공공기관이 맡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흥태 국립암센터 교수(폐암센터 수석의사)도 "각자 책임연구자가 원하는 과제가 아니라 국가적 아젠터를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센터가 필요하다. 만들려면 사업단보다는 기구로 가는게 맞다. 또 결과물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암의 경우 장기적인 추적이 필요한 만큼 별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희영 교수 또한 환자중심의 공공적 거버넌스로 공익적 연구가 접근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코디네이터센터를 공적영역에 설치하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김국일 과장은 "(코디네이터센터 등 관리기구를) 공적 조직에서 담당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은데, 민간에서 가져가서 하는게 유리한 지, 공적 기구가 유리한 지 논의를 더 해야보고 고려해서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암 질환을 별도로 접근하는 건 재정 등의 문제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산업기술개발과장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산업기술개발과장

'건보냐 일반재정이냐' 재원 문제=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공익적 임상연구 결과가 환자 진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건강보험 재정에서 재원을 부담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런 쟁점은 국회가 공론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김흥태 교수도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려면 재정지원도 그렇게 뒤따라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고 공감했다.

반면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기대효과 등을 감안하면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별도 기금이나 정부예산을 활용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

이희영 교수는 "정부 주도로 해야 한다는 건 동의하지만 반드시 정부 펀드사업으로 해야 하는 건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개인질병정보 등 우려되는 문제는=김준현 대표는 "실제 진료현장 자료가 중요하고 그걸 기반으로 근거를 창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우려되는 건 데이터의 범위나 유형이다. 전자진료정보나 개인 모바일 기록 등은 개인 민감정보에 해당한다. 비식별 조치한다고 해도 정보주체, 환자, 의료기관만 봐도 소유권 논쟁이 불거질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방식으로 동의를 받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플랫폼을 만들려면 데이터 셋팅 과정에서도 통제가능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또 공익적 과제의 범위와 유형을 명시하고 배제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준현 대표는 특히 "공익적 임상연구와 정책을 연계하는 건 의미있다고 본다. 그러나 산업계와 이해관계 연계 가능성 부분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국일 과장은 "개인정보를 잘 활용하면 국민건강 등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고 있는데, 민감정보인 점을 감안해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문제가 없도록 연구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상업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굉장히 낮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김국일 과장은 "예산이 확정되면 '환자중심의료기술 최적화연구사업'을 본격적으로 설계하게 될 것이다. 현재 실무기획단을 가동하고 있는데, 오늘 토론 내용은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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