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든 약국 진열장에...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칼럼] "인생 목표는 혁신신약 개발과 500년 영속 기업"

조 단위 거래를 비롯해 여러 건의 기술수출을 성사시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과 몇 차례 저녁 식사를 한적이 있다. 2016년 초중반 무렵이었다. 글로벌 제약회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신약개발에 대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준 인물이자,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계 연구개발(R&D)에 뜨거운 불길을 지펴놓은 '문제적 인물'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대답도 들었다. 하지만 "인터뷰도 아니고 기사화도 안된다"고 완강하게 선을 그어 '그의 육성들'은 여러가지 결로 마음에 새겨져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임성기 회장은 매일, 매순간 혁신을 고민하는, 기업가 정신이 철철 넘치는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산업계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요즘, 벤처기업 창업자처럼 두려움없이 도전하는 그를 소환해 다시보려 한다.

기업가 정신이 대체 뭔가. 학자들에 따라 그 정의가 다양한 갈래로 나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관여하는 시장 안에서 의미있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외부환경의 변화를 예민하게 살피고 혁신적으로 대응하려는 일관된 자세, 혹은 의지가 아닌가 싶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끊임없이 효율적인 방법론을 모색하고 반드시 실천하려는 태도라고 해도 좋을성 싶다. "제일 마음에 들지않는 임원이라면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요?"라고 물었을 때 임 회장은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는 '작년엔 이렇게 했습니다' 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자세에요. 환경이 바뀌었는데, 관행에 파묻혀 답습하는거죠. 여기에 발전이 있겠어요?" 그의 말처럼 그의 삶은 남보다 한발 앞서 외부 환경변화를 면밀하게 살핀 끝에 그곳에서 기회를 찾아내려 노심초사한 세월의 연속이었다.  
     
임성기 회장은 자신을 '별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별난 사람? 그게 뭔가. 외행성에서 온 괴팍한 성향의 사람일까? 1960대 중·후반 경영했던 '임성기 약국'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임성기 약국'을 열었고, 흰색 가운을 입고 고객 앞에 섰다.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약국 이름은 대부분 고향 동네 이름이나 졸업한 대학 이름을 붙이던 때였고, 평상복이 가운을 대신했던 시절이었다. 이 처럼 별난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름 석자 걸고, '약사 임성기'라는 명찰이 있는 가운을 입으면 환자들에게 더 책임감을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약국 한켠에서 생활하며 6시에 약국 문을 열고 12시 통금 사이렌이 울려야 문을 닫았다. 불필요하다 싶으면 고객이 찾아도 약을 판매하지 않았다. 약사라는 직업에 충실했고, 약국은 성공했다. 그가 말하는 별난 사람이란 사회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한 끝에 멋드러지게 성과를 내는 인물이다. 마케팅적으로 차별화인 셈이다.        

그는 1973년 6월 한미약품 전신인 '임성기 제약회사'를 세워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규모에 걸맞지 않게, 미래를 보고 곧 바로 합성공장을 세웠고, 이 때 뿌린 씨앗이 발아돼 1989년 국내제약사 중 눈에 띄지 않던 이 작은 회사가 세파계항생제를 합성해 600만달러를 받고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국내 산업계는 어쩌다 품에 안은 행운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으나 이에 아랑곳 않고 1997년 4월 6300만달러에 달하는 면역억제제 마이크로 에멀젼 기술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시절 나라 안에 큰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사건이었다. 두 건의 기술수출 모두 다국적 제약회사와 이뤄낸 딜이기도 했다. 세파계 항생제의 성과는 일찌감치 합성공장을 세워 기회를 잡은 결과였다. 면역억제제는 어떻게 개발했을까. "수입 규모가 제일 큰 품목이 뭐야? 그런 걸 우리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라는 임 회장의 문제제기로부터 오리지널의 특허 빈틈을 찾아낸 성과였다. 남들이 주어진 현실을 착하게 받아들이고 주저 앉아 있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기회를 모색하는 인물이 임성기 회장이다. 홀로 중국을 여행하다 '한 아이만 키우는 중국에서 아이들을 애지중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미약품 유산균 제품을 연결시켜 북경한미약품을 출범시킨 것이나, 한미약품에 따라 붙는개량신약, 복합신약의 명가라는 칭호 또한 기회를 찾고, 프로세스를 혁신해 이뤄낸 열매들이다.     

의약분업이말로 임성기 회장이 왜 기업가로 불려 마땅한지 보여주는 시금석같은 사건이다. 의약분업이 시대적 국가적 과제로 떠 올랐을 때 대부분 제약사들은 '우리 역량이라면 별 문제 없이 수용할 것'이라며 방심했다. 반면 민감하게 대응했던 일반약 주력 중소사 한미약품에겐 레벨이 다른 제약회사로 발전하고 변신하는 일대 기회였다. 눈부신 매출 성장, 이를 통해 거둬들인 이익의 과감한 R&D 투자는 이 때 비로소 확립됐다. "제약산업은 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의약분업은 전문의약품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완전히 다른 게임의 법칙이 펼쳐지는 거잖아요. 금방 알수 있는 건데, 관건은 준비였죠." 실제 한미약품은 2000년 의약분업 한 두해 전에 어느 질환이라도 커버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 허가를 받아 놓고 준비했다. 작은 기업일 때조차 큰 기업들에 앞서 우수의약품생산기준(KGMP)에 부합하는 생산시설을 갖춰 놓았던 덕분이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휘둥레지는 팔탄 스마트공장, 평택 바이오의약품 생산 플랜트에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것도 글로벌시장의 기회를 잡으려는 미래로 가는 포석이다. 

2018년 6월까지 한미약품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총 차입금은 6274억원에 이른다. 항암제 롤론티스 4분기 미국 허가 신청, 당뇨병약 에페글레나타이드 미국 3상 등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신약 파이프라인의 막바지 임상을 수행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임상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탓에 영업활동 만으로 엄청난 자금을 모두 충당하기 불가능하다. 다국적기업들은 대규모 3상 임상을 진행할 때 통상적으로 그룹 사업부를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국내에서 한미처럼 회사채를 발행하는 도전적 기업들은 매우 드물다. 임성기 회장이 '매출 1조원 클럽같은 현재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자의 관점이었다면 회사채를 발행하면서까지 신약개발에 매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제약회사의 존재가치는 신약개발'이라고 확고히 믿고 있는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대단한 승부를 걸고 있다.

두서없이 펼쳐진 기업가 임성기 회장의 이야기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대리기사를 기다리며 나눈 대화로 마무리하려 한다. "회장님의 꿈은 뭐에요?" 물었다. "제약회사를 하니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죠. 그건 연구개발이야. 인류 건강에 한 몫하고,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혁신신약을 보고 싶어요. 세계 모든 약국의 진열장에 그 약이 놓여졌으면 해요. 그리고 한미약품이 500년 이상 장수하며 생명력을 유지하는 역동적인 회사가 되었으면 하는 것도 있어요. 그저 연명하는 기업이 아니라 신약개발 R&D가 기업 정신으로 흐르는 장수기업." 수 십년째 임 회장과 함께 한 운전기사가 국산 차량을 몰고 나타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는 내일 아침에도 43년(올해로 45년) 간 빼놓지 않았던 '7시30분 임원 티타임'을 주재하며 환경을 살피고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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