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희귀질환 외에 대상약제 '제한적 확대' 가시화

[종합] 윤일규 의원, RSA도입 5년, 평가와 개선방안

위험분담제도(RSA)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지난 20일에 이어 24일 또 국회에서 열렸다. 제도도입 5년차를 맞은데다가 한 사이클(계약기간 4년)을 돌아 RSA 재계약 여부를 평가하는 약제가 생긴 점을 감안하면 RSA 토론회가 잇따르는 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 제도 도입이후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공개토론이 적어도 10회 이상 열렸다는 건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다국적제약사를 중심으로 약가제도 관련 토론회는 경제성평가 위주의 의사결정, 이에 대한 대안으로 MCDA(다기준의사결정) 활성화, 비용효과성 분석에서 대체약제 범위에 대한 문제, ICER 논란, 건보공단의 경직된 협상 등이 주된 주제였는데, 이 자리는 어느순간부터 RSA로 대체됐다. 그만큼 다국적제약기업의 관심사가 이 쟁점으로 쏠려있다는 얘기이고, 마침 항암제나 희귀질환제 등 고가신약이 물밀듯 들어오기도 했다.

지난 24일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위험분담제 도입 5년, 평가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마련했다. 앞서 정춘숙 의원실과 환자단체연합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20일 토론회가 고가 신약 접근성에 대한 환자단체의 대안론적 고민이 주요하게 제시됐다면, 이날 토론회는 임상현장에서 실제 환자들을 진료하는 임상전문가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안타까움을 들을 수 있었다.

윤일규 의원은 토론회 내내 자리를 지키며 앞으로 RSA제도가 도입 취지에 맞게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후관리 할 뜻을 내비쳤다.

주제발표를 맡은 김기현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와 이종혁 호서대 생명보건대학 교수는 RSA 적용대상 약제 확대, 최근 개발된 병용요법 약제들의 급여화, 선발약제의 독점권 문제와 후발약제 RSA 인정, 제한된 급여기준 확대 등을 개선방안으로 제시했다.

김기현 교수는 특히 다발골수종을 중심으로 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최적의 투약을 위해서는 병용요법을 위한 다양한 옵션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면서, 후발약제에 RSA를 적용하지 않는 현 시스템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이를 토대로 4가지로 의제를 압축했다. RSA 적용대상 약제 확대, 후발약제 RSA 적용여부, 급여기준 확대 허용, 등재 이후 후평가 방안 등이 그것이었다.

시기상조냐, 암을 넘어 중증질환까지 확대냐

패널토론 첫 주자가 된 강아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국장은 "RSA가 도입된 지 이제 5년차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막 (재계약에 대한) 재평가를 마친 두 번째 약제가 나왔다. 아직 재평가도 본격화되지 않은 만큼 (대상질환 확대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강아라 정책국장은 이 쟁점부터 시작해 이날 줄곧 임상전문가들로부터 상당한 견제를 받았다.

백민환 다발성골수종환우회장은 "RSA가 환자 접근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다른 질환이나 치료적 편익에 필요한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요청한다"고 했다.

장우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좀 더 구체적으로 "중증질환치료제까지 확대해도 예외적 허용이라는 제도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같이 패널토론자로 참여한 기자는 "최근 정부가 '기타 약제급여평가위원회가 인정한 약제' 규정을 활용하기 위해 기준과 절차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게 정리되면 위중도를 감안해 다른 질환으로 적용대상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외적 접근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대상은 다른 질환으로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20일 토론회에서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의 언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곽명섭 과장은 이날 "약평위가 개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동안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서 활용된 적은 없는데, 현재 심사평가원이 실무 검토 중이다. 이 기준이 만들어지면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고 암, 희귀질환 외 다른 질환의 접근성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관련 사실을 재확인해줬다.

이어 "RSA를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은 유지하되, 여기에 더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방안을 찾는 것이다. 다만 제약계가 요구하는 만성질환까지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종혁 교수는 "RSA는 환급형 계약이 대부분인데, 이들 환급형 약제는 표시가격이 아닌 실제가격을 기반으로 경제성평가까지 마쳤다. 따라서 환급형은 (이중가격 구조이지만) 내용상 선별목록제도의 예외라고 볼 수 없다. 성과기반형과 환급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환급형 유형의 경우 선별목록의 범주 내 제도로 보고 위험분담제도에서 분리해 일반약제 '협상툴'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죄수의 딜레마'로 확장된 후발약제 RSA 적용논란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게임이론의 사례로 경제학이나 심리학, 국제 정치학 등 다방면에서 활용되는 개념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이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유발하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먼저 장우순 상무는 "후발신약을 배제하지 않는 건 '페어'하지 않다고 본다. 발제에서 제시된 것처럼 가격경쟁을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애고 있다. 제도를 설계할 때 지나치게 경직되게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강아라 국장은 "RSA가 아니어도 급여 적정성이 있으면 급여화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 현 제도에 있다. RSA를 통해서만 환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방안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 간 약가를 참조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각 나라의 불투명한 약가가 돌고 돌아서 우리 환자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서로 약가가 불투명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각국의 표시가격만 높이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공조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각 주정부 간 약가 투명성 공조를 위한 법률안이 발의돼 오리건주를 포함해 상당수 주에서 통과됐다"고 했다.

기다렸던 발언이었을까. 김기현 교수와 강진형 교수는 이 주장에 대해 줄줄이 비판을 이어갔다.

강진형 교수는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발성골수종은 다양한 임상양상을 다 보여준다고 알고 있다. 재발이나 부작용 등이 많아 다양한 약제를 써야하고 그러다보니 약제비가 늘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사실 두경부암과 같이 상황(급여)이 더 안좋은 치료영역도 있다. 환자를 중심에 두고 규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대안을 제안하면 약을 쓸 수 있는 의사를 제안해서 투약내역을 보고하게 하고 사후관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모든 의사가 쓰도록 허용해 달라는 게 아니다. 혹여 밥그릇 싸움 운운할 수도 있겠지만 환자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오히려 시민단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안하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기현 교수는 "현 기준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약을 비교하라고 한다. 가령 1960년대 치료제와 보테조닙을 같은 적응증이라고 동일선상에 놓는다면 이건 정당하지 않다. 환자를 위한게 아니다. 의사들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이런 걸 방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진형 교수는 의사들도 공부하지 않으면 최신 치료동향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시민단체도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곽명섭 과장이 이 지점에서 정부의 고민을 조금 장황하게 풀어냈다.

요약하면 이렇다. 시민사회단체의 우려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죄수의 딜레마'이거나 '죄수이론'이다. RSA제도를 끌고 들어온 건 정부가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였다. 이유는 표시가격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일반절차로도 가격을 높게 받으면 좋은 일이지만 그게 안되면 실제가격이 노출되게 하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이중가격 인정)' 신약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글로벌 영업전략에 포섭돼서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게 맞는걸가. 하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의 숨겨진 가격을 파악해 낼 능력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퀘스천'이다. 그래서 예외적인 제도를 통해 신약 접근성과 재정중립 등을 비교형량하면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환자의 신약 접근성, 재정안전성 등을 놓고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로 보인다.

기자는 "선발약제가 RSA 적용을 받은 뒤, 후발약제가 RSA가 아닌 일반절차로 등재되면 선발약제도 RSA 계약이 자동 종료되도록 시스템을 만든 것인데, 이는(후발약제 배제는) 예외적이라는 RSA 취지를 감안해 적용약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지난 4년여 간 제도를 운영했더니 후발약제가 진입하지 않으면서 선발약제에 독점권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따라서 후발약제 배제는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준비했지만, 중간에 말이 잘려서 다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RSA 대체할 잠재적 이슈파이터 '사후평가' 급부상

임상전문가, 정부 뿐 아니라 건약까지 공감을 이룬 이날의 유일한 쟁점이었다.

강진형 교수는 "앞으로 가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이 부분이라고 본다. 지금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의약품은 사실 약가가 아니라 가치가 중심이 돼야 한다. 가령 지난 3년간 환자에게 약을 썼다면 그 결과에 대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기현 교수도 "임상시험 피험자와 실제 환자는 다르다"며 공감을 표했다.

강아라 국장은 "사후평가를 통해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한 약제는 퇴출시키는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사후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도 퇴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구조는 건보공단의 협상력도 낮출 수 있다. 환자에게 급여가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동의서를 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곽명섭 과장은 "보험자가 의약품을 대리 구매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부분은 우려되는 사항이다. 가격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효능 측면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자는 고가약제를 어느정도 수준에서 지불해야 할 지 신중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현재 건보공단에서 관련 평가 툴을 만들기 위한 연구용역(연구책임자 김흥태 교수)이 진행되고 있다. 단순 데이터나 수치, 청구자료 등을 보는 것보다 더 깊이있는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RSA 약제  뿐 아니라 모든 약제, 특히 고가약제에 대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추후 연구결과가 나오면 효과를 사후평가해서 재계약이나 재평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쟁점에서 벗어난 RSA 약제 급여범위 확대

강진형 교수는 이날 토론 토픽 중 하나로 설정했지만 논의를 활성화되지 않았다.

곽명섭 과장은 "제도 초기단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현재는 확대할 수 있도록 정비됐다. 이 기준을 조금 더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데, 사실 등재 시점과 비교하면 급여기준 확대는 손쉽게 가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은 (악용되지 않도록) 적정 선을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윤일규 의원은 이날 "제도 도입 논의 단계에서 왜 재평가나 사후관리 부분이 면밀히 검토되지 않았는 지 이해가 안가는 측면이 있다. 앞으로 제도운영과정과 개선내용 등을 꼼꼼히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편 강아라 국장은 후평가 제도 도입 외 RSA 개선방안으로 약가제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RSA 도입으로) 비밀약가, 비밀계약 등 약가제도 전반의 투명성이 현저히 약화됐다. 심사평가원 약평위 속기록, 약가협상 결과, 계약 지속 또는 종료 여부 등을 외부에서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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