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의료기기 광고 사전심의는 사전검열… 위헌 결정"
표현의 자유에 따른 책임 VS 사전검열… 사후 자율심의
사전 심의를 받지 않으면 의료제품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 법 조항이 헌법에 금지된 '사전검열'에 해당해 위헌이라는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2018년 6월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을 알리는 광고에 이어 최근 의료기기 광고도 사전에 심의하도록 한 법 조항이 위헌 결정으로 효력을 잃었다. 사전검열이라는 시각과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한 소비자 보호라는 시각이 상충되는 '사전심의'가 의약품 광고에선 유지될 지 주목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8일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의료기기 광고를 금지한 의료기기법 24조 2항 6호 등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전주지법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에서 8(위헌) 대 1(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의료기기와 관련해 심의를 받지 않거나 심의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의 광고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 시 행정처분과 처벌을 받도록 한 의료기기법 조항들이 효력을 상실했다.
의료기기 판매업체 A사는 블로그에 의료기기 광고를 했다가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7년 1월 지자체로부터 3일 간 판매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한 회사는 처분 취소 소송을 내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의료기기 광고 심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식약처장이 기준과 방법을 정하는 만큼, 의료기기 광고 심의는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검열'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헌법상 사전검열은 표현의 자유 보호 대상이면 예외없이 금지된다. 의료기기 광고도 상업광고로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호 대상이 됨과 동시에 사전검열 금지 원칙의 적용대상"이라고 봤다.
광고 사전심의 자체가 효력을 잃게 된데 대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1일 공식 입장을 통해 "사전심의 이외에 거짓·과대 광고는 기존과 동일하게 금지된다. 의료기기광고심의위원회는 위헌 결정을 악용한 거짓·과대광고가 만연하지 않도록 자율 심의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협회 관계자는 "광고의 사전심의 자체가 사라져, 협회가 광고 행위에 제재를 가할 순 없지만 잘못된 광고가 나가지 않도록 자율 심의, 조치는 그대로 이뤄진다"고 했다.
의료기기, 의약품 등 의료제품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제품으로 정확한 정보 전달을 통한 국민 보호 목적에선 사전심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영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협회가 심의업무와 관련해 식약처 등 행정권으로부터 독립된 민간 자율기구인지 그 행정주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의료기기에 대한 잘못된 광고로 소비자가 입을 신체·건강상 피해는 크고, 초래된 경우 그 회복이 불가능해 사후 제재는 실효성 있는 대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사전검열에 볼 수 없고, 사전심의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한 판단이다.
다만 재판관 9명 중 8명의 의견이 같아 의료기기 광고 사전심의는 위현 결정이 내려졌다.
이같은 결정은 향후 의약품 광고 사전심의에도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제약업계는 지난 1989년 자율적으로 의약품광고 심의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제약협회는 의약품광고 자율심의위원회를 설치했다. 1993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의약품 대중광고 관리기준'을 마련해 광고심의를 의무화했다.
식약처 '의약품 안전에 관한 규칙' 제79조에 따르면 의약품 제조업자, 품목허가를 받은 자 또는 수입자(이하 광고신청인)은 매체나 수단을 이용해 의약품 광고를 하려면 의약품 광고심의에 관한 업무를 위탁받은 기관에 심의를 받아야만 한다.
광고하기 전 기관에 사전 심의를 받으라는 의미다.
이에 한국제약협회는 위임받고 심의기구가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됐다. 2016년 식약처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의약품광고심의업무를 위탁한 데 대한 지정고시를 만들어 3년마다 재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제약바이오협회 산하 의약품광고심의위원회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광고라면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 의약품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제품으로, 의약품의 효능·효과와 복용방법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전달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사전심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심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사전심의 제도는 잘못된 광고로 인해 소비자가 입을 피해에 대해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