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정승훈 윤슬케어 대표

"암 생존자 경험 네트워크 만들어 서비스 제공하고 싶어요"

펭귄들과 함께 남극에서 연구하고 싶었던 22세 청년에게 불현듯 '림프종'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병원 밖 세상도 암 경험자인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다. 카페 아르바이트, 학원강사, 방문판매, 보험설계사 등 사회 일원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이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이제 어엿하게 사회적 기업 '윤슬케어'를 이끌고 있는 정승훈 대표는 '배워서 남주자'라는 신조로 암 환우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저 역시 치료 이후 2~3년은 검사를 위해 병원을 가야했기 때문에, 이 스케줄에 맞는 일을 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이 참 어려웠죠. 앞으로 투병을 하게 될 후배 환우들에게는 이런 어려움과 번거로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혈액암협회에서 관련된 일을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배워서 남주자'라는 목표로 과학교사를 꿈꾼 적도 있는데, 이 신조에 맞춰 다른 암 환우를 돕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정승훈 윤슬케어 대표

그는 이제 1년 주기 혈액검사만으로 관리하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혈액암협회에서 직접 환우들을 어려움을 지켜보고, 직접 창업까지 나섰다. 그게 바로 '윤슬케어'다. 2018년 위험분담제 약제지원 프로그램 위탁 개발을 시작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사회적기업가지원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암 환자들을 위한 투병수첩 제작,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며 암 경험자가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혈액암협회에서 인턴 기간 포함 2년 정도 일했어요. 환우를 돕는 봉사활동을 시작했죠. 인턴 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맡은 일은 위험분담제에 따른 약제비 배분 접수 업무였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이 업무가 지나치게 수작업으로 이뤄져 일손이 부족했어요. 개인정보를 다루는 일인데, 보완체계도 많이 부족했고요. 데이터베이스(DB) 자체도 없었어요. 그래서 업무를 간소화하고, DB를 구축하는 작업을 했고, 그 결과 6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할 수 있게 됐어요. 협회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지만, 한계도 명확했어요. 환자들에게 필요한 건 약제비 뿐만이 아니었거든요. 당장 입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이 분들을 위한 제대로 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투병수첩(다이어리)

창업의 길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았다. 자신의 전공 분야인 위험분담제 약제비 관리 사업을 수익 모델로 이끌고 가고 싶었으나, 신생 회사에게 맡기는 제약회사는 많지 않았다. 

"창업 초기엔 위험분담제 업무 대행을 통해 수익 모델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려고 했어요. 신생회사의 위치로 이 사업을 따오기 쉽지 않았죠. 소규모라도 약제비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와 함께 투병수첩 초기 버전을 등을 지속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합니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암환자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좀더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보고 싶습니다."

비영리단체 혈액암협회를 나와 사회적 기업을 만든 이유는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환우들에게 단순히 '기부'를 통해 일회성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지속성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환우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자금이 필요했다.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일부 비율의 수익을 환자들을 돕는 데 쓰는 모델을 생각했어요. 단순 기부가 아니라,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했어요. 또 암 환우들을 위한 프로그램 역시 일회성 행사가 아닌 최소 2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게 기획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유료 프로그램에 대한 장벽이 있지만요."

이와 함께 그가 생각해 낸 또 다른 서비스는 암 환자 동행 서비스다. 환우카페나 환우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운 환우들을 위해 그가 고안해 낸 서비스다. 특히 5분 진료를 위해 2~3시간 이상 병원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이용해, 환자들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없앤다는 계획이다.

"암환자들이 병원 검사를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해요. 5분 진료를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죠. 이 시간을 활용해 선배 환우가 찾아가 멘토링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보호자가 병원에 동행하지 못 할 때, 같이 병원을 가면서, 멘토링을 진행할 수도 있죠. 코로나 때문에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진 못 하지만, 다음달부터 메신저, 채팅 등을 통해서 비대면 멘토링 프로그램도 구축할 예정입니다."

멘토링 서비스는 오프라인 기준 시간당 1만5000원이다. 교통비까지만 포함하면 하루 10만원 내외의 금액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각자 환경에 따라 이 금액에 대한 부담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 역시 가격 장벽을 계층별로 다르게 가져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은 하루 20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고 이용하시는 분도 있어요. 사용자들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인데, 서비스 이용 사례를 더 많이 축적해 취약계층은 무료로 이용하고, 일반 계층은 서비스 비용의 절반만 부담하는 형태로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같은 질환을 겪는 사람과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보호자와 미쳐 나누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 같아요. 향후 축적된 상담 데이터를 연구 용역으로 사용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동행 프로그램 멘토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투병 상담사' 민간 자격증 교육 과정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투병수첩도 지속적인 수익 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민간 자격증을 만들고 난 이후, 정신종양의학과 임상의, 사회복지가, 암생존자, 상담사들이 강사진으로 참여해 '투병관리사' 교육 과정을 만들 예정입니다. 투병수첩은 선배 환우들의 경험을 가이드하는 책을 내자는 것으로 기획됐어요. 단순히 치료뿐만 아니라 정서적 치유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했죠. 최소한 치료 정보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리 상태, 투병 의지를 높이기 위한 앞으로의 계획 등을 적어보는 등 다양하게 구성해 봤어요.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살펴보고, 치료 이후의 삶도 미리 계획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막상 환우들을 위해 줄 마땅한 선물이 없을 때, 투병수첩이 요긴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거에요."

누구나 암환자가 될 수 있다. 그는 더 많은 서비스를 통해 암밍아웃(암 경험자임을 주변에 알리는 일)이 겁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암은 갑자기 찾아와요. 누구나 걸릴 수 있고요. 윤슬케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더 많은 암 생존자가 자신의 경험을 알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어요. 이를 통해 암밍아웃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윤슬케어는?

암 경험자의 행복한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투병수첩, 멘토링, 교육 사업 등을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2018년에 이어 2019년까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투병 다이어리 구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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