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전문의 출신 권용욱 감사관

의과대학 공부 6년, 전공의 수련 5년, 군복무 3년까지 자그마치 14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고 앞으로 신경과 전문의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로하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감사관의 길을 택한 이가 있다. 바로 권용욱 감사관(전남대의대·39)이다. 그는 감사원에서 유일무이한 의사출신 감사관이다.  

그의 경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공직의 길을 가게 된 것이 이해될 법도 하다. 군의관이 아닌 공중보건의사로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서 일 했고, 이후 보건지소장으로도 근무했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공무원을 선택할 수 있는 이력이 아닐까.  

 

#인생을 바꾼 노숙자의 자판기 커피 한 잔 

그가 공직자로 앞날을 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수련받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원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미혼모,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계층을 진료하면서, 최선의 진료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진료 문턱을 낮추는 환경을 만드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전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처럼 사람에게도 구더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당시에 알게 됐죠. 또 노숙자는 여러 곳에서 치료거부를 당하고 마지막에 의료원으로 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럼에도 병원비 등의 부담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니 소외계층이 처한 현실만큼 부실한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겼습니다."

"가장 생각나는 환자가 있는데, 노숙자였어요. 온몸에 구더기가 생겼고 엉덩이와 등쪽에 욕창이 심했었죠. 제가 인턴일 때, 응급실에서 목욕도 시키고 욕창을 소독하면서 환자 상태가 호전됐고 무사히 퇴원하셨어요. 그 후 서울역을 지나다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감사하다면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주더군요. 노숙자에게 커피를 얻어 마신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요? 그때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

군의관이 아닌 질병관리본부에서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한 것이 어쩌면 공직에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권 감사관의 이력을 보면, 질병관리본부에서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확산을 막는 역학조사관으로, 당시 생물테러감염병에 대한 업무를 담당했었다. 이후 2015년 6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관악구청에서 지방의무사무관인 보건지소장으로 근무했다. 감사원은 국가공무원 5급 채용 전형 중 민간경력자채용 전형을 통해 합격했다. 2016년 2월 국가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현재에 이른다.  

 

#규제기관 이미지 컸던 복지부, 감사관 눈으로 보니 

권 감사관은 보건의료 전문감사관으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감사하고 있다. 2017년 1, 2월 수습기간에 한미약품 국회청구감사에 참여했고 그해 3월 복지재정감사도 진행했다. 

"응급의료센터 구축 및 운영실태 감사를 한적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2살 남아가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전원 중에 사망한 사건이었죠. 전원시스템의 문제라고 했지만 막상 조사를 해보니 담당의사의 부적절한 대응때문이었어요. 또 건보공단의 업무소홀로 희귀난치질환 환자가 장기요양보험료 경감 혜택을 받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의사로서 복지부 등을 보는 시각과 감사관으로서 정부기관을 대하는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을 터다. 의사에게 복지부는 진료행위를 간섭하는 규제기관으로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의사로서는 복지부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봤다면, 감사관으로서는 의사와 환자, 국민까지 시각을 넓혀 정부기관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핀다고.   

"레지던트로 있었기 때문에 복지부, 식약처 등과 직접적으로 부딪힌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 이야기를 통해 간접경험했을 때, 정부기관은 의료행위를 간섭하고 환자를 위한 진료를 수가로 얽매려는 규제기관이라는 인상이 컸어요. 막상 감사관 입장에 서게되니 환자, 그리고 더 넓혀서 국민까지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복지부가 의료행위 수가체계를 적정하게 만들고 있는지, 급여비용이 부당하게 지급되는 것은 아닌지를 확인하게 되더군요. 병원 기관감사를 하면서 MRI, CT 판독료를 부당하게 청구했는지 들여다보고, 요양병원 감사에서는 CRE 등 감염관리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도 해요. 병원입장에서는 규제지만 저는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들의 입장에 서서 같이 견제를 해줘야 하죠."

 

#K-방역 수출에 일조 하고 싶어 

그는 의사이기 때문에 보건의료 전문감사관으로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공조직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의사로서 장점이 빛을 볼 수 있다고. 

"의사로서 시야가 고정돼 있으면 정책 수행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정책이 수립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집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알고 공조직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죠. 감사하게도 지난 이력이 감사관 업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인력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를 판단한 다음, 해결방안을 찾고 있죠. 이때 너무 이상적이어서도, 현실과 동떨어져서도 안되는데, 비의사 출신 감사관보다는 의료계를 잘 알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행가능한 정책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익숙한 단어들이 업무 수행시간을 단축시켜 주기도 하죠."

불합리한 사안을 참기보다는 사회적 약자편에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관으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권 감사관.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방역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출 사례를 보면, 예전이었다면 수출까지 기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지만 일주일만에 수출이 가능해졌어요.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선진국에서도 K-방역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이죠. 저는 이같은 수요가 있을 때 보건의료산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식약처나 복지부 등에 규제가 있다면 이를 풀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공공의료시스템을 보다 체계적으로 확립하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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