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외면한 채 변방 건드려 문제 못 푼다

개똥을 약으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껏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놓고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만큼 속 터지는 일도 없으니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도장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허무개그처럼 보이겠지만 이는 의약품의 법적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자, 허가 당국으로써 식약처의 정체성과 위상을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는 촌철살인이다. 실제 비임상시험부터 임상시험, 허가, 사후 품질관리까지 식약처의 손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약품 일생에 걸쳐 닿으니 말이다.

이런 식약처가 최근 제약업계, 의사, 약사, 환자, 소비자들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제네릭 의약품 국제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아닌 밤중에 웬 협의체? 야심차게 내놓았던 일명 ‘1+3 공동생동 규제 방안’이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제동이 걸리자 ‘제네릭 의약품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식약처의 의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협의체는 출범했다. 협의체 이름에다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지고지순한 수식어를 붙였어도 어젠다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 협의체는 공동생동 규제방안이 좌절된데 따른 제네릭 난립 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 마련이 목표인데도, 마치 대한민국 제네릭 의약품 전반의 빅픽처를 그리기라도 하는 듯 다양한 변방을 두드리고 있다. 논점이 흩어지기 십상인 접근법이다. 그래서 식약처가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사회가 식약처에 낸 문제는 ‘제네릭 난립을 어떻게 풀 것이냐’가 아니었나?

출처=식품의약품안전처
출처=식품의약품안전처

제네릭 난립에 대한 식약처의 문제 인식은 무엇인가. 절대 숫자가 많아 문제라는 것인가? 아니면, 공동 임상을 주관한 수탁사 한곳에서 생산돼 쌍둥이 보다 더 똑같은 의약품이지만, 모두 다른 이름을 쓰는 까닭에 약국의 조제 과정이나 NDMA 같은 불순물 수습과정에서 혼선을 유발시켜 문제라는 것인가? 따라서 식약처가 이곳저곳을 건드리는 이유는 불명확한 문제인식이 아니라면, 이해 관계자들을 심히 자극할까봐 의도적으로 사이 길을 찾으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동생동과 위수탁 생산으로 인한 제네릭 난립과 직접 관련된 문제 대신 국제적 통용 기준이 확립된 생동성 평가를 들여다보며 품질평가 지표 개발을 운운하는 것이다. 평가지표에 따라 제네릭을 A급 B급 구분하는 것이 제네릭 품질 향상을 견인하고, 의료계의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본다면 어리석다. '언박싱 판도라’가 될 것이다. 오는 7월부터 약가 혜택을 받는 직접생동과 직접생산의 차별화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는 모두 소비자에게 정보 공개를 염두에 둔 것이다. 허가는 식약처가 할 테니 평가는 소비자가 하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식약처를 참 친절한 공기관이라고 칭찬해야 하나? 최소한 이번 식약처 민관협의체는 거버넌스 실현이나 민주적 의사결정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공동생동 규제 방안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막히면서 머쓱해진 식약처가 뒤늦게 의지를 불태우는 것으로 보일 따름이다. 제네릭 난립에 관한 식약처의 문제 인식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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