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희 경영자 전문코치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죽음은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간암으로 투병하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자란 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분이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던 기억이 있다.

노희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 한 의약계 전문매체 약사신문 전미숙 기자(대표)가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시대를 산 여자로 통하는 구석이 많아 긴 세월을 지내며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된 특별한 분이었다.

그녀가 편집국장 시절 취재원으로 그녀를 처음 만났는데 첫 인상이 서늘했다. 풍부한 전문 지식을 지녔음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녀는 일본어에 능통해 일본에서 일어나는 의약계의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다. 정보와 인맥도 대단했다. 전문지식과 기자정신의 칼로 깎은 펜으로 쓴 그녀의 기사는 취재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런 그녀가 따듯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다국적 제약사의 홍보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회사를 차리고 난 후였다. 끈 떨어졌을 때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법. 그녀는 내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배려했고 사람들을 소개했다. 부모님의 건강문제로 의견을 물으면 바쁜 시간을 쪼개 필요한 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기도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쩌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그녀의 사무실에 가면 화초와 자료에 둘러 쌓인 하얀 얼굴의 그녀가 "왔어?" 하며 반겨주었다. 우리 둘 다 뭐가 그리 분주한지 약속 잡기는 어렵고 어쩌다 이루어진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며 아쉽게 끝나곤 했다. 삼 년 전쯤 함께 짧은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녀는 일이 아니라 여행으로 그곳에 간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몇 년 후에 은퇴하면 길게 여행하자는 그녀에게 나는 순순히 그러자고 하지 못하고 '언니는 그 때 은퇴 못할 것 같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던 그녀는 파헤쳐진 도로에 놓여있는 꽃나무가 안타까워 끌어가 심는 사람이었다. 키우기 어렵다는 화초들도 그녀의 손길에 무장해제되어 아름다움을 뽐냈다. 꽃과 나무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애틋한 마음이 많았다. 일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제한된 환경 때문에 타협해야 했고 이별에 힘들어했다. 강한 책임감으로 매 회 신문을 만들어 내는 것에 온 힘을 기울이는 듯 보였다.

이주 전 토요일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 두 통을 받았다. 처음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무슨 말이냐고 몇 번을 되물어 겨우 상황을 이해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별을 고하기 싫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두 달 전쯤 우리는 오랜만에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기약했는데 그녀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소식을 접한 토요일 오후 영정사진 앞에 선 내게 그녀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뭐하러 왔어. 나도 없는데."

 

양윤희 경영자 전문 코치는...

휴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전)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홍보 임원
 캐나다 맥길대학교, MBA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이메일 : yunhee@whewcom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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