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정한 실패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려 주는 사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동네 큰 건물 벽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실패가 뭔지, 성공이 뭔지 개념조차 봄날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한 소년에게 무척 낯설었다. 소년이 자랄수록 주위 칭찬에 덩달아 춤을 추며 성공은 우등상장으로, 명문고교 진학으로 개념이 잡혀 체화 됐다. 첫 실패의 추억은 첫 키스만큼이나 강렬했다. 명문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지만 자존감은 지키기위해 애써 괜찮다, 괜찮다 상처를 어루만지던 무렵, 버스에서 만난 '썸을 타던 여고생'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떠나 창밖으로 향했을 때, 그 장면은 늘 생생하다. "아무데서나 열심히하면 되지 뭐"라던 그의 위로는 최악이었다.

위와 아래로 생물학적 관계를 돌아보며 공연히 촉촉해지는 5월의 어버이 날이면 빈약한 연상 작용마저 활성화되는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문구가 불수의적으로 떠오른다. 이 짧은 문구에는 '시지프스와 같은 시행착오' '남극 탐험가와 같은 도전과 모험'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삶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가치가 내재돼 있어 은근 힘이된다. 이 문구를 단서로 단상이 꼬리를 물게되면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생태계에서 명암이 교차하는 플레이어들의 성공과 실패도 눈에 들어온다. 성과를 얻은 기업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지만, 실패한 곳은 기대치 이상 야멸찬 비난을 받는다.

얼마 전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는 SNS에 바이오생태계를 포함해 우리 사회가 돌아봐야할 진지한 화두를 던졌다. 펙사펙 임상 3상임상이 중단됨으로써 경영적 판단 행위의 위법성 소지를 수사 받고 있는 신라젠을 예로 들었다. 그는 "불확실한 기술(거의 대부분 국내 전문가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기술)에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고, 임상 3상까지 진행했던 그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할까?"라고 적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위대한 기업가로 봐야할까? 실패 했기에 범죄자로 보아야 할까? 그는 실패한 시도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우리 사회가 '기업가 사회'로 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경영자와 대비되는 개념의 기업가란 무엇인가. 단순화해서 혁신을 일으키는 경영인이다.

사실 이정규 대표는 성공한 인물로 평가 받아 부족하지 않다. 작년 7월 베링거인겔하임에 특발성폐섬유증치료 신약후보물질 BBT-877의 개발과 관련해 1조5000억원대 기술이전계약 체결이 그러하다고 말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자랑보다 생태계의 내일을 이야기했다. 브릿지바이오가 BBT-877이라는 물질을 도입할 때 업계 최대 계약금인 10억원을 지불했는데, 만약 이 과제가 실패로 돌아갔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 섬뜩하다고 가정해 말했다. 작금의 신라젠에 대한 '사기꾼 프레임'이 고스란히 자신에게도 씌워졌을 것이라고 그는 대입해 상상해 보았다. "사기꾼이라는 평가를 꽤 들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브릿지바이오는 기대보다 우려를 더 많이 들었었다. 조 단위 기술수출 전까지.

혁신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모험, 그리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들이 강물처럼 흐르려면 다양한 조건들이 충족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가 실패를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그 중하나일 것이다. 14일 아침, K제약바이오를 잠에서 깨워냈던 한미약품의 기술 이전 프로젝트가 사노피의 일방적 권리 반환 통보로 멈춰 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기업보다 R&D에 대한 열망과 적극적 시도로 점철된 한미약품의 신약개발 역사를 알고 있는 제약바이오생태계 플레이어들은 다함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소식을 접했다. 전 세계적 신약개발 경쟁에서 흔하디흔한 사례라고해도 실망감이 쉬 가시지 않는 것은 R&D로 달려온 한미약품이 세계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성공가능성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은데도 혁신적인 신약개발에 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도전자들은 언제 어느 때라도 넘어지고 일어설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위대한 기업가의 자질과 역량을 넘치게 갖춘 우리 사회의 영웅들이다. 그래서 제약바이오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고 있는 우리들이라면 넘어진 자리에서 이들이 주저앉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걷도록 맹목적 비판이나 비난에 앞서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려줘야 한다.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수평적으로 교훈이되며, 훗날의 에피소드로 추억되도록 말이다. 실패와 성공은 이질적인 게 아니라 도전과 모험을 한 뿌리로 두고 있는 줄기다. 그래 맞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아니 어머니가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 이정규 대표의 SNS 글 발췌는 이 대표의 사전 승인아래 이뤄진 것입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