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

혁신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이행/중개연구의 필요성(4)

어떤 결정을 하거나 일을 시작할 때 항상 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지금이 적절한 시기인가? 너무 이르거나 혹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그만큼 시간은 되돌릴 수도, 기다려주지도 않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최적의 시점에 일을 시작한다면 그 일의 종류나 목적에 관계없이 최소 노력으로 최상의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최고의 가성비 말이다. '시간은 금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려고 하는 것은 쏟아진 우유를 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도 바보 짓이다'와 같은 시간의 절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수많은 격언들이 있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과거로의 여행, 스티븐 호킹은 미래로의 여행 가능성을 언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천재적인 과학자들의 이야기이고 이를 실용화, 상용화하기에는 갈길이 먼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신약개발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힘들고 긴 여정이다. 치를 떨정도로 지치고 지루할만도 하지만, 일촌일각이 다이나믹하고 다양한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때문에 오히려 묘한 재미와 중독성이 있고, 의생명과학자들이 신약개발 영역에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임상에서 나를 믿고 찾아온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의 한계로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더욱 더 오기에 가까운 근성으로 매달리게 되는 일종의 이어달리기다. 그만큼 불굴의 투지, 용기와 함께 체력과 맷집이 필요한 게임이다.

 

임상이행/중개 최적의 시기는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개발주체가 연구 이행/중개연구의 용도 명확히 정해야 

그렇다면 신약개발과정에서 임상이행/중개연구가 끼어들 가장 최적의 단계 혹은 시점은 언제일까? 상식적으로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너무 늦으면 돌이킬 수 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다'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초기 단계부터 임상이행/중개연구의 개념과 방법론이 함께 반영이 된다면 시행착오도 줄이고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답은 극히 상식적이고 너무 단순한 이론적인 답일 수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언제든지 좋다.' 이것이 필자가 제출하고 싶은 답이다. 혹은 '필요하다고 느낄 때이다'도 답이 될 수 있겠다.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신약을 개발하기로 결정할 때 근거가 되는 임상현장의 미충족수요(unmet need)를 파악하고 이미 임상에서 쓰이고 있는 약제가 있는지, 있다면 미충족수요를 유발하는 이유, 즉 해당 약제의 한계가 무엇인지, 그 한계가 효능의 문제라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할지 등을 판단하는 그 첫 단계부터 임상이행/중개연구의 역할이 요구된다. 초기 개발 단계를 지나 비임상연구가 개시되고 임상진입 준비가 진행되어 가면서 점점 더 많고 중요한 역할과 무거운 책임이 임상이행/중개연구에 지워질 수 있다.

임상에 진입하면 이행/중개연구는 비상대기상태이다. 혹시라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거나 혹은 임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적응증이나 (basket study) 병용요법 등 용법의 (umbrella study) 확장이 필요할 경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적의 타이밍을 잡기 위한 준비는 오롯이 임상이행/중개연구의 몫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임상이행/중개연구의 개입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답이 틀리지는 않는 듯하다.

기초과학적인 흥미와 가치의 가용화와 실용과학의 목표인 실용화·상용화는 완전히 다른 범주의 작업이다. 아무리 환상적이고 황홀한 과학적 결과도 사회적, 경제적 응용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와 실용화·상용화되지 못한다면 그저 이상적인 꿈에 지나지 않으며, 공상과학의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저널에 실리고 이를 바탕으로 선망의 직장에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으나 신약을 개발하고 임상으로 신약후보 물질로 진입시켜 승인을 받기에는 그 간극이 크다.

만일 개발주체가 자체적으로 임상이행/중개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면 시작부터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임상이행/중개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선수층이 얇고 인프라의 확보가 부담스러우며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거나 그렇게 안하면 큰일 날 사안도 아니다. 임상이행/중개연구의 개념이나 방법이 없을 때도 신약은 개발됐고 무난히 실용화를 거쳐 승인을 받은 것(상용화)이 증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제기된 고비용과 낮은 성공률의 개선을 위해 태동한 것이 이행/중개연구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언제부터 이행/중개연구가 필요할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개발의 주체가 생각하는 이행/중개연구의 용도가 무엇인가 정립하는 것이다. 첫번째 용도는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하는, 즉 '예방'의 목적이다. 이 경우 이행/중개연구가 처음부터 참여해서 함께 간다는 것에 이의가 있을 가능성은 없다. 선제적 투자를 통해 시행착오에 의한 인력, 시간, 비용의 낭비를 줄이자는 의도로써 특히 비용에 비해 인력과 시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개발주체들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이행/중개연구의 두번째의 용도는 이미 발생한 문제, 즉 원하지 않거나 설정된 개발의 방향과 다른 결과가 나온 상태에서 그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서 개발이 계속 진행되기를 원하는, '치료법'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행/중개연구는 필요할 때에 호출을 받고 참여하게 되고 몇가지의 시나리오에 따라 적절한 개입시기를 정할 수 있다.

첫째, 개발주체가 이행/중개연구의 임무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 국한하는 경우, 즉 원인만 파악되면 그 이후의 문제 해결 과정은 자체적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는 순간부터 가능한 빨리 개입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물질 자체와 개발의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거나 혹은 최소한의 변경을 통해 계속하고자 하는 개발주체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Through section(retrospective-prospective)이 아니고 cross section(spot) 측면에서 보면 된다. 즉,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만 분석해 보고하면 된다.

둘째, 개발계획의 골격과 주전략은 유지하고 세부 프로토콜만을 변경하는 정도로 개발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일정 관찰 기간을 가진 후에 이행/중개연구가 도입되는 것이 적절하다. 즉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조짐은 보이지만 실패로 최종 판단되기 이전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개발주체가 원하는 방향이 이전 단계의 데이터와 함께 진행 중인 시험의 결과를 검토해 가능하다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필요하다면 물질 혹은 전략과 개발 방향을 최소한으로 개선하고 변경하는 소위 're-direction' 수준의 개선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이대로 가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단계의 종착지가 실패일 것이라는 확인이 가능한 시점, 하지만 성공으로 돌려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가역적인 단계여야 한다.

성공을 위하여 부활(resuscitation) 급의 물질 개선과 전면적인 전략의 수정을 포함하는 모든 필요한 옵션을 생각하는 경우라면 오히려 실패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이행/중개연구가 개입해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게 확보된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분석이 가능한 데이터가 확보된 시점에서 중간 분석을 하거나 시험이 완료된 후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한 후 분석하여 앞에서 기술했듯이 실패를 정의하고 그에 따라 '당당한' 중단을 포함한 're-entry', 'repositioning' 등을 통해 물질의 명예회복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적의 임상이행/중개연구의 개입시점은 '그 목적과 기대하는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필요할 때'이다. 임상이행/중개연구가 개입시점과 개발주체가 원하는 목표에 따라 유연하고 다양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행/중개연구는 답이 없는 시험 문제를 푸는 과정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옹알이로 시작되어 말을 배우고 글자를 깨우치고 소소한 셈의 재미에 빠진다. 갓난 시절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배밀이를 거쳐 기어다니다 (20년후 군복을 입고 훈련소에서 할 포복의 무시무시한 전초전임을 깨닫기 훨씬 전) 걸음마를 떼고 뛰는 과정을 거치며 세상에 나갈 준비가 끝나기 전부터 이미 많은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손줘, 잼잼, 도리도리의 단순노동(?) 부터 '엄마 누구야, 아빠 어디있어?' 라는 질문에 단지 맞는 사람을 가르키는 손가락질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며 환호와 박수의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개나리 봇짐을 메고 유치원 입학식에 참가하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나 말고도 문제를 잘 풀고 더 많은 귀여움과 칭찬을 받는 존재들이 주위에 참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칙인 '경쟁'이라는 살벌한 게임의 법칙이다. 경쟁은 유치원을 지나 초등, 중,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을 들어갈 때 치열함의 정점을 지난다. 경쟁의 가장 표준적인 도구인 시험도 간단한 O, X 시험을 시작으로, 알아서 고르건 몰라서 찍건 쪽집게같이 정답을 골라내는 객관식을 지나 여간 공부를 하지않으면 칸을 모두 채우기 힘든 주관식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며 지식의 너비와 심도도 함께 넓어지고 깊어진다. 이런저런 시험은 캠퍼스를 나선 후에도 형식을 달리할 뿐 계속된다.

그렇다면 이행/중개연구에서 풀고 있는 문제는 어떠할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답이 없는 시험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정답을 맞추면 점수가 주어지고 나의 경쟁자들보다 영어 한 문장, 수학 한문제를 더 풀면 내가 원하는 등수를 받아 칭찬을 받고 내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들어가 주위의 부러움의 시선을 마음껏 즐기며 우쭐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공자들' 세상의 법칙이고 치열한 경쟁만 존재할 뿐 모험과 창의, 개척이라는 미지의 영역에서는 통하지 않는 아마추어들 사이에 통용되는 규율이다. 누구나 나에게 맞고, 재미있다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생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나름의 목표를 달성해서 이름을 남겨 볼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전공으로 택한다.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다 보면 어느날 '전공자'의 신분에서 '전문가'로 불리우는 자신을 발견한다.

계속해서 연구, 정진하면 누군가 나를 '권위자'라고 불러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간이 온다. 그런데 으쓱하거나 충분히 즐길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더 이상 전공자 시절 정답을 골라내거나 빈칸을 매꿔서 100점을 맞을 수 있는 평화로운 시험 문제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누가 정답을 더 맞추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보다 오답을 덜 쓰느냐의 속쓰린 시험시간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100점은 커녕 0점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정답이 없는 문제' 바로 이것이 이행/중개연구가 풀고 있는 시험이다. 누가 얼마나 덜 틀린 답을 쓰고 감점을 덜받느냐, 성공의 기준이 100점을 맞는 것이 아니라 0점을 받지 않는 것인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행/중개연구를 이끄는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높고 깊은 전문성이 필요할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답이 없는 시험문제의 답을 쓰는 것은 축적된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행간의 뜻을 읽는 능력, 페이지의 반대편까지도 꿰뚫어보는 투시안 등이 필요하다. 사회에서 이단아, 기인으로 봐줄 정도의 혁신적인 사고기전이 필요하다. 경솔하게 성공, 실패 혹은 맞고 틀림을 판정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white'를 두고 이것이 무슨 색깔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상되는 상황은 손을 들고 하얀색입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똑똑한' 학생과 초록색~~이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엉뚱한 답을 말하는 '바보' 학생이 있을 수 있다. 수업하는 선생님에게도 선생님을 따라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누가 옳고 높은 점수를 받을지 판정하기가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의대대학원에서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고 신중하게 판정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하얀색입니다, 빨간색입니다 라고 명백하게 정답과 오답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정답은 하얀색입니다, 수업 끝! 이라고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수는 많지 않지만 '파란색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학생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콕집어 찍은 100점짜리 정답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0점짜리 오답은 아니다.

이행/중개연구를 이끄는 전문가, 권위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이런 학생(동료)들의 기발한 사고방식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발견하고 이 학생(동료)이 '파란색이 아니고, 보라색도 아니고, 노랑색도 아닌 것 같고를 거쳐 하얀색입니다'라고 답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파란색이 아니라고 답할 수도 있구나, 그런데 왜 그런식으로 답을 구했지? 파란색이 아니라면 무슨 색일까? 이렇게 서로 되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쳐 학생은 선생님의 지식을 전달받고 선생님은 이런 과정에서 신기하고 희한한 학생의 사고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그 결과로 선생님은 새로운 사고기전을, 학생은 자신의 독특한 사고방법으로도 옳은 답을 구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이런 상호작용들이 이행/중개연구 분야의 자산으로 축적된다.

시냇물이 모여 개천을, 강을 이루고 거대한 바다로 모이듯이 이러한 말초의 작은 기이함, 특이한 사고에 대한 유연한 대처와 해석, 창의력이 모여 이행/중개연구의 기간이 되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공식에 대입해서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 풀이와 공식을 만들어가면서 써내는 답을 평가하는 잣대는 분명하게 달라야한다. 너무 쉽고 단호하게 right 또는 wrong이라고 경직되고 좁은 시야의 판단으로 판정을 해서는 안된다.

혈관의 내피세포에서 발견된 혈관내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VEGFR)가 암세포에도 발현되었다고 보고했다가 죽을 뻔한 그분(!)과 미사일같이 날라가 암세포만 공격해서 부작용없이 암을 정복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또 다른 분(!)은 너무 경직되고 얕은 지식과 경험의 잣대로 판정된 오답과 정답의 희생자와 수혜자였다. 존중받아야 할 과학자가 무지한 중생들의 왕따놀이에 희생되고 설익은 과학자가 충성도 높은 신도들에 의해 제단에서 설교를 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만일 충분히 열린 관점으로 접근하고 바라보았다면, 물구나무를 서서 바라보고 거울에도 비추어보고 그럴수도 있겠구나, 아닐지도 모른다 라고 해석해보았다면 두 명 다 정당한 평가와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두 연구 모두 의생명과학분야의 밑거름이 된 중요한 업적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일단 던져 놓고 차지해서 실컷 누리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흐지부지 되고 잽싸게 다음 주제어로 옮겨 타 새로운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한 세태에서 벗어나 끝까지 추적해서 최종 결과를 확인하고 해명을 듣는 after service, 즉 사회적/과학적 추적(social/scientific follow up)이 이루어져 왔다면 무사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똑똑한(smart) 사람들은 얼마든지 옳고(right) 그르다고(wrong) 똑부러지게 구분하고 판정할 수 있다. 어쩌면 세상이 기다리고 열광하는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옳지 않을 수도 혹은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maybe not right and/or maybe not wrong) 라고 여유 있게 받아들이고 여지가 있는 판정은 현명한(wise) 사람들 만이 할 수 있다. 이행/중개연구는 많은 현명한 연구자들이 필요하다. 필자가 미국에서 늘 하던 의대수업의 마지막 맺음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암세포만큼 똑똑하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암세포가 우리보다 더 현명하기(wise) 때문이다. 한 수용체를 무력화시키면 다른 수용체를 이용하고, 늘 이용하던 신호전달체계가 막히면 다른 길로 돌아가고, 유전자적 변이를 일으켜서 치료에 대한 내성을 만들더니, 정말로 안되겠다 싶으면 아예 동면상태로 죽은척 하고 있다가 다시 깨어난다. 참으로 얄미울정도로 지혜롭고 현명한 이런 놈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지치지말고 이들보다 더 현명해져야겠다."

최근에 들은 주옥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이행/중개연구자들이 명심하고 가슴 깊이 새겨야할 기가막힌 내용이다. [5편 마지막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그대가 옳다고 상대방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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