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벤처 지엘팜텍 설립...국내 위탁제조판매 1호

왕훈식 지엘팜텍 대표 겸 지엘파마 공동대표(48)는 국내 제약산업계에서 알아주는 의약품 제형설계 전문가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쓸만한 무기'를 국내 제약회사들에게  공급하는 '병참기지 회사'를 18년간 경영해 왔다.

1997년 중앙대 약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동아제약 연구원으로 입사해 자신의 제형연구 성과가 글로벌 기업에 라이센스 아웃되면서 회사에 큰 이익을 안겼지만, 자신의 부서를 집중 지원해 주지 않은 서운함에 서른 나이에 사외 동료들과 같이 제형설계 기반의 벤처, 지엘팜텍을 세웠다.

많은 도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왕 대표는 18년 간 의욕적으로 도전한 프로젝트에서 몇 번의 실패를 했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이젠 신약개발 과제까지 운용할만큼 역량있는 회사로 키워냈다.

'우리나라 1호 위탁제조판매업'이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 왕 대표는 무형의 기회를 구체화시키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르몬 생산시설에 주목해 크라운제약을 인수, 자기 회사의 발전과 함께 국내 제약기업들에게 호르몬 비즈니스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혁신신약 개발 생태계에서 왕 대표는 자신과 그의 회사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제형설계 기술을 통해 '밸류프로모터(Value Promoter)'를 꿈꾼다. 물질을 발견한 신약개발 연구자와 같이 스테이크 홀더로써 발견된 물질의 가치를 높여 라이센스 딜을 하거나, 끝까지 개발돼 세계 각국의 약국 진열대에 놓이는데 자신의 역량과 기술이 쓰이기를 희망한다.

왕훈식 지엘팜텍 대표는 제형설계 전문가로 국내 제약회사들에게 영업과 마케팅에서 기회가 있는 의약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크라운제약을 인수해 지엘파마로 출범시키고 호르몬제제 개발에 나서 국내 기업들에게 호르몬제제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줬다. 지엘팜텍은 연구개발을, 지엘파마는 연구 결과를 시험생산하며 의약품 개발에서 속도를 확보했다. 제형설계로 발전한 왕 대표는 이제 신약 프로젝트도 운용하고 있다.

크라운제약 인수해 국내기업들에 호르몬시장 기회 창출
B2B 지엘팜텍, 오픈이노베이션 시대에 국내사 병참기지

-2002년 동아제약 연구원이면 최고인데,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른에 창업하셨다.

"하던 연구가 글로벌기업 존슨&존슨 산하 얀센과 기술 계약을 맺게 됐어요. 운이 좋았죠. 그런데 어린 나이에 굵직한 기록 하나를 갖게 되니 회사가 제 연구분야를 적극 후원해 줄것으로 기대를 품었어요.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회사는 무관심했죠. 원망이 생기면서 이걸 나가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구요. 이제,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때 회사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 때 서운하셨던 게, 이제는 이해가 되시나요?
   
"동아제약은 당시 업계 1위를 놓치지 않던 곳으로 연구원만 300명에 달했어요. 신약연구, 바이오연구, 전임상효력연구 등 많은 조직이 있었는데 회사가 한정된 자원을 제가 소속한 제품개발연구팀, 다시 말해 빨리 제품을 내는 조직한테만 집중해 배분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제 성과만 크게 보이던 젊은 연구원이 어떻게 회사의 입장을 살필 수 있었겠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하지만 큰 그림을 봐야하는 경영자 시각에서 돌이켜보면 얼마든 있을 수 있는 이야기죠."

-대표님 인생 궤도를 바꾼 그 연구, 얀센에 기술수출한 연구는 뭔가요.

"손발톱 무좀치료제로 한국얀센이 판매하던 스포라녹스의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특수 제형설계 연구였어요. 흡수율을 높이기위해 큰 규모 제약회사들이 경쟁이 붙었는데 동아가 해냈죠. 결과를 냈을 때 얀센도 처음엔 믿지 않았어요. 한국 제약사가 이 정도 퍼포먼스를 내는 게 가능해? 이렇게 생각한 것같았어요. 글로벌 얀센이 퍼포먼스를 테스트하고 계약을 맺었죠."

-그래서 그 연구가 스포라녹스에 반영이 됐나요?

"600만달러 일시불, 경상기술료 별도, 글로벌 채택시 매출대비 일정 비율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글로벌 얀센이 기술을 사갔어요. 얀센은 그 때 글로벌 기술 스위치까지 염두에 둔다고 했었죠. 아쉽게도 유럽 임상 1상 시험에서 결과가 예상만큼 나오지 못해 중단됐어요. 인종과 푸드 콘텐츠로 인한 차이 때문으로 추정됐었죠."

-신박한 그 연구 테마는 어떻게 발굴한 거죠?

"당시 환경이 그랬어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뜨거웠던 게 슈퍼 제네릭, 즉 개량신약이었죠. 혁신신약으로 바로 가기엔 역량 부족 등 요원하니 중간단계 연구를 먼저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전략이 유력한 시절이었죠.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며 정부가 G7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신약개발을 독려하던 때기도 하고요. 현재 대표이신 당시 우종수 한미약품 연구원이 노바티스 면역억제제를 개량해 노바티스에 600만 달러 이상 받고 기술을 수출하는 기념비적 이벤트도 있었죠. 일양약품, 유한양행 등 유력한 제약회사들이 제형설계 기반 의약품 개발에 참여해 붐이 일었어요."

-서른, 기어이 일을 내셨죠.

"바이오벤처 1차 붐의 시기였어요. IT벤처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 바이오벤처가 싹을 틔우던 시기로 당시 벤처캐피탈(VC)들은 스타트머니로 대개 10억가량 투자했던 시절이었죠. 5명이 의기투합했어요." 

-핵심기술은 제형설계 기반 개량신약 개발인데, 투자자들을 어떻게 이해시키셨나요? 순순히 자금을 대 주던가요?

"지금은 글로벌기업에 흡수돼 사라진 미국 알자 사(Alza)를 예로 들며 제형적 기반으로 얼마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신약개발보다 짧은 시간 안에 낮은 실패율로 성공할 수 있다고 설득했죠. 시대적 환경 덕분에 귀를 열어 주시더라구요."

-누가 제일 먼저 협력의 손을 내밀었나요?

"케토톱 브랜드를 갖고 있던 태평약제약(한독에 흡수)을 산하에 둔 아모레퍼시픽이었죠. 약물전달(DDS) 디비전을 가동 중이었으니 제형설계 기반의 개량신약 분야를 수월하게 이해했죠. 벤처 컴플렉스를 갖고 있던 OCI도 투자했고, 그 건물에 둥지를 틀 수 있게 해 줬죠. 혁신신약 개발에 매달리던 LG생명과학(현 LG화학)에게서 전략적 투자도 받았어요. 내부에 SD(Speed&Dynamic)라는 디비전이 있었는데, 이 그룹은 내부자원은 쓰지 않으면서 난도있는 제네릭 개발을 해야하는 미션을 부여받고 있었죠.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하면서 둘 사이 협력의 깊이를 더하게 됐어요."
   
-파이낸셜 투자가 일상화된 요즘과 다르게 당시엔 전략적 투자라는 용어가 흔했죠.

"그렇습니다. 아모레퍼시픽도, LG생명과학도 우리가 낸 성과를 이전하려는 전략적 투자였어요. 번체캐피탈한테 투자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규모는 요즘과 견줘보면 크지 않았죠."

-지엘팜텍이란 벤처를 차리고 제형설계 기반 개량신약보다 제네릭에 먼저 손을 대셨는데요.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단점을 개선하든, 장점을 부가하든 기존에 없던 제품을 개발하는 게 우리의 모토였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제네릭 개발에 먼저 손을 댔죠. 지금이나 그 때나 제약회사가 300개 이상됐는데, 당시 내부 연구소가 있는 제약사는 50곳이 채 되지 않았어요. 의약분업이 되고 생물학적 동등성시험 등 휴먼 스터디가 필요한 때라 포뮬레이션 사이언스 역량이 없는 회사들이 금세 고객이 됐습니다."

-내부 연구소가 있는 곳은 외부 연구에 배타적이 잖아요. 일종의 NIH 증후군(not invented here syndrome)은 어느 기업이나 다 있는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시대 환경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고개를 들면서 핵심연구는 우리가 하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가져오자하는 분위기가 점차 형성되었죠. 우리같은 신진 플레이어들이 제약산업의 축이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감사하게도 기업들이 마음의 문을 열며 저희를 받아들였죠. 이제, 모든 연구를 내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기업들의 정서는 명확해 졌잖아요."
     
-등산하다 중간에 휴식을 하면 목표한 정상을 잊고 주저앉기 십상이잖아요. 지엘팜텍이 목표했던 제형설계 기반 첫 작품은 언제 시작됐죠?

"제네릭으로 첫 해부터 매출이 생기고 현금이 창출되는 것은 좋았는데, 2002년 창업하고 5년이 흐른 뒤 아, 이게 현금이 축적되는 모델은 아니구나 하는 각성하게 됐어요. 저는 연구원이었고, 대표이사님이 따로 계셨는데, 더 늦기 전에 원래 하려던 것에 도전하자고 5명의 리더들이 숙의 끝에 동의를 했어요. 큰 과제를 하다가 망하면 청산하자는 결심으로 최초 목표점을 회복했죠."

-그러면 첫 과제로 선택한 연구는 뭐였나요?

"지금은 한미약품이 일반화시킨 복합제였어요. 글로벌 라이센스 아웃을 목표로 전립선비대증(BPH) 치료제의 양대산맥을 복합제로 만들려고 했어요. 전립선 크기를 줄여주는 프로스카(피나스테리드)와 요도를 확장시켜주는 하루날(탐스로신)의 복합제였죠. 글로벌기업도 도전했다가 중단한 과제였는데, 겁없이 뛰어들어 전임상부터 임상3상까지 진입했죠. 그런데 결국 실패했어요. 5년 넘게 했는데 말이죠."

-낙담이 크셨겠어요. 쓰라린 기억을 되살리기 싫으시겠지만 실패 요인은 어디에 있었나요?

"두 약제의 병용 임상에서 효과가 좋다는 글로벌 연구에 기반해 복합제를 만들려 한 건데, 일단은 하루날의 제형설계 자체가 어려웠죠. 허가규정도 있었죠. 1+1=2라는 결과가 나오면 허가를 안해주거든요. 결과치가 2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통계로 입증해야 하는 데, 애석하게도 우리 연구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어요. 감당하기 너무 큰 규모의 임상시험이 패착이었죠. 돈을 아끼려 작은 규모 임상을 했거든요."

-패착이라, 임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거죠?

"임상시험 대상자가 3000명은 돼야 했는데, 고작 360명 가지고 했어요. 돈 아껴보자고 무식하게 용감했던 거죠. 전체 임상비용을 감당할 재간이 없으니까... 임상에 진입했다고 하니까 외국 기업에서 연락이 왔었고, 미팅 끝에 임상결과가 좋으면 딜을 모색해보자고 했었죠. 무언가 손에 잡히는 희망적 느낌으로 가득찬 때였죠."

-5년 투자가 실패로 귀결될 때 회사도 휘청했겠어요.

"다행히 동시 임상에 진입한 과제가 3개나 됐어요. 희망은 남아있던 거죠. 2008년 제가 대표가 됐는데, 다시한번 제네릭 안하고 제형기반 신제품만 하겠다, 안되면 회사를 접겠다고 했는데 리더들이 또다시 동의를 해 줬어요. 3가지 과제는 BHP복합제, 하루날 추가개선한 고함량 신제품 개발, 동아제약 위염치료제 스티렌 개선 등이었죠. 결국 우리 지엘팜텍, 제일약품, 대원제약, 종근당 등 컨소시엄은 스티렌 개선에 성공했죠. 두개 실패하고 하나를 건졌어요."

-동아제약 연구원 출신이 동아제약에 아픔을 안겼네요.  피크세일 때 스티렌은 870억원을 찍었던 품목이었으니까요.

"스티렌 특허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당연히 동아제약에게 특허연장을 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해보자고 먼저 제안을 했는 데, 둘 사이에 협상이 잘 진행되다가 끝판에 무산됐어요. 어쩔 수 없이 컨소시엄으로 가게된 거죠. 동아와 12건의 쟁송을 벌여 다 승소해 제품을 내놓게 된거에요. 스티렌 개발과 관련해 저는 식약처에 참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네? 식약처가 왜 이 대목에서 나오는 거죠? 지원을 받은 게 있나요?

"식약처가 위탁제조 판매업이란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저희에게 기회가 생겼어요 2008년 4월 약사법 개정 이전에는 제조시설이 있는 자에게만 개별 품목허가를 부여했어요. 그런데 개정 후 식약처는 임상시험을 했다는 요건을 충족하면 제조시설이 없더라도, CMO를 활용해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게 한거죠. 제조시설이 없던 저희 같은 기업이 날개를 달게 된 것인데, 저희가 1호 사업자예요.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위탁제조판매업 지위를 받은 회사가 10개도 채 안됩니다."

-위탁제조판매업과 스티렌이 지엘팜텍에겐 튼튼한 동아줄이 됐네요.

"위탁제조판매업이 허용되면서 스티렌을 개발할 수 있었고, 또 스티렌이 없었다면 회사를 접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찔한 경험을 하고 나니 심리적 위축이 오더라구요. 잘 돼서 다행인데 계속해서 이렇게 할 수 있나 하는 불안이 지속되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작년 9년 연구 끝에 화이자제약의 신경통증치료제 리리카를 개선한 제품을 내놓아 또 안도하게 됐습니다."

-리리카에 무슨 부가가치를 덧붙인 거죠?

"분자구조 특수함 때문에 하루 2번 먹던 약을 하루 1번 먹는 것으로 개선하려 했어요. 야간에 더 심한 신경통증을 자는 동안 덜 느끼도록. 밤에 수면의 질이 좋아진다는 성과를 도출해 글로벌 라이센스 아웃을 하려 했는데, 임상으로 입증을 못했어요. 다만, 한번 복용으로 두번 복용하는 것과 비슷한 통증관리가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허가를 받았어요. 개발 당시와 달리 요즘 복용 횟수를 줄이는 것만으로 는 어필이 안되지만, 그래도 한국은 영업 마케팅 주력의 성과들이 존재하니까 복용횟수 차이의 부가가치는 적지 않습니다."

-복용횟수를 줄인 제품, 화이자에서도 나오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화이자도 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죠. 화이자도 같은 필요를 느낀 것이니 타깃은 제대로 잡은 셈이죠. 미국에선 화이자가 우리보다 1년 먼저 허가받고, 국내에선 몇개월 차이 나지 않게 우리 제품이 등록됐어요. 제형 설계 차이가 있는데, 화이자는 복용 횟수를 줄이기 위해 주성분 함량을 10% 가량 더 넣었지만, 이 정도로 미국에서 우리 제품을 어필하기엔 무리가 있죠. 물론 화이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유럽 파트너만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선 작년 1월 품목허가를 받고 4월 지엘팜텍, 지엘파마, 그리고 LG화학 등 컨소시엄 파트너들이 시장에 제품을 론칭했어요."

-2008년 연구원에서 대표가 되셨죠. 동아제약 연구원 일 때 큰 성과에도 회사가 지원해 주지 않은 게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하셨고요. 대표가 되시니 어떻든가요.

"전임 대표님이 3년을 같이 해 주셨어요. 고객들이 지엘팜텍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경험해 보라고 하셨죠. 경쟁사 정보 등 대표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시장에서 경험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재밌겠다 싶어 잠재고객들이 있는 시장으로 나갔는데, 저를 참 겸손하게 만들어주었죠. 시장과 고객이 말이죠. 우리 R&D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는데, R&D는 당연한 역량일 뿐이더군요. 시장의 선택은 이외 또다른 요소들이 결합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득했습니다."

-연구원 출신 대표의 장점이라면 연구를 위한 연구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연구원이었던 제가 필드에 나가 돈을 가져오니까, 연구에 커머셜 인사이트를 담자는 제 의견에 연구원들이 전과 다르게 호응을 해주더군요. 원래 연구원들에게는 고유한 색채가 있고, 연구원들은 그것을 굉장히 중시하는데 그 넘어 시장을 이해하려고 하더군요. 참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생산시설을 갖춘 크라운제약을 인수해 지엘파마를 출범시키셨어요. 새로운 필요가 생긴거겠죠?

"2016년 10월 코스닥 상장을 하면서 지엘팜텍 리더들은 다시 중기 비전을 두고 미팅을 했어요. 그 때 내린 결론이 생산시설이 있는 제약법인을 인수하자는 거였어요. 끝이 난 연구를 컨소시엄 회사들에게 이전하는 과정이 아주 힘겨웠는데, CMO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CMO도 여전히 우리 시설이 아니다보니 연구결과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속도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죠. 차별화된 제조소를 찾고 있었죠."

-이 대목에서 잠깐 생각나는 제약사가 있습니다. 제형개발연구센터와 공장이 가까워 연구결과를 생산공정에 태워 테스트해 볼 수 있어 속도전이 가능하다는 한미약품 말입니다.

"그렇죠. 특화제형이나 일반제형이나 연구개발을 마치면 트러블을 미리 점검해 볼 수 있는 시험 생산이 중요하거든요. CMO와 일을하면 시생산을 하고 싶어도 각자 입장이 다르니 협의에만 몇개월 소요되는 경우가 꽤 있어요. 태생적인 한계일 수 밖에 없죠. 그러다, 지엘파마를 인수하면서 연구역량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거죠. 지엘팜텍과 좋은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호르몬제제 생산시설은 국내 3개사 밖에 되지 않는다. 지엘파마는 호르몬제제 생산시설을 갖춰 국내 기업들에게 이 시장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엘팜텍이 개발해 지엘파마에서 생산한 국내제약회사 제품들.
호르몬제제 생산시설은 국내 3개사 밖에 되지 않는다. 지엘파마는 호르몬제제 생산시설을 갖춰 국내 기업들에게 이 시장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엘팜텍이 개발해 지엘파마에서 생산한 국내제약회사 제품들.

-뜻을 세우면 이뤄지나 봅니다. 크라운제약이 나타났잖아요. 무엇이 차별화된 제조소였나요?

"리더들간 제조시설이 있는 기업인수에 대한 합의를 마친게 2017년 1월이었는데, 마침 5월에 크라운제약의 인수제안을 받게됐어요. 호르몬, 내용고형제, 내용액제 제형 생산동이 있는 곳이었죠. 무엇보다 국내에 완제 제조업소가 350개가량 있는데, 호르몬생산시설을 갖춘 곳은 3개 밖에 안돼요. 그 중 한곳이 크라운제약이었어요. 호르몬은 특화된 분야라 괜찮겠다고 판단하고 바로 인수 작업에 들어가 3개월 만에 마쳤습니다."

-인수를 하고나서 어떤 시도를 했나요?

"다시 중간관리자까지 포함해 회사 리더들이 격론을 벌였어요. 3년 연속 적자였던 이 회사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방안을 찾기 위한 것이었죠. 특화된 시설에 맞춰 호르몬 제품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국내 호르몬 시장이 1600억원 정도 되는데 이중 95%가 완제수입품이더라구요. 바이엘, 알보젠, MSD가 주로 수입 판매를 했는데, 재미있는 건 국내 제약회사가 판매하는 호르몬제품조차 유럽에서 수입한 제품들이었어요. 사전피임제인 머시론 마이보라 같은 제품의 연구를 연구소가 신속하게 해냈고, 지엘파마 생산시설에 얹혀 생산까지 문제가 없다는 허가를 취득해 놓았어요."

-준비를 해 놓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국내 제약회사들에게 제안을 했어요. 전량 수입하는데 우리가 공급선 다변화의 믿을만한 옵션이라는 사실을 설명했죠. 당연히 국내제약사는 검증을 요구했고, 검증이 끝나면서 이 달부터 동아제약에 마이보라를 공급하게 됩니다. 물론 전량 공급은 아니죠. 마이보라 브랜드 소유권을 가진 동아제약도 완제품을 수입해야하는 구조였는데, 글로벌 CMO가 한번 생산해 공급해주면 국내 시장서 품절이 나도 곧바로 생산을 못해 주죠. 특수한 호르몬 시장인데 지엘파마는 이런 점에서 강력한 대안입니다."

-브라보! 그러고보면 국내 호르몬시장이 클래야 클 수 없었던 거군요. 제품 공급하는 강력한 플레이어가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호르몬 제품을 공급해 줄 병참기지가 없다보니 국내 제약사들의 시장 진출이 어려웠던 겁니다. 지엘팜텍과 지엘파마가 같이 움직이니까 시장 확대 조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급선이 없어 기회를 찾지 못했던 기업들이 새로운 수요를 주목할 수 있게 된거죠. 호르몬 분야 연구개발도 촉진시킬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제조해 줄 곳이 생겼으니까요. 또 호르몬은 작은 시장이라서 덜 주목한 제약사들이 누군가 연구개발해 제조까지 해 준다면 충분히 판매해 볼만한 여건도 생긴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호르몬 시장에 완제품을 공급하는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어요."

-마이보라 말고 다른 케이스도 있나요?

"일동제약 케이스가 있어요. 일반의약품 피임제 에이리스를 화이자제약에서 받아다 판매했는데, 여러 검증을 거치고 나서 일동이 지엘파마로부터 공급받기로 했죠. 국내 공급선, 다시말해 지엘파마가 있어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여성 갱년기 호르몬대체제(HRT) 전문의약품도 있는데, 우리가 생동성시험을 거쳐 허가받아 국내 제약사에 공급하게 됐어요."

-지엘파마 인수가 신의 한수가 됐군요.

"2018년 1월말에야 완전 인수했는데, 올해는 흑자전환 할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호르몬제가 아니더라도 지엘팜텍의 연구를 빠르게 시험생산을 통해 완성함으로써 양사의 시너지효과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지엘팜텍과 지엘파마, 연구개발과 생산 속도 확보
임상 실패 안구건조증 물질, 흡수개선하며 가치 높여
 

-누구나 신약을 꿈꾸는 바이오벤처시대인데, 제형설계 전문기업 지엘팜텍의 꿈도 신약을 향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시장에 나와있는 전문의약품에 제형설계 기술로 혁신의 가치를 더해왔는데, 이제 신약개발 쪽으로 한 걸음을 옮기고 있어요. 동아제약에서 안구건조증 관련 파이라인을 사왔죠. 우리가 신약 강자는 아니니, 해볼만한 신약과제를 먼저 보게 됐어요. 동아제약이 제시한 신약 파이프라인 가운데 2상에 실패한 안구건조증 물질이 흡수설계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과학적 의구심을 갖고 6개월 정도 스터디를 했는데 흡수개선이 되니 효과가 극명하게 개선된다는 걸 알게 돼 계약을 맺었죠. 한국에서 코카시안과 동양인 스터디가 곧 마무리되고요, 그러면 임상2상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임상개발을 높여 라이센스 아웃을 모색할 겁니다."

-혁신신약 개발은 신물질 그 자체가 빛나는 가치지만, 최종 신약으로 가려면 제형설계도 중요하잖아요. 이런 관점에서 대표님은 물론 지엘팜텍도 혁신신약 개발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인데요.

"신물질 신약 회사들이 주목받고 있는 걸 잘 압니다. 디스커버리 분야로 우리와 궤를 달리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엔 만나게 됩니다. 새 매커니즘을 선정하고, 타깃 컴파운드를 찾아 안전하고 효과좋은 약을 개발하는 전략이 중요한 것이죠. 라이센스 딜을 하는 회사들에겐 신물질 그 자체가 가치죠. 그러나 허가를 목전에 둔 임상단계에 진입하게되면 제형설계와 CMC가 중요해집니다. 즉, 끝까지 가려다보면 제형설계와 흡수문제에 봉착하는데 다국적제약회사들은 흡수문제에 직면할 때 이를 개선하기보다 새 물질을 찾는게 낫다고 판단을 할 정도죠."                        
 
-제형설계 전문회사인데, 이런 문제를 협의하려는 사례가 있나요?

"문제를 같이 풀어주면 안되겠냐는 터치가 예전에 비해 참 많이 늘었어요. 전임상에서 효과가 너무 좋은데 임상에서 흡수가 잘 안 된다거나, 최대 반감기가 너무 짧아 하루 기본 4~5회 먹어야 하는 상태를 제형적으로 수식해보고 싶어하는 것이죠. 마땅한 전문그룹이 없으니 저희에게 문의하는 듯합니다."

-그러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마음이 열려 있지만 우리는 돈을 받고 딱 그 일만 해주는 CRO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서비스 사업이잖아요. 이 보다 스테이크 홀더로 동참해 우리가 제형설계 파트를 맡아 함께 라이센스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내일처럼 하고 싶은 거죠. 좋은 뉴 컴파운드를 찾은 분들이 이 물질의 단점을 제형적으로 보완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한 상태로 함께하는 것이죠. 버리기 아까운, 그리고 좋은 리드 컴파운드를 개선해내는 이런 길에 우리가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밸류프로모터로서 리스크도, 이익도 세어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