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김선진 플랫바이오 회장

혁신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이행/중개연구의 필요성(2)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시험 결과를 분석해 볼 기회가 여러 차례 주어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케이스는 외부에서 의뢰된 임상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해 '실패'라는 오명을 쓴 물질들이다. 또 다른 경우 임상승인의 성공을 이룬 외국 빅파마들의 케이스를 자율학습의 목적으로 공부하는 경우다.

먼저 성공의 경우를 보면 물질의 효능, 독성, 임상디자인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물론 성공이라는 결과가 일종의 긍정적 편견을 만들어서 결점이 안보이게 만들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한 케이스의 대부분은 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내리는 결정이 자연스럽고 논리적 뒷받침이 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결정을 내리고 다음 과정으로 진행하는데 무리수나 도박에 가까운 위험성을 감수한 증거가 없다.

중간에 관찰된 부정적인 결과는 여지없이 확장 디자인에 혹은 다음 단계의 임상디자인에 반영돼 비교지표의 분석에서 통계학적으로 유의하게 개선된 결과가 도출된다. 입에서 탄성이 나올 정도로 기가막힌 디자인에 흡사 답을 알고 시험문제를 푼 느낌이 든다. 이러한 느낌대로 성공한 임상은 비교변수가 설정돼 있고 맞춤형의 통계학적인 비교가 이뤄졌다.

그렇다고 매일 탄복과 부러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도 더 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성공의 예를 공부해서 잘한 점을 배우는 것보다 난이도가 낮은 실패의 경우를 연구해서 잘못한 것을 찾아내고 회피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좋다. 실패한 사례를 복기해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임상시험의 각 단계에서 내린 결론과 결정에서 수긍할만 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당한 실패 vs 위험한 성공

물론 실패라는 선입견이 해석을 왜곡시킬수 있지만 아무리 관대한 시각으로 봐도 결정의 근거가 과학적 데이터보다 물질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회사에 대한 투자유치나 주가 유지, 상승을 위하여 수동적인 결정을 내리고 홍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디까지나 과학은 과학으로 뒷받침하고 풀어야한다.

실패는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실패가 비가역적이며, 이유가 분명하고 객관적인 '정당한 실패'가 있다. 둘째는 실패의 결론이 불명확하고 이유가 모호해 임상시험의 중단보다는 근거없는 임상시험의 반복이나 심지어 확대를 결정하는 '위험한 성공'이다.

정당한 실패는, 결론은 실패로 끝났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이다. 즉 실패의 원인이 정확히 분석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의 임상시험에서 동일한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는 학습의 자료가 확보되며 주위에서 임상중단의 당위성과 결정에 동의와 지지를 어렵지 않게 얻는 경우다. 물질의 유효한 효능이나 고유 독성의 문제가 아니라 임상시험에서 물질의 운용이 잘못된 예가 대표적이다.

특히 임상에서 정당하게 실패한 물질은 적절한 비임상시험 (전임상시험)을 거쳐서 임상에 재진입 (re-entry) 혹은 재배치(repositioning)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임상데이터의 면밀한 재분석을 통해서 정당한 실패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역설적으로 비가역적인 실패는 실패의 원인을 제거하고, 임상시험디자인을 개선한다면 성공으로 바꿀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다. 이와같이 정당한 실패는 잃은 것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의 많은 의미와 가치를 남겨준다.

반면 '위험한 성공'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실패를 선고하기가 불가능하고 임상시험 데이터의 재분석이 어렵거나, 설사 재분석 과정을 거쳐도 유의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경우다. 완성도가 낮은 전임상데이터를 바탕으로 성급하게 임상진입이 이루어진 물질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임상시험의 실패의 논리적인 기전을 찾기 힘들어 주위의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억지스러운 해석을 하게된다. 그 결과 무리한 해결책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결국 물질 자체의 생존과 미래가 불확실하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물론 신약개발의 환경은 녹록하지않고 실제와 과학적인 논리로만 풀고자 하는 (연구자의) 이상 사이에는 아주 큰 괴리가 있다. 임상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충격을 반전시킬수 있는 대책을 내 놓아야하는 개발주체의 입장에서 실패를 복기하고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에 가까울수 있다. 또한 회사의 가치하락에 의한 투자손실을 걱정해야하는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실패의 책임을 묻고 손실을 회복할 가시적인 계획을 요구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단지 양측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과 필요한 시간 등의 필요충분 조건들의 차이가 클 뿐이다. 성공적이지 못한 임상시험결과를 대하는 임상이행/중개연구의 역할은 무엇인가? 흔히 이야기하는 역이행/중개연구 (reverse translational research)가 바로 그것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서두에서 이야기한 'from the bench to the bed side'의 반대방향의 연구를 일컫는다. 이것 역시 무엇이라기 보다는 '어떻게'라고 정의가 된다. 역이행/중개연구의 첫번째 임무는 성공하지 못한 임상시험의 결과가 정당한 실패인지 아니면 위험한 성공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임상부터 적응증과 임상디자인 등 임상진입의 근거와 임상완료까지 도출된 데이터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을 통해서 어떠한 실패인지 규정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의 기준이 있는지 검증한다. 만일 정당한 실패로 판단이 되면 그 다음 과정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물질의 효능이나 독성, 가치면에서 더 우수한 물질이 있는 경우 임상중단을 결정하고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당당한 중단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또 다른 전략은 물질의 기대가치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같은 적응증에 개선된 투여방법이나 용법을 통해서 임상에 재진입 (re-entry) 시키거나 새로운 적응증, 용법, 투여방법을 개발해 임상을 재개 재배치(repositioning) 한다. 이 경우 추가적인 전임상시험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반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찾기 힘든 위험한 성공의 범주에 드는 물질의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난이도가 높은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충분한 검토없이 프로토콜의 최소변경을 통해서 같은 적응증에 대한 후속 임상시험의 시작을 원하거나 이미 시작된 경우에는 더욱 힘든 과제가 된다. 이미 임상재진입이나 새로운 적응증을 찾는 임상재개를 위한 추가전임상 시험등의 의견 제시나 임상지속에 대한 부정적인 제안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장애변수를 전제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목표 지표를 달성하지 못해 다시 시작한 임상의 디자인을 다시 바꾸는 일 (protocol ammendment)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덩치가 큰 제약회이건 규모가 작은 바이오벤처이건 임상시험의 실패는 매우 큰 충격이고 회복하기 쉽지않은 사태이나 데이터의 재분석과 추가 비임상시험을 통해서 임상에 재진입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당당한 중단 vs 불안한 지속

임상시험을 완료하는 것은 그것이 전임상, 1상, 2상, 3상을 모두 포함해 대단한 성취다. 그 결과만을 가지고 쉽게 평가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만큼 신약개발 과정은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다. 하지만 실상은 마지막 결과가 성공이냐 실패냐만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개발주체에게는 사활을 걸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임상시험 완료후 목표 지표를 달성했고 대조군과 비교하여 통계학적인 유의성을 확보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무방하나, 목표지표의 달성을 못했고 대조군과 비교해 통계학적인 유의성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최종 판단하는 것은 허가기관의 몫이라는 의미와 함께 성공에 비해 실패에는 여러 형태가 있기 떄문이다.

물론 임상시험 도중에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에 의해 임상중단이 권고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임상시험이 완료되면 개발주체는 그 결과를 일정 과정 (data base lock, filtering, clearing)을 거쳐서 통계적 분석이 가능한 형태로 정리하고 다양한 통계기법을 동원하여 분석을 한다.

그 최종결과가 ▲설정된 지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대조군과의 비교에서도 통계학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해 허가기관에 허가신청을 못하는 경우 ▲허가신청을 했으나 검토가 거절된 경우 ▲허가신청이 받아 들여져 검토되었으나 승인을 못받는 경우 모두가 임상시험의 실패로 규정된다.

이 경우 대부분의 개발주체는 일단 임상데이터의 하위분석이나 비교변수의 변동을 통하여 통계적인 유의성을 얻을 수 있는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이때 가장 흔하게 내는 결론이 일차지표는 달성 못했으나 2차 지표혹은 새로이 설정할 지표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으로 결론이 날 확률이 높으므로 곧 후속 혹은 확장된 임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속되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시간끌기에 불과한, 막대한 추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 후 실패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임상이행/중개연구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일단 설정된 목표지표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못얻은 이유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즉 비임상시험의 결과나 1, 2상의 결과가 3상에서 이행되지 않은 이유가 물질에 있지 않음을 확인해야 하위분석이나 확장, 후속 임상시험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질의 한계는 단순히 임상 디자인이나 비교지표의 변경으로 극복할 수 없다. 임상실패의 원인이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 다음으로 하위분석에 앞서 데이터 자체의 문제를 검토한다.

물론 지금도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의 문제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후속 시험에서는 환자 포함과 제외의 기준을 바꾸거나 조건을 엄격히 하는 시도는 있다. 하지만 데이터의 품질에 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이 미치는 영향은 하나의 변수에 불과하며 훨씬 더 광범위한 데이터 품질에 대한 검토와 검증이 필요하다.

이를 충족시킬수 있는 임상시험의 실패의 원인이 데이터의 품질에 있다는 것을 판별하는 기수법이 개발되었고 이를 활용하여 활발하고 주도적으로 임상재배치 (repositioning)에 관한 연구개 개시되고 있으며 임상시험의 판도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상시험의 당당한 중단을 선택할지 불안한 지속을 선택할지, 어느쪽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옳을지 냉정하고 대담한 결정이 필요하다.[3편에서 계속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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