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애브비 대외협력부 김유숙 상무

인간 숙주를 찾아 쾌속 질주하는 낯선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여러 제약 기업들은 재택 근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이다. 재택 근무를 시작한지도 두 달이 되어 간다.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데 21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어느 새 집에서 일하는 것이 일상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된 것 같다. 불과 몇 달 전인 지난 해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내가 속한 회사는 지난 해 유연근무제를 시범 운영했다. 영업직과 달리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내근직의 경우 직원들이 부서장과 논의해 다양한 유연 근무 방안을 시도했다. 부서마다 자유롭게 직원 상황에 따라 재택근무의 요일이나 횟수 등을 달리하거나 10시부터 3시까지의 핵심 근무시간을 포함하는 하루 근무시간을 운영하기도 했다.
 
연말 서베이 결과 직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자기 계발 혹은 자녀를 돌보거나 집이 먼 직원들은 러시 아워를 피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거나 재택 근무로 자기만의 혹은 가족과의 시간이 늘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업무 몰입도나 효율성도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를 반영해 올해부터 주 1회 재택근무와 핵심 근무 시간제 등의 스마트워킹 운영을 공식 제도화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우 재택근무나 핵심근무를 실제로 업무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부서 회의에서도 집에서 네트워크 시스템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업무량이나 폭넓은 업무로 부서 내부는 물론 다른 부서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기민한 대응을 해야 하는 업무 상 재택근무의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은 우리 환경을 변화시켰다. 내 업무와 소통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재택근무 시행으로 가족 외 다른 사람들과의 모임이나 미팅을 자제하고 있다. 대신 SNS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활용해 사람들과의 연결과 소통을 활성화하고자 노력 중이다. 동료 직원들과 잦은 소통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물리적 거리의 공백을 메우며 분주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 지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 경제적 타격과 멈춰진 일상으로 퍼지는 바이러스 공포는 심리적 불안마저 야기하고 있지만, 암울한 위기의 순간에도 기회는 함께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눈에 보이거나 느낄 수 없을 뿐. 결코 달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피할 수 없다면,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익숙하지 않던 온라인 회의와 다양한 채널의 이용 경험이 쌓이면서 재택 근무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업무 효율에 대한 불신도 줄었다"

집에서 접속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의 연결은 생각보다 큰 장애물은 아니었다. 해외에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면대면으로 가졌던 미팅도 이제는 온라인 회의로 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회의 대상도 사내 직원들 뿐만 아니라 외부 파트너들까지 넓어졌다. 익숙하지 않던 온라인 회의와 다양한 채널의 이용 경험이 쌓이면서 재택 근무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업무 효율에 대한 불신도 줄었다.

놓치고 있던 소소한 일상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업무의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많은 시간을 업무에 쏟게 된다. 하지만, 평소 잦았던 야근이나 저녁 모임, 출퇴근 준비와 이동 시간없이 늘어난 시간을 활용해 주중에 자주 볼 수 없었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오래된 아파트 단지 내 이름 모를 나무와 꽃, 새소리가 새삼 눈과 귀에 들어오기도 한다.

감염 공포 속에 병원으로 향하는 발길마저 피하게 되는 요즘 제약 산업도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을 개발하고 환자를 치료해 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숭고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치료제를 통해 환자의 삶에 변화를 이끄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음에 다시금 감사하게 되는 이유다.

아파트 산책 길을 나설 때면 어느 새 봄 기운이 느껴지곤 한다. 인류가 직면한 바이러스 팬데믹 위기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처럼, 바이러스에 빼앗긴 일상에도 봄은 찾아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바이러스와의 연결은 차단하면서도 사람들과의 연결과 원활한 소통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새로운 일상을 통해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와 새로운 가능성 또한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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