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구개발 생중계하듯 하는 온라인 기자간담

정교한 각본에따라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스티브 잡스의 재림인 줄 알았다. 검은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대중에게 호기심과 희망을 선사했던 스티브 잡스와 달리 그는 드레스셔츠에 수트 정장으로 집무실 카메라 앞에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관해 설명했다. 그의 메시지가 얼마나 야심차고 희망적이었든지, 내 팔뚝의 피부를 뚫고 코로나19 치료제 주사바늘이 꽂히는 장면까지 앞당겨 연상할 정도였다. 좀더 적극적인 수용자들은 그의 회사 주식 매수로 응답했고 시총은 급등했다. 스마트폰이 아주 다른 세상을 선사했듯, 그의 치료제가 코로나19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는 인류를 건져낼 수 있을까. 바이러스 공격에 나약한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의 계획이 신속 정확하게 뜻대로 이뤄지기를 두손 모아 기도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이야기다.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가능성 하나 붙잡고, 문외한이 벤처를 세워 몸으로 배우고 익히며 실천한 끝에 세계적으로 유력한 바이오시밀러 플레이어가 된 '서 회장의 서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어벤저스 스토리'로 가지를 뻗고 있다. 사스 에볼라 메르스 등 모양을 달리해 나타나는 바이러스 침공에서 인류가 이긴 적은 없었다. 그 때도 요즘처럼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들은 풍년이었지만, 결말은 바이러스가 퇴조하며 연구개발도 유야무야됐다. '시장이 작은 나라에서 발생한 문제라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진단도 나왔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믿거라하는 다국적제약회사들도 별 대안이 없는 현실을 보면 이것이 인류가 처한 바이러스와 전쟁의 진면목 아닌가 싶다.

셀트리온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서 회장은 "6개월 내 인체에 투여할 수 있는 코로나19 항체를 확보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24시간 연구체제에 돌입해 항체 개발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12일 온라인 기자간담을 통해 밝혔다.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23일 온라인 기자간담에서는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의 첫 단계인 항체 후보군(300종)의 구축을 마쳤으며, 속도를 높여 오는 7월 임상시험 1상에 돌입하겠다는 목표까지 기쁜소식을 전했다. 항체 확보에 3~6개월 걸리는데 셀트리온 연구개발진이 24시간 교대 체제로 노력한 결과 항체 확보 시간을 3주로 줄였다는 것이다. 항체를 다룰 줄 아는 바이오시밀러 회사였기에, 중단없이 밀어붙이는 서정진 회장의 실행력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서 회장과 셀트리온 기업문화에서 고 정주영 회장의 모습이 어른 거린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진도를 온라인기자간담으로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셀트리온)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진도를 온라인기자간담으로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셀트리온)

이야기의 장소를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장으로 옮겨 보자. 지금까지 셀트리온이 거둔 성과는 임상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골키퍼로부터 공을 건네 받은 수비수들이 상대 골문으로 진격하기 위한 빌드업 작업에 해당한다. 하프라인을 채 넘지 않은 상황이다. 한 걸음 더 전진할수록 수비수들의 태클과 집요한 압박은 심해질텐데, 그렇다고 하프라인에서 슈팅을 할 수도 없다. 가능성을 높이려면 차근차근 골문 근처로 다가서는 것뿐이다. 어렵사리 골문 근처에 도달해 슈팅을 날렸다고 골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신약 개발이 바로 이러하다. 임상 2상까지 전도유망했던 파이프라인들이 3상에서 고배를 마시는 사례는 통계적으로 십중팔구다. 제약바이오산업계 관계자들이 서 회장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워낙 변수가 많다보니, 신약을 다루는 사람들은 기업설명회(IR) 장에서 조차 말 한마디도 돌다리 두드리며 건너듯 조심스러워 한다.

서정진 회장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그는 주어진 환경과 변화의 포인트를 자신에게 맞도록 편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작년 5월 22일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 앞서서는 "2030년까지 바이오헬스 사업에 40조원을 투자, 바이오시밀러 20개 품목을 개발하겠다"고 선포했다. 인보사 사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선 "제약바이오업계는 실수가 용납되는 곳이 아니다. 특정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제약바이오산업(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일갈했다. 코너에 몰리던 식약처에 대해 "식약처가 인보사를 쉽게 허가해 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식약처가 글로벌스탠다드로 가려면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자해야 한다"고 전혀 새로운 지점에 어젠다를 던져 집중포화를 당하던 식약처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다시한번 셀트리온을 통한 서정진 회장의 코로나19 치료제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연구 모든 과정을 생중계하듯 할 필요는 없다고도 말하고 싶다. 다음 번 등장할 때 '코로나19 치료제'를 들고 대중 앞에 서서 온통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희망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말했던 명언 한마디도 그에게 상기시켜 주려고 한다. 이는 그 뿐만 아니라 신약을 다루는 수많은 연구자와 기업에게도 금과옥조가 될 것이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실수가 용납되는 곳이 아니다. 특정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제약바이오산업(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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