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19 치료제를 향한 드럭 리포지셔닝

어깨를 한번 으쓱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메이드 인 코리아 진단키트'를 앞세워 방역 당국과 의료진이 끈질기게 '코로나19 바이러스' 추격함으로써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백신과 치료제 출현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특히, 세계 보건기구(WHO)가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한 마당이고 보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온 지구촌의 염원이됐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확산될수록 제약회사들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발등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치료제 출현은 더 간절하다.

엄청 긴 시간을 요구하는 치료제 개발과 전염병은 상극이다. 인류가 준비할 틈새없이 변종으로 등장하는 바이러스에 애초부터 마땅한 치료제 후보물질들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보니 제약회사들은 '갑자기 잡힌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옷장을 열어 젖히고 이 옷, 저옷을 몸에 가져다 대어보며 고민하는 여인들'처럼 작용 메카니즘 측면에서 가능성 있어보이는 기존 의약품들을 꺼내 바이러스와 싸움을 시켜보고 있는 중이다. 드럭 리포지셔닝(신약재창출·Drug Repositioning)인데, 우리 믿음의 거의 끝인 글로벌제약회사들도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다.      

국가임상시험재단(이사장 배병준)이 ClinicalTrials.gov에 등록된 코로나19 관련 글로벌 임상시험 현황을 정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다양한 시도가 한 눈에 보인다. 애브비의 후천성면역결핍증(HIV)치료제 칼레트라(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를 비롯해 ▷존슨앤존슨의 HIV 치료제 프레지스타(다루비나르) ▷항암제 ▷독감치료제 ▷신종플루치료제 ▷말라리아치료제 ▷항생제 ▷발기부전치료제 등이 코로나19 치료제 후보군으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이 다 기성품들이라면 한국에서도 3건의 임상을 진행 중인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는 에볼라치료제로 개발중이던 후보물질, 신품이다.

국내 제약회사 두 곳, 일양약품과 부광약품도 기성품의 가능성을 공개해 주식시장을 달궜다. 정부의 '신·변종 바이러스 원천기술 개발' 공모에서 메르스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과제를 따냈던 일양약품은 슈펙트(라도티닙)를 시험관내시험(in vitro)에서 적용했더니 48시간 후 코로나19 바이러스 숫자가 대조군보다 70% 감소했다고 보도자료를 내어 밝혔다. 슈펙트는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로 허가받은 국산신약 18호로, 2017년 파킨슨병 치료효과를 보였다는 동물실험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받았지만 임상진입 등 후속 소식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일양은 코로나 관련 보도자료에서 '효과를 보인다'는 이야기 외 개발에 대한 의지나, 일정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부광약품도 국산신약 11호로 판매되다 장기 사용시 독성 발생 가능성에 관한 이슈로 시장에서 철수했던 B형간염치료제 레보비르(클레부딘)가 시험관내 시험(in vitro)에서 COVID19 치료에 사용중인 HIV 치료제 칼레트라와 유사한 결과를 내는 것을 확인해 특허출원했다고 밝혔다. "레보비르가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억제하는지 기전은 확실하지 않다"고 한계를 명확히 설정한 부광은 일양약품과 달리 식약처와 임상시험 등 향후 계획을 논의하겠다며 개발의지를 적극 표명했다. 동시에 항바이러스제 레보비르가 에볼라바이러스 치료제로 개발되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임상을 진행중인 렘데시비르처럼 바이러스 유전물질의 복제를 억제하는 핵산유사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의 전자현미경 사진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의 전자현미경 사진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 등 해일처럼 닥쳐오는 '바이러스 공포의 시대' 앞에 놓인 우리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 두 기성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두 제품은 임상 개발 측면에서 ①허가 당국 시판허가를 받아 독성 등 안전성 자료를 확보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②현재로선 시험관내 시험에서 얻은 가능성이 전부이고 ③동물실험(in vivo)을 통한 안전성은 물론 효력시험이 부재하며 ④약물이 어떻게 바이러스를 억제시키는지 명확한 기전이 부족한 등 '일상적인 환경 아래 신약 개발 프로세스 트랙'에 태우면 식약처가 있는 오송역에도 닿지 못한 조건에 머물고 있다. 정확하지 않지만 글로벌에서 진행중인 '기성품에 대한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 임상' 대부분도 일양과 부광이 갖춘 조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염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예방이나 치료백신을 만들고, 치료제를 적기에 내놓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라도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재앙에서 한발짝 더 전진해야 한다. 방역당국과 진단시약 개발 기업들의 발빠른 대처와 노력으로 대한민국 방역시스템이 세계적 모델을 제시했다는 성과를 넘어 다시 닥쳐올지 모르는 바이러스와 전쟁에서 치료제를 내놓으려면 선행 연구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는 그래서 필요하다. 신물질로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이뮨메드도 있지만 일양약품과 부광약품처럼 기존의약품을 신약으로 재창출하는 분야도 임상개발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방역은 최고였는데, 지나고 보니 백신이나 치료제들은 외국 기업들 손에 있는 상황은 끔찍하다. 마스크조차 구하지 못하는 특수 환경에서 약을 구하기는 더 힘들 게 자명하니까 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동물실험자료를 만드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중앙약심 전문가 회의를 거쳐 작용기전과 시험관내 시험의 효과 자료로 임상에 진입할 수 있는 길도 있다고 하니 일양과 부광 두 기업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보도자료 한장으로 국민들의 희망을 훔친에 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다. 허가 당국도 기업들의 의지를 북돋고, 끌어주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질병본부와 진단시약 개발업체들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소식을 흘려듣지 않고 미리 협력해 조기에 진단약을 내놓았던 케미처럼 식약처와 기업들도 감염내과 의료진들을 규합해 치료제 개발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를 대신해 줄 사람들은 없다. 그대들이 주체다.

글로벌에서 크고작은 제약 기업들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경쟁에 들어간 상황에서 16일 미국에선 백신 개발을 위한 첫 임상시험도 실시됐고, 한국에선 스무번 세탁도 가능한 마스크 필터를 신속 검토하겠다는 식약처 입장이 나왔다. 신종이든 변종이든 바이러스 치료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있을 때만 임상이 가능하다. 당뇨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다른 점이다. 시기를 놓치기 전에 슈펙트와 레보비르의 임상도 진행됨으로써 다시 닥칠지 모르는 바이러스 감염 시대의 치료 옵션, 아니면 또 다른 약물 개발의 마중물이라도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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