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처음 실천
"우리 사회의 참 기업인으로 평가받아"

유한양행 홈페이지 캡처
유한양행 홈페이지 캡처

1971년 오늘 한국 기업사에 모범을 남긴 유일한 박사가 영면했다. 향년 75세의 나이였다. 

11일 유한양행에 따르면, 일찍부터 기업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기업 경영으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 故 유일한 박사는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참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난 故 유 박사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으나 이를 뒤로하고 1926년 31세가 되던 해에 귀국해,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기술인재 양성을 위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故 유 박사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1939년에는 종업원지주제를 우리나라 최초로 채택했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주식 공개(1962년)를 단행했고 1969년에 경영권 상속을 포기한 뒤 전문 경영인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 유한양행은 1969년 이후 5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사원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선출하고 있다. 실제 현재 약 1800명의 유한양행 임직원 중 유일한 박사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 

유일한 박사는 자신이 사망한 후 공개된 유언장을 통해서도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됐다. 장남 유일선 씨에게는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언과 함께 유일선 씨의 딸이자 자신의 손녀인 유일링(당시 7세) 양의 학자금으로 1만 달러만 남겼다. 딸 유재라 씨에게는 학생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유한 중·공업고등학교 일대 땅 5000평 등을 상속했으며, "소유 주식을 비롯한 모든 재산은 사회·교육 사업에 쓰도록 한다"는 유언을 남겨 많은 이들을 숙연케 했다.

아울러 작고 후 오랜시간이 지난 후 CIA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故 유 박사의 지속적인 해외 독립운동 행적이 알려져 다시 한 번 많은 이의 귀감이 됐다. 딸 유재라 씨는 1991년 세상을 떠나면서 본인이 가진 주식 등 200억원대 재산 모두를 사회에 기부해 '노블레스 우블리주가 대를 이었다'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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