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주기 추모...한눈 팔지 않고 제약기업 본질에 천착했던 기업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시절이라서, 며칠 전 4주기 추모식을 엄수한 松岩 장용택 신풍제약 창업인의 '제약 기업가 정신'이 각별히 다가온다. 1936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태어나 1961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이듬해 6월 5일 신풍제약을 창업한 스물 다섯 송암은 '민족의 슬기와 긍지로 인류건강을 위하여'라는 기업이념을 붙잡고, 2016년 2월28일 타계하기 전까지 그가 선택한 길 위에서 주춤거리거나 뒤로 물리지 않고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걸어 나갔다.

"의사는 한 사람을 구하는 반면 제약을 하면 만인을 구한다"고 했던 의사이자 제약인이었던 선친 湖月 장창보 회장의 가르침에 따라 약학대학에 진학한 松岩은 신풍제약을 세우고나서 원료의약품에서부터 완제의약품에 이르기까지 의약품 국산화를 한시도 멈추지 않고 실현했다. 회사는 오늘 날 뇌졸중치료제 등 신약 연구개발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그가 기업이념에 맞춰 설계했던 비즈니스 모델은 변함없이 신풍제약의 척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기업가 정신도 면면히 살아서 숨쉬고 있다. 
      
송암의 신풍제약은 우선적으로 기생충들과 싸웠다. 1964년 연세대 의과대 기생충학교실이 강원도 산간지역 거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감염률이 36.5%에 달했고, 서울시민 가운데서도 중류층 이하 감염률은 77.6%에 이를만큼 1950년부터 60년대까지 국민 건강을 갉아먹는 원흉은 요충이었다. 송암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신풍은 65년 구충제 원료합성에 성공해 요충잡는 '필파'를 내놓았다. 그 이전까지 이 약의 원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고 보면, 당시 필파의 가치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필파'로 단박에 구충제 전문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는 1975년 회충 등 광범위구충제 원료인 메벤다졸 원료합성에 성공해 5년간 보호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 1983년 간과 폐 디스토마 치료제 원료물질인 프레지콴텔 대량 생산에도 성공했다. 80년대 국내에 300만에서 450만명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으니 대단한 쾌거였다. 이집트에 이 성분으로 만든 '디스토시드' 10만명 분을 기부도 했다. 88년 아프리카 수단에 합작회사 GNC를 세우는가하면 알벤다졸, 세프테졸나트륨 등 기생충 관련 원료물질을 잇따라 합성해 대량생산하는 등 신풍은 명실공히 구충제 전문기업이었다.

피라맥스 연구개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송암 장용택 회장이 2012년 7월4일 피라맥스 발매 론칭 세레모니에서 개발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피라맥스 연구개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송암 장용택 회장이 2012년 7월4일 피라맥스 발매 론칭 세레모니에서 개발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송암은 기생충 전문기업에 이어 신풍을 항생제 전문기업으로 조각하고 싶어했다. 1982년 2세대 세팔로스포린 계열 경구용 항생제 세파트리진을 합성하는데 성공한 이래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 계열화를 밀고 나갔다. 1990년대 항생제 황금기를 열었다. 세프테졸나트륨, 세프록심나트륨, 세파클러, 세프트리악손, 세프티족심, 세프타지딤, 염산세프티암, 세파제돈나트륨까지 질주했다. 기술이 축적되면서 계열이 다른 항생제 오플록사신도 원료합성과 함께 대량생산했다. 동시에 해외 수출길도 열었다. 91년 신풍은 국내 우량 상장기업 가운데 17위를 기록했다. 제약업계에선 1위였다.

신풍제약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데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의 공이 컸다. 신풍과 말라리아 치료제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가 1999년 11월25일과 26일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50개국 보건담당 관료와 NGO대표자, 연구기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 국제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한국의 기생충 구제사업 성공사례'가 발표됐다. "신풍제약이야말로 말라리아치료제를 개발해 세계 각국에 공급할 최적의 제약회사 중 한 곳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발표가 끝나자 WHO 관계자들이 송암에게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은 한국의 기생충 구제사업에 앞장섰던 공로를 인정한 것이라 신풍에게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간 이같은 제안은 이윤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기업들에게 딜레마이기도 했다. 말라리아 치료제는 낮은 수익성 때문에 다국적 제약기업들도 개발과 발매를 회피해 왔던 약물이었다. 하지만 '민족의 슬기와 긍지로 인류건강을 위하여'라는 기업이념을 직접 만든 송암은 달랐다. '인류애 관점'에서 흔쾌히 수락했다. 당황한 쪽은 WHO 관계자들이었다. 그동안 다국적 제약들로부터 여러차례 거절을 당했던 경험 탓이었다. 이듬해 6월 28일 송암과 WHO 관계자들은 제네바에서 만나 '항말라리아제 신약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연구비 부족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문제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연구에 활로를 열어준 것은 마이크로 소프트 빌 게이츠(Bill Gates) 회장이 1999년 설립한 '말라리아 치료의약품 벤처재단(MMV)이었다. 신풍 프로젝트가 이 재단의 지원과제로 선정되면서 연구는 본격화 됐다. 드디어 '송암의 인류애와 열정과 인내'가 담긴 피라맥스는 2011년 8월17일 국산신약 16호로 나왔고, 이듬해 2월20일 유럽의약청(EMA)도 피라맥스 발매를 승인했다. 연구를 계속해 2015년에는 유·소아 환자들을 위해 하루 1회 3일 연속 복용으로 치료가 가능한 피라맥스 과립제까지 내놓았다.

송암의 아들이자 현재 신풍의 대표인 장원준 사장은 2016년 5월25일부터 6월1일까지 진행된 대통령의 동아프리카 순방길에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합류해 선친의 평생 꿈이 향하고 머물렀던 땅을 살펴보았다. 이제 장 사장은 유제만 사장과 함께 선친이 각별히 애정했으나 다 이루지 못한채 남겨 놓은 뇌졸중치료제 'SP-8203'을 신약으로 개발하는데 분투 중이다. IMF 외환위기로 흑자부도까지 경험했지만, 송암은 2016년 2월28일 영면할 때까지 제약회사를 세우며 스스로 다졌던 그의 신념, 기업이념, 그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송암은 제약기업이 사회를 위해, 인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실천으로 보여준 기업가였다. 바이러스와 전쟁 중인 2020년 3월 제약기업가로서 그의 삶은 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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