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안정과 접근성' 갈림길에 선 복지부, 신뢰 버리면 다 잃는다

서울행정법원이 리베이트 사건과 관계된 동아ST 87품목에 대한 보험급여정지 처분을 취소한 결정적 단어는 '신뢰이익'이다. 이 사건 피고 복지부와 보조참가에 이름을 올린 건강보험공단 및 심평원은 신뢰이익이라는 법률적 용어로부터 '신뢰'라는 일상적 상식을 읽어내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1심 판결이지만 재판부가 신뢰에 방점을 찍어 정부기관의 행정행위를 꼬집은 이유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리베이트 약제에 대한 보험급여 정지를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은 2014년 7월 1일부터 시행됐지만 환자의 치료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2018년 9월 27일 종료됐다. 문제가 된 동아ST 87품목의 리베이트 기간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로 다양한데 복지부는 이를 포괄일죄로 묶어 급여정지 처분을 소급적용했다. 동아ST가 제기한 행정소송은 소급적용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한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소급적용의 적법성 여부는 1심 재판부의 판결 이전에도 수 차례 제기됐던 사안이다. 히트뉴스가 작년 5월 동아ST건을 주제로 연 헬스케어정책포럼에서도 행정행위의 신뢰보호 원칙 등 문제가 나왔다. 판결문에 나타난 재판부의 문제의식도 이 궤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행정의 법률적합성의 원칙은 행정의 자의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아울러 행정작용의 예견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급여정지 시행 이전 행위로까지 처벌을 소급적용한 것은 예견할 수 없는 자의적 행정작용에 해당한다.

발사르탄 구상금 청구소송 역시 정부와 산업계 간 신뢰 문제로 볼 수 있다. 신뢰라는 상식적 용어를 기반으로 할 때,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소송 역시 건강보험공단과 복지부가 관여된 일이다. NDMA라는 규명되지 않은 불가항력적 이벤트로 추가 지출된 건강보험 재정을 제약회사로부터 회수하겠다는 행정력의 발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제약회사도, 소비자도, 정부도 모두 피해자일 뿐인 NDMA건에 대한 구상조치가 행정신뢰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을지 생각은 해봤는지 궁금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산업계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보험약가제도 개편안 역시 복지부 등 행정라인들이 주인공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파이를 신약으로 옮겨 치료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는 공감할 수 있지만, 수용 당사자인 산업계와 소통은 어느 수준까지 진행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국민 의료비 감소 및 국민건강의 보호에 이바지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파괴된 원고의 신뢰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이번 판결의 취지를 복지부는 상식적 신뢰를 기반으로 되새겨봐야 한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