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엔젠시스, 약물 혼용 아닌 임상 설계가 문제
“3상 계획 발표가 우선, CRO 분쟁은 이후의 일”

“회사 측이 발표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개인투자자나 대중이 듣기엔 오해할 만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회사의 윤리와 직결된 문제다.” (임상 전문가)

“(내가 헬릭스미스 관계자였다면) 엔젠시스 분석 결과를 내놓고, CRO에 책임을 물을 부분과 향후 임상 디자인을 어떻게 바꿀지 발표할 것이다. 단순히 CRO 책임의 증거와 약물 효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국내 신약개발자)

헬릭스미스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임상 오류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 위약군에 약물을 투여하는 등의 환자 간 약물 혼용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임상 오류에 대해선 “통증이라는 지표의 특수성과 특별한 임상운영 방법 상 문제에 기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회사 측은 3-1상에선(500명 대상) 유효성 도출에 실패했지만, 약효와 무관하고 이후 3-1B상(101명)에서 유효성을 보인 만큼, 3-2상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리해 보자면, 헬릭스미스는 이번 임상 실패가 엔젠시스(VM202)의 약효 문제가 아니라, 통증 지표를 측정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임상 지표인 ‘통증 지표’가 임상이 진행될 수록 반응이 높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임상 후반부(3-1B상)로 갈수록 통증감소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큰 반면, 전반부(3-1상)에는 상대적으로 통증감소 효과가 적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입니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지난해 9월 24일 NH투자증권 본사에서 엔젠시스 임상 결과 도출 불발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향후 엔젠시스 허가 가능성에 대해서 속단하긴 이릅니다. 다만 김선영 대표를 비롯한 헬릭스미스가 언론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본질은 임상 3상 디자인을 수정해 미국 FDA 허가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3-1상의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고, 이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것도 지금에 와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 관계자들의 일부 인터뷰는 임상 3상 디자인 재설계보다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책임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 보입니다.

지난 16일 김선영 대표가 한국경제와 진행한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美 임상 3상 실패는 CRO 잘못’입니다. 또 17일 팍스넷과 익명의 헬릭스믹스 관계자가 인터뷰한 제목의 기사는 ‘3상 실패, 아웃소싱 업체 실수가 원인’입니다. 공교롭게도 회사 관계자가 한 인터뷰 모두 향후 3상 임상에 대한 계획보다 3-1상에 대한 책임 소재가 자사가 아닌 CRO 혹은 아웃소싱 업체의 실수라는 게 골자입니다.

기사 제목은 언론의 권한이라지만,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해선 언론과 회사 측의 소통과 협의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 인터뷰를 진행 함에 있어서 두 당사자(김선영 대표, 익명의 헬릭스미스 관계자) 모두 논점을 갖추고 인터뷰에 임했어야 합니다. 글로벌 임상 전문가 역시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을 이어갔습니다.

“미디어를 대상으로 회사 측에서 CRO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CRO 등이 계약 사항을 위반했다면, 당사자끼리 풀면 될 문제이지 (굳이 미디어를 대상으로) 공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헬릭스미스와 CRO 간 계약서 준수 여부를 두고 다툼의 소지는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CRO가 아닙니다. 결국 핵심은 향후 3상 디자인을 어떻게 수정하고, 이를 FDA가 수용할 만한 허가 자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3-2상 디자인 변화에 대해 구체적 언급은 FDA 자료 제출 이후에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임상 전문가가 조언한 헬릭스미스가 현재의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과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가 언급한 CRO에 대한 언급을 보면, 굳이 회사 측이 CRO를 화두로 꺼내야 했는지 더 의문이 듭니다.

“임상시험에서 임상 지표를 충족시키지 못 할 때 스폰서(신약개발회사)는 ▲약효가 없음을 인정하고 개발 철수 ▲임상 디자인 재설계(의미 있는 환자군(population)에서 임상지표나 적응증을 바꾸는 작업) 등  두 가지 전략을 취한다. 헬릭스미스는 일부 임상 디자인이 잘 못 됐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디자인을 어떻게 수정할 지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발표돼 있다.”

“ICH에 따르면, 임상시험의 품질의 궁극적 책임은 스폰서(제약회사)에 있다. 스폰서는 스폰서의 시험 관련 업무 및 기능의 일부 또는 전부를 CRO에 양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 데이터의 품질과 무결성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항상 스폰서에게 있다.”

헬릭스미스는 17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엔젠시스 (VM202) DPN 3상 관련 추가 설명자료’를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향후 계획에 대해서 밝혔습니다.(헬릭스미스 설명자료 링크) 약물 효과는 있으며, 임상 3-1B 결과를 바탕으로 3-2상으로 종전 방식에 변화를 줘 진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업계 전문가의 자문에 따르면, 임상 3상을 재개하겠다는 회사 측의 계획은 일단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 경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3-1상의 경우 이미 1차 유효성 지표(primary endpoint)를 충족하지 못 했기 때문에, 허가자료로는 사용될 수 없다. 3-1상은 이중맹검(양쪽눈가림)으로 임상이 진행됐는데, 이미 이중맹검 자체가 깨져 비뚤림(bias)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회사 측에서 의미가 있다고 한 확대임상(3-1B) 결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결정적 연구(pivotal study)로 인정할 경우 품목허가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은 있다.”

회사 측은 비슷한 환자 군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 3-1과 3-1B의 결과가 다른 이유에 대해 환자들의 통증에 대한 반응이 달랐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김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향후 이러한 차이에 대한 명확한 원인에 대해 논문을 출판(publish)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이러한 차이를 논문으로 출판해야 할까요? 임상시험의 경우 임상지표를 충족하지 못 했더라도 논문 출판이 강력하게 권고(urge)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임상 전문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임상시험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윤리적 약속이다. 임상을 진행했는데, (스폰서 측에서 목표로 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고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 때문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임상 결과라도 환자의 추적 시점 7개월 안에 제출(submission)되도록 권고된다. 설혹 논문으로 출판하지 못 하더라도 미국립보건원(NIH)의 임상시험 레지스트리인 'clinicaltrials.gov'에 결과(result)를 발표할 수 있다.”

이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향후 헬릭스미스가 3-1B상의 결과를 토대로 3-2상을 진행하기 위해선 원인 분석 과정은 필요합니다. 다만 논문 출판(publication)과 허가자료 제출(submission)은 엄연히 다른 과정이라는 것은 명심해야 합니다. 논문을 출판했다고 해서 바로 허가 자료로 활용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측이 모든 사항을 명확히 밝힌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사가 배포한 설명 자료는 비교적 형태를 갖춘 발표”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ICH 규약에 따르면, 임상시험 품질의 궁극적 책임은 스폰서에 있다”며 “회사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CRO 고소를 거론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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