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유통 열외되면 제도의 목적·효과 못 봐
소매유통 포함될 때까지 행정처분 유예 필요

지난 4일, 심평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의 유미영 센터장은, 일련번호 시행 2년차를 맞아 행정처분 '제로(zero)'를 지향할 계획이며, 유관단체와 1:1 맞춤형 컨설팅 및 현장중심 교육 등을 통해 소통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일련번호 보고율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제조·수입사와 도매유통사 등이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로 보고율을 확인 할 수 있도록 한 결과, 작년 평균 보고율이 제조·수입사 98.9%, 도매유통사 90.4%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이 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5년여 끌어온 현행 '의약품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제'가 이제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이제 정착된 것으로 봐도 좋을 듯싶다. 제조·수입·도매유통 공히 90%가 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과정을 되돌아보면, 그동안 도매유통업계의 고혈(膏血)을 짜내는 물적·심적인 희생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도매유통업계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라고 호소했으면, 국감장에서까지 이 문제가 거론됐고 당해 장관과 국회의원이 그 일로 아주 이례적으로 도매유통 현장을 직접 방문해 그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했겠으며 그 결과, 제도의 의무시행 기한 및 행정처분 방법 등이 연장되고 변경됐을까?

당국은 이 제도 도입 계획 당시(2014년)부터, '일련번호를 통한 의약품 관리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며, 인도·터키 및 중국 등에서 이미 시행 중이고 미국·EU 등도 준비가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 들었다'고 하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행정권을 앞세워 업계를 밀어붙이며 설득해 왔다.

또한 당국은 의약품 일련번호제도의 구체적인 목적을 ▲제조 및 수입의약품의 유통 정보화 기반 조성 ▲유통비용 절감 및 의약품 이력관리의 효율적 수행 ▲위변조 의약품이나 불법 의약품의 유통방지 등에 둬 왔다.

이를 통해, 국민은 보다 더 안전하게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의약품 유통경로가 단계별로 정확히 파악돼 리베이트 방지 등 의약품 유통 전반이 투명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총론'에, 내놓고 토를 달며 반대한 사람은 그동안 업계에서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명분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필히 짚어야 할 문제가 몇 가지 눈에 띈다.

첫째, 일련번호제도를 도입하면서 내건 이 제도의 목적 및 기대 효과에 나와 있는 '유통'은 모두 도매유통과 소매유통을 아우르는 개념들이다. 게다가 당국이 '의약품 일련번호제도는 세계적인 흐름'이라면서 사례로 꼽은 국가들 모두 소매유통이 응당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 한국의 이 제도에는 아예 처음부터 소매유통은 빠져 있었다. 열외(列外)였다. 국민 건강을 위한 '의약품 유통 이력 관리'에서 왜 주관자가 되어야 할 소매유통을 방관자로 만들었을까? 

소매유통이 빠져도 이 제도에 대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고 효과가 나타난다고 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롤 모델(role model)'이 되고 있는 외국에서는 왜 의약품 일련번호 관리 대상에 소매유통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당국이 이 제도의 효과를 기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의약품 유통경로가 단계별로 정확히 파악되기 때문'이라 했는데, 소매유통이 이 제도에서 제외되어 있는데도 환자(소비자)에게까지 가는 의약품 유통 경로가 과연 정확히 파악될 수 있을까? 환자(소비자)에게 흘러가는 의약품의 이동은 이 제도가 표방하고 있는 '의약품 유통 경로'가 아닌가?

소매유통이 의약품 입·출고 과정에서 일련번호를 관리하지 않으면, 환자(소비자)로 흘러가는 위변조의약품이나 불법 의약품 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매유통이 이 제도에 동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약들의 환자(소비자) 투약과 사용 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게 된다.

둘째, 당국은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가 시행되면 유통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도매유통업계에서는 이 제도 시행으로 추가 인력과 관리 시스템 개편 및 시설·도구 등의 확보에 비용이 턱없이 많이 들어가고 있으니 그 비용을 당국이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아우성쳐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제도 시행 전보다 시행 후의 유통비용이 절감되는지 의문스럽다. 과연 얼마나 절감되는지, 당국이 실제 연구시켜 확인해 봤는가.

셋째, 당국은 의약품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를 통해 유통경로가 소상히 파악되면 불법 리베이트가 방지되는 기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그럴까? 유통경로와 불법 리베이트는 그 발생 '메커니즘(mechanism)'이 전혀 서로 다른 개념인데도 말이다. 일련번호제도가 시행되면 불법 리베이트가 방지될 것이라는 그 논거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너무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일련번호제도에 대한 기대효과 아닐까? 이를 두고 제약업계와 도매유통업계가 어떠한 생각했을까?

이리저리 따져보면, 현행의 의약품 일련번호제도는 분명 반쪽짜리 미완성 제도라 아니 할 수 없다. 소매유통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우리 한국의 의약품 일련번호제도는 정책 목표 달성과 기대 효과가 제대로 발현될 리 만무한 구조로 봐진다.

이런 상태인데도, 그동안 땀과 피를 흘려가며 일련번호제도 정착에 애써 협조한 도매유통업계에 행정처분의 굴레까지 씌워, 최근 소통이라는 미명으로 채찍질까지 하고 있다는 것은, 유통의 한축인 소매유통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불공평한 처사로 보인다.

또한 이는 도매유통업계와 소매유통업계의 '전문성'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조직의 '파워'에 따른 신분 차별이라는 차원에서, 헌법 제11조제1항의 '형평성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의약품 일련번호제도에 소매유통업계가 포함될 때까지, 도매유통사들에 대한 행정처분은 반드시 유예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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