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정희 대표의 초지일관 리더십이 바꾼 것들
LDL 콜레스테롤이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 이상지질혈증이란 건강검진 결과를 앞에 두고 영양사는 평소 식단을 하나씩 점검하며 나를 압박했다. 과일은 드시나요? 사과는요? “저녁에 한 개요.” 다른 과일은 요? “귤 2~3개, 단감 1개, 배 반개...”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과일을 드시는 건 좋지만 모두 합쳐 종이컵 1개 분량만 드시는 게 좋고요, 채소도 일정하게 매일 드세요. 견과류는 요? “종이컵 하나 정도.” 아휴, 스푼 하나정도만 드세요.
식단조절로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한계가 있지만, 스타틴제제를 복용하기 전 식단조절을 한다음 경과를 보기로 했다. 그 날 이후 체질개선을 목표로 삼으니 과일이 약으로 보이다가도, 매일 익숙했던 식단이 아른거리고, 습관대로 먹고 싶은 충동이 불쑥 치밀어 오른다. 체질 개선은 끝없는 유혹과 전쟁이나 한가지다.
위 나의 사례에 견줘 기업의 이야기를 해 보자. 이정희 유한양행 대표이사가 취임한 2015년은 연이어 기술수출 성과를 이뤄 사회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한미약품에게는 축복이었지만, 경쟁사 최고 경영진에게는 잔인했다. ‘한미가 했으니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다가도 ‘우리는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수시로 교차했다. 창업주 혹은 창업 2세, 3세의 대주주들로부터 “한미는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고 CEO들에게 질책이 따르던 시절이었다.
취임 당시 “약을 만들어 파는 회사로 머물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혁신 신약 개발을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뼈아팠다”고 돌아본 이 대표. 그는 “CEO가 흔들리면 안된다,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어떻게 할 수 있을까”만 집중했다. 그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에서 실마리를 찾기로 했고, 남수연 상무(당시)가 될성부른 물건을 찾아나섰다.
이 대표는 종합연구소가 발굴해 놓은 파이프라인은 물론 유망한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벤처와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신약개발 후보물질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파이프라인 창고를 채워나갔다.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투자한 금액만 이 대표 5년 재임기간 2900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노력으로 유한의 파이프라인 창고에는 201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레이저티닙 등 합성신약 12개, 바이오신약 15개, 개량신약 복합제 11개, 개량신약 개량제제 4개 등 총 44개가 진열됐다. 그런가하면 수년에 걸쳐 200억원 이상 투입했던 국산신약 레바넥스의 후속 약물인 YH4808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등 선택과 집중으로 R&D 프로젝트를 정비하며 혁신신약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 대표의 일관된 리더십은 고무적인 성과로 돌아왔다. 알려진대로 ▷YH14618(디스크질환), 임상2상,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2억1815만달러(약2400억) 기술수출 ▷레이저티닙(비소세포폐암), 임상1/2상, 미국 얀센바이오텍 12억5500만달러(약1.4조) ▷미정(NASH 후보물질), 미국 길리어드, 7억8500만달러(약8800억) ▷YH25724(NASH 전임상),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8억7000만달러(약1조) 등 총 4건 3조52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올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파이프라인 개발과 기술수출 품목의 임상개발에 적극 나서게 돼 매출액R&D 비용은 13%에 2000억원 이상 투입한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자, 혁신기업가였던 故 유일한 박사의 '우수한 의약품 생산'이라는 제약기업 이념에 부합하는 혁신 R&D 제약기업으로 체질변화를 위해 더큰 도전에 한걸음 더 나선다.
다른 관점에서 대변신도 눈에 띈다. 이 대표는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도입 품목 판매를 대폭 축소했다. 매출로 따져 1200억원 규모인 다국적제약회사 유명 품목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판권을 되돌려줬다. 도입품목 판매에 관한 외부의 시각이 곱지 않았다해도 이 같은 결단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매출이 기업활동의 원천이고보면 매출 확대는 어느 기업에게나 늘 달콤한 속삭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한이 강력한 CP를 실천하면서도 판매 역량을 갖춘 덕분에 다국적사들로부터 인기가 많았고, 실제 판매 마진도 통상 평균 시장 마진율보다 높게 받았지만 이 대표의 선택은 결국 체질개선이었다. 2026년 창업 100주년에 초점을 맞춘 Great&Global 유한양행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향한 다이어트인셈이다. 이정희 대표의 일관된 리더십이 '유한양행의 뎁스'를 한층더 깊게 만들고 있다. 결국 리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