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초대석] 구본권 서울의대 내과학 교수
(제29회 분쉬의학상 본상 수상자)

"의사도 자신의 연구 '개념(concept)'을 팔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학교 교수가 갖는 안정된 삶. 이 속에서 굳이 ‘혁신’을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분쉬의학상 본상을 수상자 구본권 서울의대 내과학 교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울대’라는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연구만 할 것 같았다. 혁신 혹은 4차 산업혁명과는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생각으로 향한 구 교수의 연구실. 탁자엔 4차 산업혁명의 미래 모습을 그린 <파괴적 혁신 4.0>이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4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는 기존에 갖고 있던 의사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소위 말하는 50~60대 꼰대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본권 교수

-이번 분쉬의학상 본상 연구 주제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보도를 통해 분획혈류예비력(FFR) 검사에서 새로운 치료법으로 확립됐다고 들었는데, 내용이 좀 어렵더라고요.

“심장 혈관이 좁아질수록 나타나는 지표가 FFR이에요. 일반적으로 관상동맥이 좁아져 스탠트 시술 혹은 수술을 결정할 때, FFR 지표를 보는데요. 기존에 이런 일련의 검사를 하려면 입원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하면 불필요한 입원과 시술을 줄일 수 있어요. 컴퓨터 기술과 결합돼 가능하게 된 것이죠. 기존 CT를 통해 FFR을 측정한 게 저희 기술이 가진 혁신입니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컴퓨터 과학자와 함께 이뤄낸 성과죠.”

-이 기술은 영국의 국가 치료 지침인 ‘국립보건임상연구원 가이드라인’ 등에도 반영됐다고 들었습니다.

“편의성과 비용 효과성을 인정 받았다고 봅니다. 불필요한 입원 절차를 줄여 직장 생활 등 사회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깐요.”

-아직 국내에는 이 기술이 도입되지 못 했잖아요. 

“반대로 국내는 비용효과성이 발목을 잡은 것이죠. 저희 기술을 활용한 검사를 한번 받는데 유럽과 미국에서 100만원 가량이 듭니다. 기존 검사 비용이 3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비용효과성이 높은 편이죠. 하지만 국내는 100만원에 대한 비용 효과성을 입증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는 비용 효과성이 발목을 잡는 것 같아요.

“최근 의료계 혁신은 대부분 컴퓨터 기반으로 이뤄집니다. 상업적으로 혁신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이 혁신을 의료계 내부로 들여 올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국내 상황이 안타까운 측면이 많아요. 저희 역시 한국 기업과 같이 일하지 못한 건 이런 영향이 크고요.”

-임상의가 컴퓨터 과학자와 협업해 연구한 것은 국내에선 좀 생소해요.

“임상현장에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었어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연구할 당시 제 연구를 상업화하기 위해선 기업과 손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실리콘밸리의 ‘하트플로우’라는 회사와 협업에 이를 수 있었어요.”

-국책 연구가 아닌, 해외 기업과 손잡게 되신 계기도 궁금해요.

“최근 자본 조달 경로는 엔젤투자자, 정부 지원금, 회사의 지원 등 다양해졌죠. 잘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만들기 위해 지금의 회사와 손 잡은 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사실 교수님의 연구는 앞서 말했듯 참 생소해요. 임상연구는 아닌 것 같고, 기초 연구로 봐야 할까요?

“보통 의학계 연구는 기초연구와 약물의 효능을 보는 임상연구로 나누죠. 저희 연구는 이러한 분류로 접근하긴 어렵죠. 시대가 변하듯 연구도 새로운 틀이 필요해요. 저희는 신기술을 이용해 활용 가능한 제품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죠.

이제 의료계도 혼자서 잘 하는 세상은 끝났다고 봅니다. 협업해서 잘 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이죠. 또 자신의 연구 개념을 회사 등 다른 사람 앞에서 팔 수 있는 일종의 ‘상사맨’ 역할도 해야 합니다. 단순히 학회장이나 강연장에서 하는 발표만이 아니라 자본을 모을 수 있는 발표도 해야 합니다. 국책 연구비 말고도 자본을 모을 수 있는 경로는 그만큼 다양해 졌으니깐요. 이처럼 변화된 역할을 고민하면 앞으로 기회는 더 많을 것으로 봐요.”

-의료 현장에서 4차 산업혁명이 어디까지 왔다고 느끼시나요?

“아직 온전히 모든 기술이 들어온 것은 아니에요. 사실 혁명이나 혁신은 그 당시엔 아무도 몰라요. 어떤 것이 혁신인지는 세상이 바뀌고 난 그 이후에 정의하잖아요. 다만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건 명확해요.”

-이런 변화의 시점에서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저 같은 사람이 조언을 안 해야 하죠.(웃음) 저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장했던 사람이에요. 후배들은 자기들의 세상을 살아야 하죠.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3차 산업혁명 틀 속에서 나온 것들이에요. 이미 어린 나이에 스마트폰을 만진 후배들에게 고작 핸드폰을 전화 용도로 쓴 제가 어찌 조언을 하겠어요?”

*분쉬의학상은?

1990년 조선 고종의 주치의 '리하르트 분쉬(Richard Wunsch)' 박사의 이름을 빌어 한국 의학계의 학술발전을 도모하고자 제정됐다. 국내 의학 발전에 주목할 만한 연구 업적을 남긴 의학자들을 선정한다. 20년 이상 의료 또는 연구에 종사했고, 국내 의학 발전에 끼친 공로가 인정되는 의학자에게는 ‘분쉬의학상 본상’이 수상된다. 또 학술적으로 가치와 공헌도가 인정되는 우수논문을 발표한 소장 의학자에게는 ‘젊은의학자상’이 수여된다. 본상 1명에게는 5천만 원의 상금이, 기초계와 임상계 총 2인의 젊은의학자상에는 각 2천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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