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원?박기수 교수, 메르스 병원명 공개 효과 분석
"정보 공개는 감염병 확산 방지·통제 기능"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What is the cost of lies)" 미국 HBO의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의 첫 대사다. 이 드라마는 1986년 4월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며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의 전말을 거의 완벽히 재현해냈다는 평을 받는다.

기자는 크리스마스 때 소중한 연차휴가를 이틀이나 써가며 왓**레이에서 봤다. 주인공인 발레리 레가소프 교수가 피폭을 감수하며 밝혀낸 폭발의 진실은 소련 정부가 값싼 흑연을 사용해 저렴한 원자로를 구현했다는 데 있다. 

피폭 당사자들은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몰랐다. 체르노빌 근교에 사는 주민들은 죽음의 다리로 불리는 철도 교량 위에서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을 구경하며 즐거워했고, 얼마 후 모두 사망했다. 화재에 동원된 소방관·광부·군인 등 수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역 위원회는 사고 당시 "사고는 잘 통제되고 있다"며, 국가를 믿고 도시를 봉쇄하자는 결론을 냈다. 원자로 담당자들은 승진을 위해 안전 검사를 강행했고, 소련 정부는 체제 유지를 위해 원자로 결함을 끊임없이 부정했다. 체르노빌 사태는 결국 거짓에 대한 참혹한 교훈을 인류에게 안겨준 셈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얻은 교훈이 있다. 바로 정보 공개의 중요성이다. 메르스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2015년 5월 20일 이후 18일만인 6월7일. 정부는 긴급브리핑을 통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6곳과 환자들이 경유한 병원 18곳의 이름을 공개했다. 

효과는 상당했다. 메르스 환자는 병원명 공개 시점인 6월7일부터 상황 종료를 공식 선언한 12월24일까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한다(p<0.001). 메르스 노출 병원명 공개가 메르스 환자 추가 발생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박기수 고대의대 환경의학연구소 연구교수
교신저자 박기수 고대의대 환경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단국대 보건행정학과 노진원 교수(주 저자)와 박기수 고대의대 환경의학연구소 연구교수(교신저자)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감염병 예방 및 통제에 대한 정보공개 정책 효과: 대한민국의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중심으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교수팀은 신속·투명한 정보 공개가 국민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차원을 넘어 감염병 자체 확산을 방지·통제한다는 사실과 정보 공개와 관련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이 역학적 방역 수단과 동일하게 감염병 통제·예방 기능을 가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특히, 메르스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 규모가 20조원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속·정확한 정보 공개가 국민 건강피해 축소는 물론,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교신저자인 박기수 교수는 "예를 들어 A병원이 메르스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병원에 가지 않는다. A병원에 방문한 사람도 해당 병원이 메르스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자신이 감염됐을 수 있다고 생각해 지인들과 가급적 만나려 하지 않는다"며 "정보공개는 이 두 가지 기능으로 감염병 예방·통제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메르스 발생자 현황 추세선은 2015년 5월20일 첫 환자 발생 이후 6월6일까지 꾸준히 증가했다가 정보 공개 시점인 6월7일 이후부터 감소세를 보인다(그래프: '감염병 예방 및 통제에 대한 정보공개 정책 효과: 대한민국의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중심으로' 본문 p4)
메르스 발생자 현황 추세선은 2015년 5월20일 첫 환자 발생 이후 6월6일까지 꾸준히 증가했다가 정보 공개 시점인 6월7일 이후부터 감소세를 보인다(그래프: '감염병 예방 및 통제에 대한 정보공개 정책 효과: 대한민국의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중심으로' 본문 p4)

체르노빌 사태는 값비싼 교훈을 낳았다. 소련 붕괴를 재촉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거짓의 대가가 체르노빌이라면, 진실의 대가는 메르스라 할 수 있다. 병원명 공개는 무고한 환자 발생을 막았고, 국민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도 일조했다. 물론 정보 공개가 다소 늦어진 탓에 당시 지적이 빗발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정보의 신속 제공이 감염병 통제·확산 방지에 크게 기여한다는 증거 기반 정책(Evidence Based Policy) 자료로 이번 연구가 활용될 수 있다"며 연구 의의를 덧붙였다. 해당 논문은 환경·공중보건 연구와 관련한 온라인 과학 학술지 'IJERPH' 1월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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