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모연화 휴베이스 부사장 "약사 역할도 생물처럼 진화"

4차 산업혁명이야기에서 약사만큼 자주 소환되는 직업도 드물어 보인다. 대형병원 조제 자동화기기가 출현했을 때도, 인공지능이 화두로 등장했을 때도, 약사는 그로부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직업으로 예시되고는 한다.

약사들에게 불편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나, 이는 아마도 이 사회에 투영된 약사와 약국의 역할이 명확하게 각인되지 못한 탓에 이를 피상적으로 바라본데 따른 성급한 전망이 아닌가 싶다. 혹시 우리가 생물처럼 진화하며 새 환경에 적응하려는 약사와 약국의 진화를 간과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평소 약사와 약국에 대해 본질적 고민을 하는 모연화 휴베이스 부사장을 만나 2020년 약사와 약국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12월 중순 무렵 진행했다.

병원약사로 근무한 뒤 약국을 열어 직접 경영했었던 모연화 휴베이스 부사장은 "우리 동네 약국에 가서 물어보자는 말을 참 좋아한다"고 말한다. 2019년 연말 어느 날 약사와 약국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주변엔 약국이 있고, 그 안에 약사가 있죠. 고객은 문제를 안고 찾아갑니다. 약사는 처방조제하거나 일반의약품 등을 판매합니다. 약사와 약국의 역할을 이 정도로 이해하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아니요. 역할을 논하기 전에 우선 정의에 대해 생각을 해 봅시다. 약사와 약국의 정의 말이죠. 어떤 단어에 대한 정의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따라 정의 역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합니다.”

▷어떻게요? 예를 들어주세요.

“health literacy는 건강 정보 이해 능력으로 정의되는데, 이는 ‘건강 정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느냐’라는 단면적인 정의로부터, 현재 읽고, 이해하고, 평가하고, 적용하여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이렇게 진화를 했죠. 사회가 요구하는 개념으로 정의는 생물처럼 진화합니다.”

▷약사와 약국의 정의도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약사의 정의도 이처럼 진화가 필요합니다. 변화하는 사회가 원하는 정의, 진보된 기술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정의로 말이죠. 이러한 정의는 그저 ‘이게 정의야’라고 내린다고 내려지는 것이 아니고, 방금 말씀 드린 대로, 사회는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의 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합이 맞는 지 검증하는 연구가 필요하겠죠.”

▷거칠은 시계열로 보았을 때 약사의 정의는 어떻게 변모했을까요?

“2010년 이전 약사의 정의는 정보 전달 중심으로, 정확한 조제와 처방약 전달 중심으로 세워졌죠. 그런데 현 시대는 인간만이 맺을 수 있는 관계를 전문가에게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약에 대한 정보 전문가라는 기능적 정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요?

“실제 약사는 6년간 물질에 대한 효능 효과뿐 아니라 부작용을 공부하고, 약이 되어가는 과정을 공부합니다. 약의 탄생부터, 그것의 쓰임까지 배우는 유일한 직업입니다. 이렇게 배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것은 균형 잡힌 관점, 균형 잡힌 시야를 통해 사람이 가진 문제를 다면체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해서죠. 실제 약이라는 건, 효능 효과, 부작용 등 몇 개의 단어로 표현되지만, 인간의 몸에 들어가는 약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지는 건강 관련 문제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데요.

“정답만을 요구하는 시대에 100% 정답이 없는 건강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전문가, 그래서 약사는 수많은 정보를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개인의 선택에 가장 도움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건강 관리는100% 진리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맞춰 베스트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중심으로 약사가 새롭게 정의되어야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를 논할 수 있습니다. 재정의 없이 새로운 역할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재정의를 찾아가는 키워드는 뭘까요.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사회에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가? 사회의 눈으로 약과 약사 약국을 바라보고, 재정의 한 후에 역할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를 들여다 보지 않는 경향이 짙습니다. 부러우면 진다는 씁쓸한 말도 그래서 있는 것 같고요. 이런 면에서 약사와 약국이 찾아내야 할 가치는 어떤게 있을까요.

“현재 우리나라 약국과 약사의 모습은, 우리가 스스로 평가 절하해서 그렇지 꽤나 이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쉽게 질문 할 수 있다는 부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건강과 관련한 질문에 봉착하며 살아갑니다. 이 약은 하루 몇 번 먹지? 이건 식후인가? 얘를 먹었더니 왜 배가 아프지? 얘는 졸린 가? 이건 어떻게 쓰지? 몇 번 바르지? 홈쇼핑에서 좋다는데 이거 진짜 좋나? 등등 요. 이런 가벼운 질문은 실제 무거운 질문 보다 10배 정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프트한 질문의 해결은 개인의 삶의 질에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직종의 종사자든 도달하고픈 지향점이 있을 겁니다. 약사님에게 이상적인 약사와 바람직한 약국이란 어떤 모양인가요.

“제가 평소 고민하는 이상적인 약사는 소프트한 질문에, 딱 달라붙는(sticky) 답을 줄 수 있는 약사입니다. 어려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해주는 역할도 정말 중요하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약사, 고객의 일상적 의문을 간단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약사가 가장 필요한 시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동네 약국에 가서 물어보자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이상적이거나 바람직하다는 지향점은 다면적이잖아요.

“네, 그렇죠. 바람직한 약국 상은 하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각 개인이 다르듯 저는 약국도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다양한 모습이 궁극적으로 고객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 만이 중요하죠. 약사님 마다 개인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우리가 서비스의 일관성을 자주 논하는데, 앞으로의 시대에는 일관성만큼 중요한 건, 약사만이 가지고 있는 ‘다름’을 내 약국에 구현하고 있는가 부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약국간 차별성도 있겠지만 문화를 달리하는 나라별 차이도 있다는 말씀.

“그렇죠. 현재 대한민국의 약국은 전 세계에 있는 약국들과 비교했을 때 꽤 다른 모습입니다. 약사들이 약을 건네주는 방식도 그렇고, 고객의 건강에 깊게 개입하고 싶어하는 욕구도 그렇고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한국 특유의 약국 상으로 발전 시킬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심결에 고객중심이란 말을 합니다. 약사와 약국에게 고객 중심이란 말은 어떻게 이해돼야 할까요. 고객은 왕이다, 혹은 친절하다?

“저는 고객 중심을,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관점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약사의 고객 중심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기반으로, 건강 관련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Patient-centered를 섬기는 리더십 같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제 개인적으로 문제 해결을 업으로 사는 의약계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섬기는 리더십과 약국은 왜 맞지 않을까요.

“의약계에는 100%가 없죠. 아프다는 문제 해결에 100%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맺고 함께 해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따르라”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네 몸이야. 네가 주인이야. 네가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 줄게.“ 이런 상황으로 전환이 patient-centered 라고 봅니다.”

▷말씀하신 맥락이라면 ‘어떻게 도와줄게’여야 하죠?

“고객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약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약사는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해야 문제를 언어화 할 수 있으니까요.”

▷기자도 질문하는 입장이죠. 종종 이해당사자로 빙의해 논쟁하는 기자도 있긴합니다.

“제가 부사장으로 있는 휴베이스는 질문하는 약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약사다운 질문, 약사다운 중재(intervention), 약사다운 문제 해결법을 포함한 휴베이스만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해당 사안을 잘 아는 것도 필수일텐데요.

“실제로 처방전 감사를 기록, 분석하고, 알러지 중재(intervention)의 비용적 가치를 창출해 논문을 쓰기도 했죠. 이러한 활동 역시 고객과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약사만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약국을 찾는 고객들에게서 감지되는 변화가 있나요.

“모바일의 정보를 맹신하죠. 모바일을 들고 와서, 이거 있어요?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은, 모바일로 정보를 찾으면서 의사를 의심하고, 약사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죠. 인터넷 공간은 의료의 다원화, 비 전문화를 촉진하는 공간이니까요. 특히 건강 루머에 대한 노출 효과가 생각보다 거대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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