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이사

작년 11월22일 IPO를 앞두고 비전과 사업계획 등에 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이정규 대표.
작년 11월22일 IPO를 앞두고 비전과 사업계획 등에 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이정규 대표.

마른잎은 새싹의 밑거름이 된다.

1997년 당시 LG화학에서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서 당시 최고 성장 제약사였던 아스트라 (현 아스트라제네카) 사례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

로젝(일반명: 오메프라졸)이라는 프로톤 펌트 저해제는 아스트라를 스웨덴 제약회사에서 글로벌 제약회사로 키워준 블록버스터였다.  이 약물 하나로 미국의 머크사와 아스트라-머크라는 미국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로젝을 미국에서 마케팅하였고, 나중에 아스트카-머크를 100% 인수하면서 미국 영업조직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약물 하나로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아스트라를 보면서 당시 한국 신약연구의 중심이라고 자부하였던 회사에서 꿈을 키웠다.

그 이후 23년이 지나서 2020년이 되었다.

2015년 여름, 펠리노-1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백질의 저해제로 염증성질환치료제의 가능성이 있었던 TRE-0401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소개 받고 검토하던 무더웠던 여름으로부터도 이제 4년이 흘렀다. 당시 TRE-0401이라는 이름의 약물은 이제 BBT-401이라는 코드명이 붙은 궤양성대장염 치료제 후보물질로 임상 2상 단계의 약물이 되었다.

2019년도는 브릿지바이오를 시작한 이후 진행되었던 일들의 중간 정산을 하는 한해가 되었다.

벤처창업자금을 623억원 받고, 투자가들에게는 코스닥 시장 IPO를 통해서 회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비상장 바이오텍에서 코스닥 상장 바이오텍이 되었다.

그 동안 국내 연구진들이 발굴한 3개의 후보물질을 도입해서 그 중 하나를 NRDO 사업모델의 결과물인 “글로벌 라이센싱아웃”을 통해서 빅파마의 파이프라인으로 편입시키면서 2018년 매출 0원에서 2019년 매출 559억(추정)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19명이라는 아주 작은 인원으로 이루어서 더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브릿지바이오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2008년 여름에 두번째 바이오텍을 시작했었다. 초기부터 항암제와 항체로 가장 잘 나가던 다국적제약회사의 관심을 끌면서 시작했다. 내부 인원은 두명, 사무실은 오피스텔 하나. 필요한 실험들은 협력하는 정부출연연구소와 진행을 했다.

하지만, 국내 VC들로부터는 투자를 받지 못했다. 남의 기술을 사가지고 와서 실험실도 없이, 내부 인력도 없이 일을 진행하는 모습이 미더워보이지 않았으리라. 더군다나 “벤처”로 지정될 수도 없었고. 그리고 판단착오로 잘 맞지 않는 투자가를 통하여 투자를 받게 되고, 그 이후 상호 미숙함들로 인해서 두번째 바이오텍은 사라졌다.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은 혼자의 힘으로 크는 것이 아니고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것과 신뢰는 상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처음 출발할 때 시리즈A때 투자를 해주었던 창업투자사 담당자들이 너무도 고맙고, 그 사이 성숙한 국내 투자업계들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했다. 사실 시리즈A 145억 투자를 받고도 NRDO 사업모델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였고 부정적인 언급들도 돌고돌아 귀에 들려오기도 했다.

그래서 매달 투자가들에게 회사의 상세한 내용을 공유하고, 과제들의 진척상황을 계속 업데이트를 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직급을 부르지 않고 이름(물론 끝에 “님”을 붙임)을 부름으로써 최대한 상호협의가 가능하도록 노력했고, 내부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브릿지바이오를 통해서 작은 바이오텍 회사도 충분히 글로벌 임팩트가 있는 일들을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기쁘다.

아스트라를 벤치마킹하며 공부했던 날들로부터 20여년, 아직 한국에 다국적제약회사로 큰 회사는 없지만, 많은 시행착오들과 작은 성공들이 밑거름이 되어 글로벌 경쟁에 겁없이 뛰어드는 많은 도전들을 보며, 우리나라에서 성장한 글로벌 제약회사가 전세계 환자들에게 기적과 같은 약물을 제공하는 그날을 꿈꿔본다.

꿈, 더디 실현되지만, 멈추지않으면 한걸음 한걸음 가까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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