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교수 "암환자에 돈 더 쓰려면 국민 동의받아야"
복지부, 항암제기금 조성 등 접근성 제고 전향적 검토

[종합] 면역항암제 보장성 강화 토론회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교수(왼쪽)와 최경호 복지부 사무관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교수(왼쪽)와 최경호 복지부 사무관

"면역항암제 혜택을 늘리고 싶다면 경증 환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가령 안약·소화제가 정말 우리가 투자해야할 약이냐.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으로는 어렵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1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면역항암제 보장성 강화 어디까지' 국회 토론회에서 고가 면역항암제의 보험급여 적정성을 두고 이 같이 지적했다. 이 교수는 "MRI·첩약 급여화를 제한된 재정으로 어떻게 감당하는지 모르겠다. 재정을 여기저기 막 쓰는 거 같다"며 "중증질환에 좀 더 투자하든지 다른 분야 재정을 깎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약무사무관도 건강보험 재정 한계에 동의했다. "국가 돈주머니에 한계는 있다. 화수분마냥 돈을 쭉쭉 꺼내서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면역항암제 보장성 강화를 위해 나름 계획을 세워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전약가 인하제를 통한 적응증 확대·기등재약 재평가 후 항암제기금 조성·선별급여 확대 등 고가 면역항암제 접근성 제고를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이며, 보건당국이 일을 안 해서 급여 적용이 안 되고 있다는 오해는 풀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전공의가 나보고 보험사 직원이냐고…"

이날 패널토론은 서동철 중앙대 약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 김희준 중앙대병원 종양내과 교수,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약무사무관이 참여했다. 

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
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는 고가 면역항암제 선택폭과 접근성이 낮은 점을 지적했다. 산정특례 제도 5%에 대한 환자 부담을 높이고, 100% 비급여 약제를 정부와 제약사·환자가 나눠 부담하며, 암환자 펀드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백 대표는 "의사는 환자에게 적합한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진료실에서는 재정적 독소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진료 시 오가는 대화는 '비급여지만 효과 좋은 약제가 있는데 하시겠나요?', '약을 쓴다고 낫진 않고, 계속 써야 합니다', '개인보험이 있나요?', '약제비가 월 1000만원이니 가족과 상의해 결정하세요' 등이다. 이 대화를 마친 환자가 집에 가서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면역항암제는 고가 비급여 약제여서 애초에 치료옵션에서 제외된다. 심지어 환자들은 병원에 갈 때 옷을 잘 차려입고 가야 한다고 얘기한다"고 호소했다.

산정특례 5%를 고집할 게 아닌, 환자 부담을 높여도 다양한 약제를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급여 약제가 환자에게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약을 쓰는 기간도 천차만별이다. 몇 차례 실패 끝에 맞는 약을 찾게 된다"며 "초기 선택 과정에서 정부·제약사·환자가 함께 약제비를 부담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이후 효과가 지속되는 약을 급여해주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 산정특례를 유지하면서 2~3차 약제 사용 시 환자 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백 대표는 "오죽하면 암환자들이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을 먹느냐. 고가 약이 즐비하다. 경제성 평가는 단순히 안전성·경제성을 따질 게 아닌, 환자 치료기간과 삶의 질도 따져야 한다. 암 치료 이후에도 우리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약제 보장성 강화는 결국 돈 문제다. 암 환자의 전체 투병을 보고 접근해, 환자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준 중앙대병원 교수
김희준 중앙대병원 교수

김희준 중앙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도 면역항암제의 낮은 접근성을 지적하고, 산정특례 5% 기준을 높여 환자 부담금을 늘리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백 대표 발언에서 마음이 먹먹할 정도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병원 전공의가 나보고 보험사 직원이냐고 했다. 실제로 폐암 환자에게 면역항암제를 써야하는 경우 보험한도가 얼마냐는 얘기만 한다. 환자 100명 중 99명은 진료실을 나가면서 돈 생각만 할 거다. 굉장히 안타깝다"고 했다.

김 교수는 면역항암제 등 신약 임상 데이터에 들어맞는 환자에게는 그 약을 충분히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약이 워낙 고가다. 환자들이 접근이라도 할 수 있게끔 도와달라. 지금은 암이 전이되면 1년도 못 사는 시대가 아니다. 면역항암제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산정특례 부담금도 조금씩 올리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면역항암제 급여 위한 항암제기금 마련 중"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 한계로 면역항암제 급여 확대를 무작정 찬성할 수만은 없다며, 돈을 더 내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약제 급여화 등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환자가 희망고문에 시달리지 않도록 약제비 투자 계획을 국민에게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나도 암을 보는 의사다. 암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싶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결국 국민이 낸다. 암 환자에게 건보 재정을 더 쓰는 것을 과연 국민이 동의할까. 여러 설문조사를 종합하면, 국민은 건보료를 더 내기 싫어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과연 어디에서 나온 돈으로 이를 감당할지 의문이다. 지난 5년간 4대 중증질환에 많은 재정·투자가 이뤄졌는데, 왜 4대 중증질환만 하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제약기업의 경우 신약 접근성 보장을 꾸준히 주장하지만, 특허가 끝난 약의 가격을 내릴 생각을 전혀 안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약에 재정을 더 투자하겠다면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많은 약은 과감하게 투자를 안 하겠다고 국민에게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중증 환자들이 희망고문에 시달리지 않는다"며 "제도도 너무 경직돼있다. 산정특례 5%에 묶여서 여러 제한이 있다. 건강보험 제도는 유지하되 제도를 다양화해서 보완·호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약무사무관은 기등재약 사후평가를 통해 절감된 건강보험 재정을 항암제·희귀질환 치료제 보장성 강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끔 '별도의 주머니'를 마련 중이라고 했다. 실제임상자료(RWD)에 기반해 기등재약을 재평가한 후 항암제기금(CDF)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외 사전약가인하제를 통한 적응증 확대, 선별급여 확대 등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약가협상 시 제약사의 '아니면 말고' 식의 비협조적인 태도도 지적했다. 최 사무관은 "이 상황이 마치 제약사·정부·보험자·건강보험공단 간 힘겨루기와 돈 문제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지막에 키를 든 주체는 제약사다. 기업이 재정 계획·환자 보호조치 등을 적절하게 설계해와야 하는데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이는 지속적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면역항암제 보장성 강화 어디까지' 국회토론회
'면역항암제 보장성 강화 어디까지' 국회토론회

"감기·추나요법보다 중증 환자를 우선해야"

패널토론 후 플로어 질의에서는 폐암 환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한 폐암 환자는 이대호 교수 발언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는 "이 나라는 절박한 환자를 돌보지 않는다. 그간 심평원·건보공단에 여러 민원을 제기했는데,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곳이 하나 없었다"며 "내가 알기로는 1차 치료제로서 면역항암제가 필요한 2만2000명 중 PD-L1 발현률이 높은 일부 환자에게만 선별해서 약을 쓰는 걸로 안다. 약 한번만 써보고 죽겠다는 환자 절규를 과연 정부가 듣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폐암 환자는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에 환자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암과 관련한 모든 위원회에 환자를 넣어달라. 나라도 넣어달라. 내가 자리잡고 청소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선별급여 5% 기준에 대해서도 건의했다. "대기업 사장은 50~60%,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은 0~5%를 내는 등 선별적으로 해달라"고 주장했다. 

박지현 건국대병원 교수
박지현 건국대병원 교수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는 "암 환자는 이제 굉장히 많아졌다. 정부는 감기·추나요법보다는 중증 환자의 생명을 우선순위에 둔 보장성 확대를 먼저 해달라"면서 "암 질환의 불확실성은 이제 암환자도 같이 나눠야 한다. 산정특례 5%를 보완해 환자가 좀 더 지불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100% 비급여 부담을 정부·제약사·환자가 분담해 치료 기회가 더 확대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전이성·진행성 비소세포폐암 면역관문 억제제 사후평가'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박지현 건국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의 마무리 발언이 있었다. 그는 "암은 결국 국가 부담이 크게 작용하는 문제다. 치료비용 증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적절한 치료옵션이 외국과 시간적 갭 없이 도입되는 게 장기적인 (국가 재정)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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