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케어'로 인한 건보 적자 '제약'만 희생양 되나
토종 제약산업 발전단계 고려해 추진돼야

11월22일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KAHTA) 후기학술대회 의약품 총액관리제 토론
11월22일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KAHTA) 후기학술대회 의약품 총액관리제 토론

11월 23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의원이 서면 질의한 '약제비 총액관리제 도입'과 관련해, "(2017년) 연구용역을 수행했으나 제도 도입 여부는 구체적으로 검토한바 없다", "제도 도입 시에는 연구용역 결과를 제약업계 등 이해관계자와 충분히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해 복지부와 협의하겠다"고 답신했다.

11월 22일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가 '약제비 총액관리제 도입 문제'를 놓고 중앙대학교병원에서 '2019년 후기 학술대회'를 열었다.

건보 보장성 강화가 골자인 '문 케어'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국민건강보험재정(건보재정)이 그동안 7년간의 흑자 기조에서 2018년 적자로 돌아섰다. 1조9천여억 원이나 됐다. 금년에는 3조2천억 원의 적자가 예상될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내다보고 있다. 적자규모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날 조짐임이 확실하다.    

지난 2일 국회예산정책처는 '2019~2028년 8대 사회보험 재정전망'을 공개했다. 건보재정 수지(收支)와 적립금 관계를 1안과 2안의 기본모형으로 나누어 분석하면서, 지금처럼 나간다면 금년 현재 17조원 내외인 건보 적립금이 1안의 경우 2024년, 긴축안인 2안의 경우에도 2028년,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예상했다.

'문 케어'는 국민 건강복지 증진의 실천 수단이다.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정치 역학상 갈수록 확대될 것이고, 한번 확대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복지비용의 속성인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건보재정 악화 일로는 불을 보듯 뻔하다.

건보재정이 파탄나지 않도록 하는 대책으로, 수입부문에서 ▷보험료 인상 ▷세금 등 공적지원 확대, 지출부문에서 ▷진료비 총규모 통제 ▷미납보험료 채권관리 강화 및 공단 일반관리비 긴축 체제 강화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중에서 보험료 인상과 세금 등 공적지원 확대는 자칫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기 십상일 테고, 미납보험료 채권관리 강화 및 공단 일반관리비 긴축 체제 강화는 큰 줄기가 아닌 작은 가지에 불과해 건보재정 파단 방지책으로 기여도가 낮을 것이기 때문에, 당국은 그것들 중에서 그래도 만만한 것은 사업체들과 상대하는 '진료비 총규모 통제'뿐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건보 총진료비는 두 기관으로 흘러들어가게 돼 있다. 요양기관(의료기관 및 약국)과 의약품 공급기관(제약 등)이다. 건보당국은, 요양기관은 힘이 막강하니까 이들 몫의 배분 방법을 개편하기에 앞서 우선 힘이 미약한 공급기관 몫부터 통제하는, '약제비 총액관리제' 도입을 전략적 본보기로 밀어붙일 것 같다.

건보공단은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일단 선을 긋고 있지만 예사롭지 않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과 같다고나 할까.

이제까지 당국은 약제비 통제를 위해, 하고 싶은 보험약가제도를 거의 모두 시행해 왔다. 실거래가상환제도, 포지티브제도, 시장형실거래가제, 약가일괄인하제도 등이다. 유일하게 참조가격제만,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간의 국민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는 이유로 유보됐을 뿐이다. 이들 제도 등의 효과로 총진료비 중 약제비 비중이 매년 감소돼 10여 년 전 29%대에서 작년 24.6%까지 떨어진 상태다.

그렇지만, 당국은 이러한 지금까지의 현 '행위별 수가 체제' 하에서는 당면 과제인 '문 케어'의 지속적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문 케어'를 2년간 시행해 본 결과인 건보재정 악화 상태를 보면서 '행위별 시스템'으로 건보재정을 안정화 시키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보다 더 강력한 진료비 규제 방법을 강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진료비 총규모 통제 제도' 아니겠는가.

이처럼 '문 케어' 환경 속에서 건보재정 씀씀이 확대 추세에 대해 이모저모 생각해 보면, 앞으로 1~2년 안에 본격적으로 '약제비 총액관리제 도입 문제'가 수면 위로 불가피하게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약제비 총액관리제도'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발전과 선진화에 치명상을 입힐 것이 분명하다. 자유 시장경제 속에서 능력껏 뜻을 펴야할 그 산업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도록 건보재정 지출예산의 약제비 범위 틀 안의 철창 속에 꽁꽁 묶고 가두어 관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부가가치 창조 능력으로 봐, 미래의 국민 먹거리산업이 확신되는 대망의 제약바이오산업이, 당국에 의해 건강보험용 산업쯤으로 사육되어서야 무슨 발전과 선진화가 기대되겠는가.

'약제비 총액관리제도'는 이제까지 있어왔던 개별약품에 대한 미시적 가격 규제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최강의 거시적 통제 수단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잘하면 현상유지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산업 선진화의 모태가 될 신약개발 사업은 그 싹이 말라 버릴 것이 틀림없다. 신약 개발 돈줄의 원천인 매출액(수익)이 건보재정 예산범위 속에서 극심하게 통제돼 먹고살기도 바쁠 텐데, 무슨 수로 어떻게 신약개발용 자본 축적이 가능하겠는가.

지금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는, 1950년대의 폐허된 황무지를 딛고 2015년 한미약품의 신약 기술 수출을 기폭제 삼아 각사마다 자체 역량을 극대화하면서 어렵사리 신약 개발의 싹을 틔우 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의 강국으로 가는 초기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신약 발걸음을 막 떼기 시작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도 선진국처럼 국민 '먹거리' 산업으로까지 가능한 빠르게 육성되도록 당국의 강도 높은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하필 이러한 시점에, 토종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의 최대 장해물이 될 '약제비 총액관리제도'가 건보재정 악화를 틈타 떠밀려나올 준비를 마쳐가고 있는 같다.

선진국이 1970년대 '진료비 총액관리제도'를 개발·시행할 시점에는 그들 국가의 제약사들은 세계를 지배할 수준으로 성장해 있었다. 산업발전 단계로 보면 이미 로스토우(Rostow, W. W.)의 성숙단계(the drive to maturity)를 마친 뒤였다. 때문에 '진료비 총액관리제도'로 인한 자국(自國) 제약사들의 발전 장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판이하게 다르다. 토종 제약바이오산업계는 이제 막 신약을 가지고 세계로 나가는 첫 발걸음을 내디디기 시작한 유아(幼兒) 단계다. '도약을 위한 선행조건 충족의 단계(preconditions for take-off)'를 시작하는 단계인 것이다. 세계 시장을 향해 성인이 되어 힘차게 내달릴 수 있도록 정부가 육성시켜 줄 필요성이 절실한 산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개된 여러 편의 국내 '진료비 총액관리제도' 연구보고서들을 보면 이점을 모두 간과하고 있다. 그저 EU 소속의 몇몇 선진국들과 '대만' 등이 이러저러하니 우리도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뿐이다. 앞으로 필히 육성시켜야 할 토종 제약바이오산업을 손톱만큼도 걱정하는 연구는 아무데도 아무에게서도 없었다. 그래도 될까.

그렇다고 건보재정 안정의 막중함을 모르거나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하지만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신약을 통한 선진화 도약 과제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때문에 보건복지 당국은 '약제비 총액관리제' 도입에 신중 또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당해 정부 당국은, 건보재정 안정책과 토종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책이 상호 길항관계로 꼬여 있음을 유념해 어떠한 선택이 보다 더 미래의 국익이 될까에 대해 이성적으로 냉정히, 정책적, 전략적으로 판단했으면 한다.

토종 제약바이오산업의 고혈을 짜낼 '약제비 총액관리제 도입'은 아직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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