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녕·정일억 교수, 연구논문 분석결과 발표
노인신경의학회 추계학술대회 항노화 약물요법 세션
박미영 교수 "국내임상 내년 2월 종료…곧 공개"

정일억 교수(왼쪽)와 이찬녕 교수

"치매예방 효과에 대한 애비던스를 가진 논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약의 기전을 생각해 쓸 수 있다는 가정 정도로만 생각해달라."

이찬녕 고대의대 신경과 교수는 7일 이대서울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노인신경의학회 추계학술대회 항노화 약물요법 세션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치매예방에 써도 되느냐'는 박건우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질의에 이 같이 밝혔다. 

이날 세션에서는 뇌기능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정리·발표됐다. 연자로 나선 이찬녕 교수와 정일억 고대의대 신경과 교수는 긍정적·부정적 입장에서 각 연구결과를 고찰했다. 

특히, 치매예방약으로 잘 알려진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흔히 인용되는 아스코말바(Ascomalva) 연구 결과(2014)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도네페질과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병용투여한 이 연구에서는 단독투여 대비 병용투여 시 인지기능이 더 잘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일억 교수는 "중간발표는 결과가 좋아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아스코말바는 여전히 진행되는 스터디다. 더 중요한 건 알츠하이머 환자 대상 연구라는 점이다. 약물도 콜린알포세레이트 단독이 아닌, 도네페질·콜린알포세레이트 병용군과 도네페질·위약 병용군을 대조했다. 상당히 영리하게 조작한 연구"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임상 대부분이 이탈리아가 출처라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 임상정보 사이트 '클리니컬 트라이얼스'(ClinicalTrials.gov)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검색한 결과, 9개 데이터만 확인할 수 있었다. 굉장히 한정적인 데이터라 할 수 있다"며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 대상 콜린알포세레이트 효용성 확인을 위한 추가 연구는 부재된 상태다. 아마 국내 허가를 받은 2001년은 한국인 대상 가교시험(Bridging Study) 없이도 약물 허가가 가능한 시기여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제라도 적응증 재검토·데이터 확보가 시급하다"며 "환자도 굉장히 고통스럽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이제 와서 다시 RCT(임상시험)를 해야 하느냐. 필요하다면 진행해야 하지만 20년가량 이 약이 많이 쓰여왔다는 점을 감안해, 심사평가원·건보공단 데이터를 활용한 재평가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이날 좌장을 맡은 박미영 영남의대 신경과 교수는 "아스코말바 연구 스폰서가 누구인지도 확인해봐야 한다. 일부 논문의 경우 기업 스폰서인 경우가 많다"며 "(콜린알포세레이트 관련) 한국인 대상 연구결과가 없다는 얘기가 있는데, 해당 연구는 현재 마무리 단계로 내년 2월에 종료될 예정이다. 조금 기다리면 중간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적응증 허가 애비던스는 찾을 수 없어"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Italifamaco)가 개발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치매 전 단계의 가벼운 인지장애를 치료하는 치매예방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이 제제의 잇따른 효용성 논란에도 합리적인 급여 기준을 설정하지 않아 건강보험 재정 1조원이 낭비됐다고 주장하며 보건당국의 직무유기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작년 한해만 2700억원의 건강보험 청구액이 발생했으며 청구 순위는 성분 중 2위다. 대표약제는 종근당의 글리아티린·대웅제약의 글리아타민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2월 말까지 콜린알포레세이트 제제를 포함한 대상약제 리스트를 작성해 내년 6월까지 급여 재평가를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내 급여 기준은 △뇌혈관 결손 또는 퇴행성 뇌질환에 의한 증세 △감정·행동 변화 △노인성 가성우울증으로 구분된다. 이 중 2·3번째는 특정 질환에 의한 증세라고 보기 어려운 대다수 노약자에게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대한노인신경의학회 추계학술대회 항노화 약물요법 세션
대한노인신경의학회 추계학술대회 항노화 약물요법 세션

정일억 교수는 "적응증을 보면 어떤 질환에 특화된 게 아닌, 증상을 단순 나열해놨다는 느낌이다. 노인과 뇌 문제가 있는 환자 대부분은 이 적응증에 적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콜린알포세레이트가 많이 처방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이런 효능·효과가 어디서 왔는지를 제약사 측에 물어봤고, 데이터를 받아 확인해보니 각각의 적응증에 대한 애비던스를 담은 논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 논문들은 구글에서 찾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이 이탈리아 내에서 허가받기 위해 인용된 논문들로, 실제 내용은 바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이어 정 교수는 "이탈리아에서 허가받은 내용으로 2001년 국내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왜 당시 이 적응증으로 허가를 받았냐는 것에 대한 애비던스는 명확히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약이 계속 쓰여왔고, 여러 데이터·연구가 있을 거라고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데이터는 있지 않았다. 2001년 리뷰 논문과 2005년·2007년 스터디, 가장 최근의 아스코말바 스터디 정도였다"고 했다.

정 교수가 소개한 2001년 리뷰 논문은 치매환자 대상으로 단독군·위약군으로 나눠 진행됐는데 콜린알포세레이트 투여군이 위약군 대비 20% 이상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대다수는 실제 유통된 적응증과는 달리 기존 데이터는 치매환자 대상으로 연구됐으며, 콜린알포세레이트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데이터가 도출됐다. 2007년 발표된 논문도 2001년 리뷰논문과 유사했다.

정 교수는 "2001년과 2007년 논문 내용이 왜 비슷하냐면 저자가 이전 논문 저자와 같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추가데이터만 업데이트해서 발표한 것이었다. 결과는 다 좋게 나왔다. 그런데 그 연구대상이 과연 누구였느냐. 노인·퇴행성 질환 환자·치매 환자를 구분하는 게 중요한데 대부분 연구는 치매환자 중심이었다"고 했다.

정 교수 발표 이후 플로어 질의가 이어졌다.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탈리아에서 한 영국 의사를 만나 '이 약을 유럽에서 치매 환자에게 쓸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유럽은 허가가 아예 안 났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환자 본인이 약값을 다 내고 먹는 상황"이라며 "국내 임상결과가 나오면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 치매예방 처방에 대한 방향성이 정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신경과 의사로서 치매예방 처방 반대"

한일우 회장(왼쪽)과 박건우 총무이사
한일우 회장(왼쪽)과 박건우 총무이사

한편, 항노화 약물요법 세션에 앞서 콜린알포세레이트 이슈 관련 기자간담회가 1시간가량 진행됐다. 한일우 노인신경의학회장(용인효자병원)은 "이 이슈가 터지기 전부터 학술대회 주제를 항노화로 정하고, 프로바이오틱스와 비약물치료 세션의 연속선상에서 약물 세션도 만들게 됐다"며 "약물 세션은 콜린알포세레이트에 대한 기능·역할을 정확히 정립하기 위한 게 아니다. 양 교수에게 숙제를 냈다. 이찬녕 교수가 관련 연구논문을 긍정적 입장으로, 정일억 교수는 그 반대편인 부정적 입장으로 정리·발표하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박건우 총무이사(고대안암병원)는 "(콜린알포세레이트는) 필요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약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 의미없다고 몰아가는 것도 잘못됐다"며 "어떤 치매환자가 비타민이 부족해 비타민을 처방했더니 치매 증상이 좋아졌다고 가정해보자. 그 한 케이스를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먹였는데, 사실 모든 사람은 비타민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었던 거다. 나중에 가서 '왜 그 바타민을 먹였느냐. 이제 치매환자에게는 비타민을 주지 말자'는 게 지금 상황이다. 비타민이 부족한 사람은 비타민이 약이 됐던 거다. 콜린알포세레이트가 필요한 사람은 분명히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학술단체에 불과하다. 이번 일로 제약사들이 광고부스를 다 뺄 수도 있다(웃음). 그런 리스크를 안고, 학술적 취지에서 약물 검토를 위해 이번 세션을 마련한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치매예방으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쓰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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