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주근로 도입 반응, 노사간 신뢰 있어야 장점 극대화

"콜(Call) 찍지 말고 영업 스케쥴도 자율적으로 운영하라고 하니 처음엔 그냥 하는 말이겠지 생각했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7월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간주근로시간제(사업장 밖 근로시간제)를 영업직군에 적용한 제약회사 사례들이 조금씩 이야기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8조(근로시간 계산의특례)를 근거로 하는 간주근로시간제는 영업사원처럼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직군에 적용 가능한데 현장 영업활동에 통상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간을 노사합의로 정하고 이를 근로한 것으로 상호 인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많은 회사들이 간주근로시간제 도입에 관심을 보였는데 ▲영업사원의 현장활동을 보고하는 콜(Call) 리포트 ▲주말 학회활동 등 과 같은 쟁점사항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었다. 12월까지 6개월간의 계도기간 중이지만 선제적으로 간주근로시간제를 적용한 몇몇 회사들의 영업사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콜(Call) 보고를 폐지한 모 제약회사 영업사원 K씨는 “처음엔 정말 콜을 찍지 않아도 되나 불안하고 이상했다”고 말했다. 지점장에게 사전 보고한 12콜 이상의 스케쥴을 매일 소화했던 K씨는 콜 보고를 끊은(?)지 2개월여가 지나면서 “내 장사를 하는 느낌”이라고 만족해했다.

콜을 의무적으로 찍어야 했던 때는 카카오톡으로 사전에 보고한 스케쥴 대로 12개 이상의 거래처를 매일 방문하다보니 방문기록(콜)을 찍는데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 자칫 콜 기록을 빠뜨리기라도 하면 다시 돌아가 콜을 찍어야 하는 시간낭비를 종종 경험했다고 K씨는 말했다.

지금은 영업 스케쥴 자체를 직접 구상하고 여기에 맞춰 시간안배도 하고 디테일 계획도 세우기 때문에 이전 보다 훨씬 빠르고 심도있게 영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또 다른 제약회사 P씨는 “주변의 다른 회사들은 아직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먼저 경험해보니 영업활동을 보고하는데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고 효율적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P씨는 영업활동은 고객의 선호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일해야 하는 만큼 업무시간을 특정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것. 저녁 늦게 또는 아침 일찍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출퇴근 시간에 묶여 있던 때에 비하면 밤 늦더라도 다음 날 스케쥴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회사의 통제에서 벗어날 경우 이전 보다 더 냉정해질 수 밖에 없는 업무평가에 대한 부담이 생기지는 않을까? 중상위권 제약회사 B씨는 “간주근로를 적용하면서 주말학회에 가든, 밤 늦게 일하든 모든 게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가 됐다”며 “평가가 더 냉정해질 거라고 우려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어차피 이전에도 영업사원 평가는 매출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더 부담스러워 졌다고 말할 것은 없다”고 밝혔다.

영업조직의 중견 간부급인 C씨는 “솔직히 영업활동에 대한 보고를 적극적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초기엔 밑에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할까 의심스럽기도 했었다”며 “우리 회사의 다른 지점은 지금도 알음알음 보고를 받지만 집착을 버리고 멘토링하는 입장으로 조직을 관리하면 오히려 직원들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주근로 도입에 따른 불신풍조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영업사원 K씨는 “간주근로를 도입하면서 직원들 근태를 확인하고 싶은 회사가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를 이용해 휴대폰 위치추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불안감을 얘기하는 동료들이 있다”며 “간주근로제의 장점이 있지만 노사간 신뢰가 없으면 자칫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유통업체 중견간부 J씨는 “간주근로 시간을 노사간 협의해야하는데 직원 대표를 회사가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등 제도의 취지를 왜곡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이런 시도가 있으면 직원들의 불신이 쌓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무법인누리컨설팅 금원환 공인노무사는 “근무형태를 바꾸는 것은 법이 정한 절차나 테두리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노사간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 좋다”며 “52시간 체제 하에서 영업사원에 대해 간주근로를 적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노사 모두 새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장점을 살리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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