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철 교수 "가장 상실 소독 보장제도 도입 절실"

전문가는 보험업법상 제3보험의 판매실적을 보면 가구당 민간의료보험 월평균 보험료가 줄어들었는지 간접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제3보험은 상해·질병·간병보험을 일컫는 말로 통상 민간의료보험이라고 부른다.

손해보험협회가 집계한 월간손해보험통계를 보면, 제3보험의  보험료 수입은 2017년 1∼4월 월평균 3조 8,192억원 규모였다. 그런데 이른바 문재인케어로 대별되는 보장성 강화가 상당히 진행된 2019년 1∼4월 월평균 수입은 3조 9,791억원으로 2년 전 같은 기간보다 4.2%가 더 늘어났다. 왜 보장성이 강화됐는데도 민간 의료보험 수요는 감소하지 않고 있을까.

전문가는 국민들이 보장성 강화효과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3가지로 유추했다. '가장이 상병으로 요양하게 됐을 때 상실된 소득을 보장해 주는 법정유급병가나 상병수당제도가 없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비급여의료서비스가 급증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도를 시행하면서 진료지침의 구속력이 약하다' 등이 그것이다.

신기철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는 '2019 HIRA 정책동향(13-5호)에 수록된 '보장성 강화와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 기고글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민간 의료보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3가지 원인과 관련한 OECD 회원국의 사례를 비교해 제시했다.

보장성 강화와 민간의료보험=신 교수에 따르면 실손보험은 보장성이 강화되면 지급보험금이 줄어든다. 그러나 중증질환의 보장성이 강화되는데 다른 부분의 비급여의료가 늘어나면 보험금이 늘어날 수 있다. 정액보험 가입자는 보장성 강화로 이익이 커질 수 있다.

암진단비 5,000만원을 지급하는 암보험을 가입했는데 보장성 강화로 본인부담금이 3,0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고 가정하자. 보장성 강화 이전에는 5,0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 3,000만원의 본인부 담금을 납입하기 때문에 2,000만원의 보험차익이 발생했다. 보장성 강화로 본인부담금이 500만원으로 줄어들면 보험차익은 4500만원으로 더 커진다.

이렇게 가장에게 보험차익이 발생하면 암으로 요양을 받는 기간 상실된 소득을 보장하는 상병수당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학생, 퇴직자 등 직업이 없는 가입자가 받았다면 상실소득이 없기 때문에 이 금액으로 의학적 필요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려 할 수 있다.

실제 신기철·권혁성 교수(2014)가 2013년 1∼9월까지 9개월간 20개 상병으로 입원했던 98만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정액보험 가입자는 비가입자보다 평균 33% 입원기간이 길었다.

신 교수는 "종합적으로 보면 보장성이 강화돼도 구속력있는 표준진료지침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민간 의료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손보험은 양질의 서비스를 받으려는 의도로 가입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도덕적 해이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또 "정액보험은 보장성이 강화될수록 보험차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해 건강보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상병수당과 정액 민간보험=신 교수는 "2018년 1월 기준 미국과 우리나라를 제외한 34개 OECD 회원국(ISSA, 2018)이 요양 기간 중의 상실 소득을 법정유급병가나 사회보험의 상병수당 형태로 보장한다"고 했다.

또 "미국은 유급병가를 기업의 임의복지제도로 활용하는데 2018년 미국 노동부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민간기업 정규직의 82%가 유급병가 혜택을 받고 있다. 2012년 코네티컷주를 시작으로 현재 11개주(인구기준 32%)에서 법정유급병가를 도입했으며,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결국 OECD 회원국 중 상병수당이나 법정유급병가가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9일 '빈곤층으로 떨어진 가장 큰 이유 중 첫 번째가 실직이었고, 두 번째가 의료비 부담'이라고 강조했는데, 가장의 장기요양은 실직과 의료비 부담이 동시에 발생하는 가장 치명적인 위험"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에 의한 법정유급병가나 상병수당이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액보험이 과다할 정도로 발달했다. 앞으로도 법정유급병가나 상병수당이 도입되지 않으면 정액 보험 가입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삶의 질 향상과 비급여 의료서비스=신 교수는 "정부가 의료산업을 차세대성장산업으로 집중·육성하면서 각종 신약은 물론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다양한 신의료기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신의료기술은 비용효과성이 입증될 때까지는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의료서비스로 운영한다. 결국 소비자들은 본인부담 의료비로 인식하기 때문에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이 강화돼도 실손보험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행위별 수가제도와 표준진료지침=신 교수는 "지난 7월 한국일보에는 '병원 수익도구로 전락한 인센티브제'라는 기사가 실렸었다. 국·공립병원도 인센티브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인센티브제는 선의의 경쟁을 유발해 의료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의료기관들은 높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MRI 등 수익성이 높은 검사들을 반복적으로 하거나 비급여의료 서비스를 권한다고 한다"고 했다.

신 교수는 "기사에서는 자궁내근종이나 만성염증 등의 치료에 150만∼2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복강경수술로 충분한데 1,000만원대가 소요되는 로봇수술을 권하기도 한다고 돼 있다. 이런 부작용은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하면서 실효성있는 표준진료지침이 없는 현재의 의료전달체계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우며, 모든 비용이 환자들에게 전가되므로 실손보험 가입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장 상실소득 공적 보장체계 필요=신 교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돼도 민간 의료보험 보험료는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다. 홈쇼핑채널이나 보험회사 홈페이지의 민간 의료보험 설명내용을 보면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가 과연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상병수당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회안전망이 없고 비급여의료서비스가 급증하는 가운데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진료지침의 실효성이 적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이어 "OECD 회원국의 과거 경험에 비춰 보장성 강화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우선 과제는 건강보험에서 상병수당을 도입하거나 기업의 유급병가를 의무화하는 등 가장의 요양기간 중 상실소득에 대한 보장제도 도입이다. 상병수당 도입방향에 따라 민간 의료보험을 정비하면서 고령화 과정을 이미 겪은 OECD 회원국의 사례를 참고해 의료전달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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