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가짓수보다 아웃브레이크 큰 백신부터"

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국감이 끝났단다. 또 한해가 저문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제법 내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국감이었다. 국감이 끝나면 늘 찬바람이 불었다. 또 한 해가 가는구나하는 걸 느끼곤 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모두 생물학적제제가 주력품목이었기 때문이다. 백신, 혈액제제는 매우 인화성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늘 국감의 단골메뉴였다.

올해 국감은 조용한가부다 했는데 사실 내가 그 곳을 떠났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워낙 큰 이슈에 가려서인지 언론에는 별로 노출이 되지 않았지만 살펴보니 역시 여러 백신들이 여러 이슈로 튀어나오긴 했다. 그래서 살펴보았다. 눈에 띄는 질의중 하나는 백신자급화에 대한 것이었다.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에 비해 진도에 못미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골자였다.

민간기업에서 시작한 백신주권이라는 용어를 정부가 사용한 게 신종플루 때부터였으니 올해로 꼭 십년이 되었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 이 구호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도와주는 건 하나도 없는 정치권에서도 이 용어는 남발되었다. 심지어는 나도 일을 할 때 이 말을 상황에 따라 여러 번 써먹었다. 낯이 간지러울 때가 여러번 있었음을 고백한다.

백신자급률이란 국내에서 필요한 백신의 종류를 28개로 정하고 몇 개가 국내에서 생산되는가에 따라 자급률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사실은 3,4년전부터 수정이 필요하다고 눈치를 채는 사람들은 있었다. 환경에 따라 필요한 백신과 개수는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십년사이에 주요 관심의 영역안으로 튀어들어온 신종감염성질환만 해도 기억나는 것만 대여섯 가지다. 메르스, 지카, 에볼라, 새로운 균주의 조류독감 등등.

백신자급화라는 구호는 희망사항이고 정방향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고 실현자체도 불가능하다. 전세계를 보아도 현실적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가장 자급화의 비율이 높은 나라라는 게 가장 많은 종류의 백신을 생산하는 회사가 위치해 있는 벨기에 정도? 필요에 따라 공급만 원활히 된다면 사실 자급화 안해도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신자급화의 프레임이 먹혔던 것은  공급이 개런티가 안되는 불안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여러차례 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코리아는 절대로 유사시 우선공급을 받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국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백신자급이 가장 필요한 백신은 플루였다. 국내생산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국은 플루에 관한 한 글로벌호구였다. 플루를 가진 외자회사들은 한국의 업계를, 전문가그룹을, 정부를 데리고 놀았다. 적어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런데 그것은 십년전에 해결이 되었다. 국내에는 현재 인플루엔자백신 생산시설만 세 군데나 된다. 앞으로 플루에 욕심을 좀 보탠다면 더욱 개선된 형태의 플루백신 개발이 향후 국내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자급화에 성공한 백신은 B형간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 글로벌로 진출한 최초의 백신인 B형간염백신은 자신의 역할을 이미 30년전부터 성취하고 있었다. WHO가  세계의 신생아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율을 1%이하로 결정적으로 감소시키는 데에 한국의 간염백신은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백신이외에 메인 백신으로 국내에서 생산이 되는 백신은 DTP계열의 일부인 Td, 수두, 수두백신에서 영역이 확장된 대상포진 정도이다. 이 백신중 일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지만.

백신자급화는 필요한 가지수를 늘리는 것보다 아웃브레이크가 큰, 국내에서 생산이 안되면 감염병관리에 문제가 생기는 감염병에 대한 백신부터 우선순위를 매겨 진행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홍역, 백일해, A형간염백신같은 백신이 주요 후보군이 될 것이다. 오래된 백신은 개발과 생산이 쉬울 것 같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사용한 지 오래된 백신이라도 이제부터 개발을 시작하려면 당연히 최신기술을 사용해야 하고 또 업그레이드된 국제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 접근이 쉬운 것이 아니다.

기업들은 많은 경우 프리미엄백신을 우선순위에 놀고 연구개발을 한다고 하겠지만 국가적으로 정해지는 자급화의 우선순위는 달라야 할 지도 모른다. 막말로 폐렴이나 자궁경부암이 폭발적으로 대유행이 생기겠는가? 자체적으로 개발할 실력도 안되지만 이런건 수입해도 된다.

자급화의 출발은 국내생산을 해야할 것과 수입해도 되는 것을 우선 구분하는 데 있다. 정부지원도 철저히 전자에 제한할 필요가 있다. 성공확률 역시 전자가 높고 실패확률은 후자가 높다. 스펠링 외워서 연구과제 제목에 적어올린다고 백신이 되어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른 국감의 질의중에는 아프리카 돼지열병 백신을 왜 생산이나 수입을 안하느냐는 것도 있었단다. 수두백신 대상포진 백신의 약효문제를 콜드체인이슈로 접근한 것도 있고. 이해가 안간다. 우리나라 냉장고보급률은 200%가 넘는다. HPV백신 2가, 4가, 9가가 효과가 다 좋은데 왜 무료인 2가, 4가 놔두고 비싼 9가를 권장하냐고? 9가를 무료로 맞추는게 정상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십몇년만에 제3자의 입장에서 이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왔다. 다시 참견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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