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세포암 1차 치료옵션 늘었지만 혼선 그대로

"캐나다는 렌비마(렌바티닙) 이후 스티바가(레고라티닙)나 카보메틱스(카보자잔티닙)를 사용할 수 있다. 호주 가이드라인  또한 스티바가를 허용한다. 반면 우리는 렌비마 후속 2차 약제가 없다. 국제 가이드라인에 비해 보수적이다."

세브란스병원 김승업 교수가 최근 한국에자이가 주최한 렌비마 간세포성암 1차 급여확대 간담회에서 언급할 말이다.

반면 서울아산병원 유창훈 교수는 "종양으로 인한 통증이 심한 경우나 수족증후군을 경험한 환자는 렌비마를 적극적으로 쓸 수 있지만 이후 2차 치료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넥사바(소라페닙) 이후 스티바가 등을 썼을 때와 동일한 효과가 있을 지는 더 연구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달부터 간세포성암 1차치료제로 급여가 확대 적용되고 있는 한국에자이의 렌비마캡슐은 3상 임상연구에서 전체 생존기간(OS)은 넥사바와 비교해 비열등하면서 객관적 반응율(ORR)은 24.1% vs 9.2%로 더 개선된 효과를 나타냈다. 또 넥사바 투여환자에게 발생하는 주요 부작용 중 하나인 수족증후군이 거의 없는 것도 장점이다.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는 "수족증후군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못한다. 이런 부작용을 줄인 건 환자의 삶의 질 개선 측면에서 획기적인 측면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종양크기를 줄여 통증을 줄이는 것 뿐 아니라 이 부작용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렌비마를 선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렌비마 급여기준 확대논의가 한창 심사평가원에서 진행될 때부터 제기돼 왔던 후속약제의 부재다. 현재 급여기준에 유일한 2차 약제인 스티바가는 허가사항과 급여기준 모두 넥사바에 실패한 환자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다. 따라서 렌비마를 쓰다가 실패한 환자는 출구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 11일 입센의 카보메틱스가 간세포암 2차 치료제로 적응증이 확대되면서 갈증은 더 커졌다. 카보메틱스 역시 넥사바 다음에 쓸 수 있도록 허가돼 있어서 급여기준도 스티바가와 동일하게 설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입센은 이미 적응증 확대에 맞춰 심사평가원에 급여확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2차 약제가 추가됐지만 여전히 렌비마는 울타리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언론 등은 '반쪽짜리 희망'이라고 평가한다.

일부 임상근거와 전향적 사용례가 없지는 않다. 올해 2월 '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 렌비마 3상 임상시험(REFLECT trial)의 후속 치료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연구결과를 보면, 렌비마 후속 치료법으로 넥사바를 쓴 환자의 OS 중앙값은 21개월로 넥사바 이후 후속 항암요법을 받은 환자의 OS 중앙값 17개월보다 더 길게 나타났다. 또 렌비마에 반응을 보인 환자 중 후속 항암요법을 투여 받은 환자의 대부분이 넥사바를 후속으로 투여(43명 중 35명) 받았는데, 이들의 평균 OS 중앙값은 26개월(95%CI 18.2-34.6)이나 됐다.

NCCN 가이드라인 올해 개정판에는 렌비마 투여 이후 2차 치료로 넥사바를 권고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김승업 교수도 언급했지만 호주 PBAC는 NCCN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2차 치료제 유무가 1차 치료제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임상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아래 2차 TKI 약제 스티바가를 선제적으로 쓸 수 있도록 인정했다. 구체적으로는 '1차 TKI 약제(넥사바, 렌비마 포함) 투여 후 진행된 간세포성암 치료'로 급여기준을 설정했다.

국내에서도 렌비마 이후 넥사바 요법이나 스티바가 요법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긴 했지만 김승업 교수와 유창훈 교수 간 시각차처럼 합의가 쉽지 않아 일단 수용되지 않았다. 결국 유창훈 교수와 같은 입장을 가진 전문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안타까운 건 환자들이다. 간세포암은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서 급여기준에 부합하는 '수술 또는 국소치료가 불가능한 진행성' 환자의 평균 OS는 1년 남짓에 불과하다. 또 병인, 간 기능,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능력, 병기 등이 질병진행이나 치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임상의사의 판단아래 다양한 치료적 접근이 적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호주 PBAC의 판단처럼 환자입장에서는 '2차 치료제 유무가 1차 치료제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비상구가 없는 건 아니다. 렌비마를 쓰다가 실패한 환자에게 넥사바를 환자 전액본인부담(100/100)으로 투여 가능하고, 넥사바에 실패하면 스티바가나 카보메틱스로 넘어갈 수 있다. 급여-100/100(사실상 비급여)-급여로 환자가 비용부담을 떠안고 가능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 때 넥사바에 빨리 실패해야 지, 반응이 좋아서 계속 쓰게되면 그 시간만큼 비용부담이 커져서 경제적 고통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건 아이러니다.

적어도 수족증후군이나 종양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만이라도 렌비마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외사례 등을 인용한 전향적인 검토든, 100/100 사용에 대한 등록평가와 신속한 조치든 고민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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