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재단계 적용 부터 사후평가 무용론까지, 연구용역은 진행
제약업계는 '사후평가=약가인하·퇴출' 우려 목소리 전달

[종합] 심사평가원 의약품 가치평가연구 중간 보고

"항암제 가치평가도구가 사후평가에 적용된다면 결과적으로 약가 인하와 퇴출로 가게 될 것이다."

김준수 한국애브비 마켓액세스 상무는 23일 오후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열린 '제외국 항암제 가치평가도구 분석 및 한국에서의 적용' 공청회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대한항암요법연구회에 지난 6월 발주한 연구용역에 대한 제약업계의 우려다. 김 상무는 "도구 적용 시점을 건강보험 급여 등재로 할지 재평가로 할지 현재 의견이 갈리고 있다"며 "이를 정교하게 논의하는 워킹그룹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급여 등재 얘기가 나와서 당황스럽다. 이 도구는 사후관리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이 부분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도구로 인해 퇴출 경로가 발생할 경우 패스트트랙이 맞물려야만 형평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청중 발언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은 이미 국내에서 가동되고 있고, 도입 시기도 타 국가 대비 늦지 않다. 또 가치평가도구 개발 첫 단계에서 패스트트랙을 논의하는 건 성급하다"고 반박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23일 오후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열린 '제외국 항암제 가치평가 도구 분석 및 한국에서의 적용' 공청회에서 '의약품 가치평가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경과를 발표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23일 오후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열린 '제외국 항암제 가치평가 도구 분석 및 한국에서의 적용' 공청회에서 '의약품 가치평가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경과를 발표했다

"필요성은 공감, 어디에 쓸 건지 명확히 해달라"

이날 공청회에서는 '의약품 가치평가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의 중간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는 현존하는 의약품 가치평가도구 중 ESMO(유럽종양학회)의 MCBS(Magnitude of Clinical Benefit Scale)와 ASCO(미국임상종양학회)의 VF(Value Framwork)의 개정 전후와 장단점을 비교분석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강진형 대한항암요법연구회장
강진형 대한항암요법연구회장

강진형 대한항암요법연구회장(연구책임자)은 이번 연구 배경에 대해 "고가 신약항암제의 건강보험급여 진입으로 재정 부담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등재 이후 항암제 효능에 대한 재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항암제 등재 이후 재평가를 통한 후향적 관리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에 기등재된 고가항암제의 임상적 유용성·가치를 평가하는 표준화된 도구를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임상의·이해당사자 인식도 조사에서는 한국형 항암제 가치평가도구의 필요성에 모두 동의했으며,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나 사후평가 기준으로 활용되는 것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대다수가 ESMO나 ASCO 어느 하나만을 참고하는 게 아닌 모두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ESMO와 ASCO 비교 연구에서는 임상적 유익성(clinical benefit)과 독성(Toxicity), 삶의 질(Quality of Life) 적용에 대한 차이가 나타났다. ESMO는 HR(위험비)과 'Lower Limit of the Confidence Interva'l(신뢰구간의 하한)에 근거해 절대적·상대적 편익을 모두 고려해 평가하는 반면, ASCO는 HR의 'Point Estimate'(점 추정치)를 이용해 상대적 편익만 평가한다.

독성의 경우 ESMO는 주요 부작용만 적용하므로 낮은 등급의 부작용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ASCO는 모든 부작용을 포함하는 탓에 복잡성이 증가한다. 삶의 질 적용은 ESMO는 업·다운 등급 모두 반영 가능하지만, ASCO는 업 등급 반영만 가능하다. 

한편 AHP(분석적 계층화 방법) 조사에서 제약사 그룹은 "삶의 질과 같은 부분이 반영돼 현실을 더 볼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이나, 활용에 대한 부분이 명료하지 않아 우려가 있다"며 "완벽히 완성되지 않은 도구가 사후평가에 활용된다면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사 그룹은 "ASCO와 ESMO에서 만든 것을 두고, 별도의 한국형 도구를 새로 만드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고, 환자단체는 "다발성골수종 약제에 대한 적용이 적절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가치평가 도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했다. 

"빨리 도입해야" vs "아직 적절치 않아"

김준수 한국애브비 상무(왼쪽)와 이대호 울산의대 종양내과 교수
김준수 한국애브비 상무(오른쪽)와 이대호 울산의대 종양내과 교수

패널토의에서는 학계와 산업계 의견이 충돌했다. 학계는 항암제 가치평가도구를 빠르게 도입해 건강보험 급여 등재에 사용해야 한다고 했고, 산업계는 활용도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고 했다. 

또 학계는 도구가 아직 미성숙한 상태여도 도입해야 하며, 사후평가에 적용하는 건 사실상 쓸모없는 일이라고 했다. 반면 산업계는 사후평가에 적용될 경우 결과적으로 약가 인하와 퇴출로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업계 대표로 토론에 참여한 김준수 한국애브비 상무는 "이 도구로 산출된 값을 약가에 반영하거나 급여에 변화를 주기는 아직 이르다"며 "이전에 MCDA(다기준 의사결정 분석)라는 평가도구를 신약 가치평가에 도입하자고 제안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시기상조라는 결론이 났다. ASCO·ESMO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연구 발표자인 배승진 이화여대 약대 교수는 "MCDA는 당시 문제·한계가 많았다"며 "(이번 도구와는) 별개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대호 울산의대 종양내과 교수는 "가치평가도구는 빨리 도입하는 게 좋다"며 "이 도구는 아직 불확실하고 불분명하지만, 건강보험 급여 등재 시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심평원·건보공단에서 급여 결정 시 지침이 되는 기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김열홍 고대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어디에 쓸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가도구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박영미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보조도구로서 가치평가도구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돼 왔었다"며 "최근 도구 활용을 놓고 사후평가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도구 적용 시점은 연구 결과가 나온 뒤 언급하겠다"고 했다.

황경제 건보공단 약가사후관리부장은 "가치도구개발의 필요성은 공단에서도 공감한다. 가장 중요한건 가치평가도구의 활용이다. 한국형 도구가 개발된다면, 이를 급여 등재 또는 사후관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아울러 항암제뿐 아니라 경증 치료제나 진료상 필수의약품까지 논의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아마도 구체적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현재 주요 국가에서도 이 부분이 논의되고 있으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외국의 논의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논의를 시작하게 된 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어느 영역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는 세부적으로 좀 더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사후평가는 불필요…미성숙해도 도입해야"

이대호 울산의대 종양내과 교수는 "가치평가도구 개발 목적은 항암제 약가가 너무 높은 데 비해 신약 접근성이 낮다는 데 있다. 또 최근 신약의 경우 1질환·1효과가 아닌 다양한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는데, 여러 치료법 중 하나를 선택할 때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원래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는데, 의약품은 시장 결정이 불가능하다. 나는 가치평가도구를 통해 시장 결정 가격이 어느 정도는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미성숙해도 반드시 빨리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준수 한국애브비 상무는 "정책을 도입할 때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위험성을 보고, 시스템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하는데, 급진적으로 도입한다는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제약사 입장에서도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 도구가 결국 항암제 사후평가에 사용되면 결과적으로 약가 인하와 퇴출로 가게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신속등재·조건부 급여 약제의 경우 사후평가 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이대호 교수는 "이 도구를 사후평가에 적용하는 건 사실상 쓸모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급여 결정 전에 돈을 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갖기 위해 가치평가도구를 개발하고 있는데, 건강보험 급여가 이뤄진 시점은 이미 돈을 낸 이후다. 이 때는 쓸 필요도 없고, 쓸 이유도 없다"며 "김준수 상무가 걱정하는 사후평가는 이 도구가 아닌 다른 것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박영미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우리도 연구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완벽한 도구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질환·약제별 특성을 모두 고려한 평가도구 개발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며 "이 도구는 의사결정 보조도구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우선 도입하고 적용범위를 넓히거나 지속적으로 도구를 보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어느 단계에 이걸 적용할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왜 항암제만 하냐"…"의사 생각이 가장 가치있어"

패널토의 이후 청중 질의가 이어졌다. 동아쏘시오홀딩스 소속 제약업계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건 환자다.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고 치료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냐는 것이다. 거기서 가장 책임감을 가지고 치료를 결정하는 건 의사다. 의사의 결정이 제일 가치있고 객관적이며 공정하다"며 "환자를 진료하고 책임지는 의사들이 만들어낸 기준을 우리 모두가 따라가는 게 가장 공평하다"고 했다.

그는 "약이 처음 출시되고 이후 새로운 약들이 나오면 처음의 약은 퇴출되는 게 맞다. 그걸 계속 급여 목록에 두는 건 불공평하다. 10년 전 200만원에 구입한 컴퓨터는 박물관에 가야 한다"며 "약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처방된다. 필요없으면 처방되지 않는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항암제만큼은 의사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대호 울산의대 종양내과 교수는 "의사들의 결정이 가장 옳다는 주장은 일부만 맞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저는 폐암 환자를 4개월 더 살리면 좋은 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개월을 더 살리려고 약값을 2억~3억원 더 쓴다고 하면 어떨까. 누구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개량화된 수치가 있어야 모두를 설득할 수 있다. 또 급여를 안 하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료가 지금은 없다. 이런 점에서 이 가치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영미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
박영미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소속 관계자는 "다른 분야에서도 고가약이 있는데 왜 하필 항암제만 별도로 다뤄져야 하느냐. 다른 약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후평가에 RWE(실제임상근거) 방법론이 이미 있는데도 굳이 도구를 개발하는 이유에 대해 질의했다. 

이대호 교수는 "왜 암이냐면 이유는 세 가지다. 환자가 제일 많은데, 약가가 10년 사이 100배까지 치솟았다. 두 번째로, 다른 질환과 달리 환자가 기다릴 수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약이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암환자에게 2~3년만 기다리라고 할 수 없다. 세 번째로 다른 약제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약이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급여를 조속히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박영미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외국에서 개발된 가치평가도구는 항암제에 국한돼 있다. 우리 욕심으로는 희귀·난치성 질환까지 포함한 가치평가도구가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무에서 유로 단기간에 창조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번 연구는 외국 도구를 통해 한국형 도구를 만들어보고, 그 후에 일부 적용하면서 제도를 보완한다는 측면"이라며 "사후평가는 대개 RWE 방법론으로 귀결되는데, 모든 사후평가가 RWE로 진행되는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김준수 한국애브비 상무는 "급여 등재 시 쓸 것인지, 본인부담율을 달리할 때 쓸 것인지, 재평가 때 쓸 것인지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이 부분은 논의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딱 해버리겠다고 말하면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논의를 위해 워킹그룹이 있어야 할 거 같다"고 제안했다.

"퇴출 경로가 생기면 패스트트랙 같이 맞물려야"

김열홍 고대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도구 적용 시점을 건강보험 급여 등재로 하는 것에 반대했다. 데이터의 한계성 때문이라고 했다. 곽명섭 보건복지부 과장도 "등재 얘기가 계속 나와서 당황스럽다. 분명한 건 사후관리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 부분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소속 관계자는 청중 질의에서 "공청회가 끝나고 나면 시범사업 단계로 넘어갈 거 같은데, 제약업계는 시범사업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다. 어느 순간 본 사업이 돼 의견수렴 없이 넘어갈 것이다. 사후평가에 적용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패스트트랙을 들여온다는 가정에서 존재한다. 환자 접근성을 높이면서 사후평가를 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논의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논의 첫 단계에서 패스트트랙을 논의하는 건 성급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평가시스템에는 이미 패스트트랙이 존재한다"고 일축했다. 박영미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도 "패스트트랙 자체가 없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곽 과장은 이어 "대개 약제 도입 시기를 말할 때 미국 얘기를 많이 하는데, 미국은 사보험 시스템이다. 미국에서는 아주 비싼 사보험의 경우 신약·신의료기술이 나오면 바로 보험을 적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국민 보험 시스템이다. 동일선상에서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 우리나라 단일보험 시스템의 장점은 말하지 않으면서 미국 사례만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곽 과장은 또 "우리나라 약제 도입은 호주나 캐나다와 비교해 늦지 않는다. 또 모든 키는 제약사가 쥐고 있다. 신청주의에 의하므로 제약사가 어느 시기에 약을 출시할지는 제약사 결정"이라며 "우리나라의 전 국민 단일보험의 장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준수 한국애브비 상무는 "우리나라에서 신약이 들어오는 건 쉽지 않다. 경제성평가 면제 트랙은 좀 더 문호를 넓혀달라. 이 도구는 이런 점을 검증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대호 울산의대 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5년간 미국·유럽에서 의료비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슈가 바로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는 암종별로 다양한 효과를 보인다. 그런데 객관적 평가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 시스템에 잘못 들어가면 약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모든 환자가 면역항암제 약값을 내야 한다. 이건 평등하지만 공정하지 않다. 이 점에서 가치평가도구는 가능한한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연구책임자이자 좌장인 강진형 대한항암요법연구회장은 "항암제에 대한 가치평가도구의 필요성은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제 용역연구가 첫발을 내딛었다. 항암제에 우선 적용해 완성도를 높이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며 "어렵게 만들어진 가치평가도구를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또 다른 후속연구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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