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가해자 없는 NDMA 사태에 구상권 청구라니...

제약업계가 정부를 상대로 또 한 번의 단체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 소동(?)은 고혈압치료제 발사르탄에서 검출됐다는 발암유발물질 NDMA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발사르탄 복용 환자를 대상으로 고혈압약을 재처방하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이 선지급한 진찰료·조제료 등 21억을 69개 제약회사에 구상금으로 청구했다.

제약업계는 김앤장, 로고스, 태평양, 화우 등 국내 최대 로펌을 불러 구상금을 내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공단이 제기할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비한 프리젠테이션을 들었다고 한다. PT를 들었다는 건 구상금을 내지 않겠다는 의사결정이다. NDMA라는 불순물로 발생한 건강보험 추가지출에 대한 보상을 제약업계가 거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FDA, 유럽EMA 한국Mfds도 몰랐던 “비의도적” 불순물인 NDMA를 두고 “쓴 돈을 다 부담하라”고 일방청구하는 행위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NDMA 총량과 유해성 여부는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다.

업계의 고민을 더 부추기는 것은 뒤이어 터진 라니티딘 때문이다. 라니티딘에도 NDMA가 있다는 사실을 세계 두 번째(?)로 안 우리 정부가 제품에 대한 회수 조치는 세계에서 가장 발빠르게 결론 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똑같은 프로세스가 라니티딘을 비롯한 비의도적 불순물에 연이어 적용될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NDMA가 검출된 라니티딘 원료의약품. 식약처는 이 원료의약품들을 언론브리핑을 통해 공개했다.
NDMA가 검출된 라니티딘 원료의약품. 식약처는 이 원료의약품들을 언론브리핑을 통해 공개했다.

국고인 건강보험 손실을 메우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제스처로 보이는 구상권 청구와 업계의 대응논리는 유사하다. 소송 PT를 들은 업계 관계자는 히트뉴스에 “발사르탄 사태는 라니티딘과도 연관지을 수 있는 사안이다.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응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나 보험공단이 한 번 더 생각했다면 가해자는 뚜렷이 없고 피해자만 있는 발사르탄 사태로 로펌에 시장을 열어주는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관계자 조차 NDMA 사태의 원인을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설명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위험 분담체계 구축’이란 명목으로 구제기금이나 책임보험 가입 등을 논의하겠다는 정부의 국회 업무보고는 업계의 정서와 동떨어져도 한 참이나 동떨어진 것이다. 피해자라고 확정하기는 애매할 수 있지만 가해자는 분명히 아닌 업계를 상대로 한 쪽에선 구상권을 청구하고 한 쪽에선 위험을 나눠지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행정력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는 엇박자이다.

현재까지 확정된 방향성은 없지만 식약처와 복지부는 제약바이오협회, 의사협회, 병원협회, 약사회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이 문제를 논의해볼 생각인 모양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제야 확인된 불순물 사태를 정부가 이해당사자들과 협의해볼 요량이라면 구상권 청구절차를 잠정 중단하는 결정을 먼저 내리는 것이 현명하다. 기금이든 보험이든 마중물 역할은 결국 업계가 해야 할텐데, 행정력을 앞세워 돌파할 생각이 아니라면 제대로 협의하기를 주문한다.

그렇다고 국고 21억의 손실을 감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이미 지출한 21억도 협의 테이블에 올려 논의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자발적 동참 속에 합의를 이끌어내라는 뜻이다. 제2의 발사르탄은 라니티딘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정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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