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치열한 고민 미흡한 식약처 의약품 관리

죽음을 앞에 둔 돼지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축산 농가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방역망을 뚫고 계속 전염되고 있는 탓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유사 상황이 제약산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부터 문제로 떠오른 NDMA(발암의심 물질) 검출 의약품을, 허가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돼지 살처분'처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를 살려내기 위해 그들을 죽일 수 밖에 없는 '눈물의 살처분'과 달리 NDMA 검출의약품의 판매중지와 회수조치는 '국민 안전이라는 축문(祝文)'과 함께 '여론의 제단'에 의약품을 올려 식약처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정도로 과도해 보인다.

학습효과 덕분일까. 작년 발사르탄 성분의 고혈압 약에서 NDMA 검출로 여론의 질타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식약처는 위장약 성분 라니티딘 원료물질에서 NDMA 검출 문제는 '작년 매뉴얼대'로 일사분란하게 판매중단과 함께 유통 완제의약품을 회수하도록 조치했다. 복지부도 건강보험 급여 중단이라는 후속조치를 내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건강보험공단은 구상권 명목으로 제약회사 앞으로 고지서를 보낼 것이다. 작년 발사르탄 문제와 다르게 꽤 빠르고 과단성있는 이 대처에 도저히 박수를 칠 수 없다. 여론에만 봉사하는 식약처의 태도에서 그들의 정체성, 과학적 존재감도 실종됐다.  

라니티딘 잠정 회수 및 판매중지 조치를 발표하는 식약처 김영옥 의약품안전국장. (사진=식약처 제공)
라니티딘 잠정 회수 및 판매중지 조치를 발표하는 식약처 김영옥 의약품안전국장. (사진=식약처 제공)

식약처의 이번 조치는 FDA의 안전성 서한에 기반을 둔 것이다. FDA는 9월13일 안전성정보를 통해 ▷잔탁 등 몇몇 라니티딘 제제 샘플에서 NDMA가 발견됐다 ▷이 물질은 실험실 연구에서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 ▷이 물질은 고기 유제품 채소 물 등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NDMA와 ARB계 고혈압 약물에서 불순물을 조사중이라고 밝힌 FDA는 라니티딘 복용자들의 중단 조치 대신 계속 복용을 원치 않으면 의사들에게 다른 치료옵션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FDA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우리 식약처는 왜, 이 처럼 NDMA의 실체를 설명하면서 당당한 태도를 취할 수 없는 것일까.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소위 같은 계열의 티딘류를 비롯해 NDMA가 어느 의약품에서 돌출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식약처 행보를 보면 NDMA가 검출되는 의약품은  발사르탄과 라니티딘처럼 그때마다 전량 살처분될 것이 뻔하다. 요약하면 'NDMA 검출 의약품 발견→식약처의 판매중단과 회수 →복지부의 급여정지→제약사를 상대로한 건강보험공단의 구상권 청구' 같은 한바탕 소동에서 문제 해결의 첫단추인 식약처의 역할은 대체 무엇인지 근원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은 주체적인데, 내용적으로는 외국 안전성정보의 과도한 실천이 전부로 보인다는 말이다.

NDMA가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관해 과학자 집단으로서 확실한 입장이 없는 식약처가 외국 안전성 정보를 취득해 그들보다 더 빠르게, 더 강경하게 조치를 취하는 게 식약처의 역할이라면 참담한 노릇이다. 평생 복용하는 고혈압 약물과 다른 라니티딘에 대해 유보적 조치를 취하면서 전문가 집단과 같이 처방기간 제한 등의 논의를 선도해 보려는 허가당국의 주체적 태도는 정녕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거버넌스의 시대, 제약산업과 같이 NDMA 검출방법과 극저감화 방안을 논의할 수는 없었을까. 여론에 포위되지 않고, 앞서 여론을 주도하는 식약처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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