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리보세라닙, PFS 충족했으나 OS 미충족
업계 전문가 “NDA 제출은 가능, 임상 성공 표현은 ‘글쎄’

“에이치엘비가 임상 ‘성공’이라고 표현하면 안 된다. 다만 신약시판허가(NDA)를 제출할 수는 있다.”

글로벌 제약사에서 다수의 임상 경험을 가진 전문가에게 29일 배포된 보도자료를 보여주자 들은 답변입니다. 에이치엘비가 배포한 보도자료 <HLB, “글로벌 임상 3상 성공” 발표>는 경제지를 비롯해 각종 매체에 29일 보도됐습니다. 에이치엘비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무진행생존기간(PFS)는 투약군 2.83개월로, 위약군 1.77개월보다 유의하게 길었습니다. 객관적반응률(ORR) 역시 투약군 6.9%로 나타나, 위약군 0%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1차 유효성 평가지표(primary endpoint)인 전체생존기간(OS)은 투약군이 5.78개월로, 위약군 5.13개월과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 했습니다.

에이치엘비의 자회사 엘리바가 리보세라닙 글로벌 임상시험 3상 결과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고 있는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29일 공식 발표했다.

정리해 보자면, 이번 리보세라닙 임상 3상 결과는 1차 유효성 평가(OS)는 달성하지 못 했고, 2차 유효성 평가(PFS, ORR 등)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듭니다. 과연 1차 유효성평가지표는 달성하지 못 하고, 2차유효성평가(secondary endpoint)를 달성한 임상시험을 ‘성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가지고 글로벌 제약사 임상시험을 총괄한 업계 전문가와 페이스북에서 업계 분들의 의견을 들여다 봤습니다.

우선 다른 항암제도 OS는 달성하지 못 하고 PFS를 달성한 뒤, 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사실 항암제에서 OS 개선 효과를 입증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PFS와 ORR 등을 기준으로 의약품 허가를 내 준 사례도 있습니다. 실제로 베링거인겔하임의 폐암 치료제 ‘지오트립’은 OS는 개선하지 못 하고, PFS만 개선한 임상결과를 가지고 허가를 받았습니다.

또 에이치엘비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4차 말기 위암환자에서 리보세라닙의 전체 생존율 데이터를 매우 좋다”고 표현했습니다. 미충족 의료수요(unmet needs)를 충족한다는 측면에서, 4차 위암 환자를 위해 리보세라닙의 FDA 허가 역시 긍정적으로 전망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데이터가 유의미하다는 가정 하에서 말입니다.

발표 직후 에이치엘비가 배포한 보도자료. 임상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리보세라닙의 임상은 ‘성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에서 다수의 임상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이 임상은 기본적으로 ‘실패’한 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전문가의 의견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임상이 ‘성공’했다고 표현하려면 1차 유효 평가 변수가 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2차 유효평가 변수가 좋은 결과를 내도 1차 유효 평가 변수를 충족하지 못 하면, 그 임상은 실패한 임상입니다. 다만, 2차 유효평가변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낸 경우 FDA(미국식품의약국)에 NDA는 제출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제약사는 이런 경우(1차 유효평가지표 미달성, 2차 유효평가지표 달성) 임상 ‘성공’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보통 ▲추가적인 임상(study)이 필요 ▲하위그룹 분석(sub-group analaysis)이 필요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게 통상적인 관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리보세라닙은 FDA로부터 순조롭게 허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일단 최악의 경우 FDA에서 1차 유효성평가지표(OS) 미달성을 이유로 서류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배제하고, (회사 측이 주장한 대로) 2차 평가변수가 유의미한 통계 자료라면 FDA가 회사 측이 제출한 NDA 신청을 승인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긍정적인 전망을 해 보자면, ▲대체 치료제가 없는 경우 ▲2차 유효평가 지표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면, 항암 임상의로 구성된 자문위원단(Advisory) 그룹의 판단을 근거로 승인 절차가 진행됩니다. 물론 FDA 허가는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회사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성공’이라는 표현 외에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다른 조건과 시기에 이뤄진 임상시험을 마치 무작위 직접 비교임상(Head to Head)처럼 표현한 겁니다. 사이람자, 옵디보, 론서프와 비교한 데이터를 마치 직접 비교임상을 한 듯 명시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업계 전문가는 “무작위 직접 비교임상도 아닌데, 마치 라보세라닙이 다른 약제(사이람자, 옵디보, 론서프)와 비교해 우수하다고 결론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일반적으로 최근에 진행된 임상시험에 데이터는 더 우수한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네 가지 약물을 마치 무작위비교임상처럼 비교한 보도자료에 명시된 부분. 

이 전문가는 FDA에 NDA를 신청할 때는 보다 명확한 표현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이번 임상을 바탕으로 FDA에 NDA를 제출한다면) 에이치엘비는 1차유효평가변수는 충족하지 못 했지만, 2차유효평가변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야 할 것”이라며 “임상 데이터 리뷰 과정을 거쳐 어떤 환자들이 치료제의 이익(benefit)을 받을 수 있는지 더 발굴해 보겠다라고 FDA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이치엘비 소식으로 업계는 다소 떠들썩 했습니다. 이번 소식을 접하며 업계 한 줄기 희망도 봤습니다. 이번 임상 발표가 단순히 주가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발표를 두고 바이오벤처 업계는 토론의 장을 형성했습니다. 바이오벤처 연구결과를 놓고, 생태계 안에서 갑론을박이 이뤄지는 현상을 보자니,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미래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실패로 무너질 곳이 아니라는 희망도 함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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