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던 큰 형님" "제약 현대화 당찬 리더"
"밥 잘 사주던 큰 형님" "제약 현대화 당찬 리더"
  • 조광연
  • 승인 2019.09.09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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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탄생 100주년 아침에 돌아본 高村 李鍾根 회장
9월9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 종근당 창업자 고촌 이종근 회장.

종근당에 대한 청년들의 믿음과 기대는 '기성세대들에게 각인된 종근당의 긍정 이미지'를 그대로 흡수한 듯 보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의 주최로 지난 3일 aT센터에서 열린 '2019 제약바이오산업 채용박람회' 종근당 부스에 청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광경을 보며 9월 9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창업자 고촌 이종근 회장이 한층 궁금해 졌다. 고촌(高村), 그는 어떤 인물인가. 이렇게 자문하고 보니 몇해 전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들려줬던 일화가 기억난다. "젊은 기업인들에게 자주 밥을 사주시고, '같이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해 주신, 큰 형님 같은 분이셨다." 이 한마디는 그가 얼마나 산업과 젊은 인재를 아낀 기업가였는지 보여준다. "제약산업 근대화의 기틀을 세운 당찬 리더, 장학사업으로 상징되는 사회공헌가"라던 강창덕 전 약사공론 편집국장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고촌은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던 1919년, 충남 당진에서 3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대부분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채 배울 기회없이 그는 17세에 철공소 견습공으로 사회 첫발을 디뎠다. 늘 기회를 모색했던 고촌은 39년 동춘당약품을 연락처로 정해 의약품 외판 사업을 시작했고, 이를 발판삼아 41년 23세에 궁본약방(宮本藥房)’을 설립했다. 꿈은 2년 만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일제의 기업정비령으로 강제폐업 당했기 때문이다. 고촌은 해방과 함께 46년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가게를 얻어 자신의 이름을 따 종근당 약방을 열었다. 제약업 진출을 꿈꾸며 대광화학연구소까지 설립했으나 이번에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무산됐다. 주저 앉지 않았다. 부산 피난시절 '염산에페드린정' '산토닌정' 등 의약품을 생산하며 재기했다. 1956년 '종근당제약사'로 이름을 바꾸고 해외 유수 제약사와 협력해 한국 제약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했다.
   
국내 최초 원료 합성공장 건설과 세계화

1993년 2월 7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촌의 경영철학은 늘 종근당 사세 확장보다 빠르게 업그레이드 됐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약이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항상 있게 하는 사명을 지녀야 한다." 고촌은 이를 '약업보국의 사명 완수'로 표현했다. 1965년 동양 최대 규모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을 준공한 것도 이같은 철학 위에서 이뤄졌다. 1974년에는 한국 최대 의약품 원료 발효공장을 세웠다. 발효공장 생산능력은 11개 발효조가 모두 가동될 때 항생제 원료 17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국제적 수준이었다. 1980년대 고촌은 선진 제약기술과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자 외국 제약기업들과 합작했다. 1980년 한국롱프랑제약, 1983년 한국로슈, 1986년 한국그락소 등을 설립해 국내 제약산업이 국제적인 인프라를 갖추는데 기여했다. 고촌은 남보다 앞선 생각을 했고, 저돌적으로 실행했다. 

국내 처음 원료합성공장 미국 FDA 승인 받아

2019년에도 높은 미국 FDA 문턱을 종근당은 1968년 넘었다. 이 무렵 FDA 승인을 받은 제약회사는 미국 외 100개 정도였고, FDA 승인을 얻으려면 미국의 상위 제약회사와 견줄만한 기술수준을 갖춰야한다는 묵시적 조건이 태산처럼 높았던 시절이었다. 종근당은 FDA 승인을 계기로 항생제를 수출했고, 국가적으로 900만 달러 규모의 수입대체 효과를 만들어 냈다. 탄력을 받은 종근당은 국내 전 산업계 매출 규모에서 78위가 돼 일류 회사의 반열에 올랐다. 고촌의 제약인생에서 가장 독보적인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되는 FDA 승인은, 한국산 항생제가 세계시장에 진출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한편 제약산업 전반에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었다.

제약 최초 중앙연구소 설립...신약개발 전기 마련

"그동안 터득한 기술을 기초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량도 하고 개발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판단함과 동시에 철석 같은 신념으로 이를 마음속에 굳혔다. 이제 우리 젊은 약학도와 화학도들을 뒷받침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 반드시 신념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촌 어록)."

고촌은 신약개발이 국내 제약산업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국제적 제약사로 도약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1972년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이것도 업계 최초였다. 종근당 중앙연구소는 첨단 제약기술의 개발과 신약창출을 위해 "당신이 주무시는 한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강과 생명의 미래학을 추구하면서...."라는 유명한 종근당 기업이미지 광고와 같이 연구에 매진했다. 1995년 종합연구소, 2011년 효종연구소로 개편돼 2003년 항암제 신약 '캄토벨'과 2013년 당뇨 신약 '듀비에'로 결실을 맺었다. "李鍾根이가 죽어도 기업은 남는다"는 생전 그의 말처럼 종근당은 2000년대 초반 의약분업 당시 잠시 주춤했던 시절을 극복하고, 연간 매출 1조 이상 기업으로 명성을 되찾았다. 1970년대 TV 기업 광고를 통해 나라안 모든 산업계를 깨웠던 '종근당 종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실천한 고촌

"나는 돈을 벌어 내가 잘 되고, 내 집안이 잘 되고, 내 이웃이 잘 되고, 내 나라가 잘 되게 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금 나는 잘 된 셈이고, 또 내 집안도 잘 된 셈이니, 내 이웃이 잘 되어야 할 차례라고 생각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인 종근당 종업원을 위하여 마음 쓰기로 작정했다(고촌 어록)."

고촌은 1973년 사재를 출연해 고촌재단을 설립했다. 지금도 재단은 장학금을 지급하고 대학생들에게 무상 기숙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학술연구 지원, 해외동포 국내외 연수 등 다양한 장학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의약품 생산을 통해 결핵퇴치에 헌신한 고촌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5년 '고촌상(Kochon Prize)'이 제정됐다. 고촌재단과 UN 산하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Stop TB Partnership)이 세계적으로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정한 한국 제약사상 최초의 국제적 상이었다.

의약품 수출로 국가경제에 기여한 기업가
 
1961년 외환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제약원료를 수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고촌은 제약원료 국산화를 결심했다. 눈을 세계로 돌려 53차례에 걸쳐 해외를 순방했다. 1969년 제약업계 최초로 일본에 항생제 '클로람페니콜' 62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당시 의약품 총 수출액이 110만달러였으니 종근당 수출액은 56%에 달했다. 1970년엔 미국 제약업계 랭킹 4위였던 워너렘버트에 항생제를 수출했다. 고촌은 한국 제약산업에 공헌한 업적으로 1979년 한국경영자상을, 장학사업에 헌신한 공로로 1986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했다. 고촌은 1993년 2월7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소천했지만, 2010년 한국조폐공사가 주관한 '한국의 인물'에 선정되는 등 그가 대한민국 제약산업에 남긴 족적은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있다. 

종근당고촌재단은

종근당고촌재단은 1973년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을 목표로 설립된 장학재단으로 장학금, 무상기숙사 지원, 학술연구, 교육복지, 해외 장학사업 등 지난 46년간 8086명에게 436억 원을 지원했다.

올해 선발된 장학생 321명에 대해 국내외 장학생 107명(국내 56명·해외 51명)에게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급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70명을 생활장학생으로 선발해 대학 졸업 때까지 매달 50만원 씩 생활비를 지원한다. 장학금 규모는 총 12억원에 달한다.

재단은 지방출신 대학생 144명(1호관 30명, 2호관 30명, 3호관 84명)에게 무상기숙사인 종근당고촌학사를 제공한다. 지방출신 대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민간 장학재단 최초의 주거지원시설이다. 현재 서울 마포구 동교동(1호관), 동대문구 휘경동(2호관), 광진구 중곡동(3호관)에 3개관을 운영중이다. 종근당고촌학사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은 공과금을 포함한 일체의 비용 없이 무상으로 주거혜택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치안에 취약한 여대생을 위해 전용 기숙사가 필요하다는 종근당 이장한 회장의 제안에 따라 종근당고촌학사 4호관을 추가 설립하기로 했다. 부전자전인데, 4호관은 여대생 6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마련할 계획이며 2020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고촌 1987년 학교법인 고촌학원을 설립하고 대동세무고등학교를 통해 젊은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후진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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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덕 2019-09-09 12:36:02
전체적으로 좋은데.
다소 딱딱한 표현.
이런식 표현은 어떨지
바이오시대 국제화 시대 고촌이 그립다~
왜 그가 그립고 필요한가. 후진들의 마인드 그를 닮아갈순 없나 온고지신 풍기며 살짝 감상적 접근
향수 자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