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위탁매매 지위의 도매상과 공모한 자금 횡령"

도매상을 통해 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제공됐다면 이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횡령’에 해당한다는 고등법원 판례가 나와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제약회사 지점장 A씨 등은 지역의 여러 병원에 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납품하면서 발생한 리베이트 제공 문제로 적발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A씨 등은 도매상은 약품 판매대금을 제약회사에 선지급하기 때문에 약품에 대한 권리의무는 모두 도매상에게 이전됐고 도매상이 병원에 판매하고 받은 약품대금은 도매상 소유라는 점에서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는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제약회사와 도매상간 거래약정서상 소유권 유보 및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조항이 있고 ▲도매상에는 판매처나 판매조건에 대한 결정권한이 없으며 ▲약가인하가 발생하면 제약회사가 도매상에 차액을 보전해주는 점 등을 들어 도매상의 법적 지위를 제약회사의 위탁매매인으로 보고 도매상이 병원으로부터 지급 받은 약품대금도 도매상 소유가 아니라 제약회사를 위하여 보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A씨 등은 제약회사의 재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도매상과 공모하여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업무상 횡령죄를 인정했다. 다만 회사의 영업을 위하여 자금을 횡령했고 개인적으로 취득하지는 않은 점 등을 감안하여 1심의 선고형량에 대해서는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업무상 횡령죄는 사회생활상 반복되는 업무 과정에서 위탁관계를 기반으로 보관하거나 점유한 타인의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2심 재판부들이 영업을 위하여 병원에 건네졌다 하더라도 리베이트는 회사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범죄행위에 가담한 개인의 책임범위를 엄격하게 규정했다. 특히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제약회사를 ‘피해회사’로 명시함으로써 리베이트를 법인격과 구분되는 개인의 범죄행위로 봤다.

제약관련 사건을 다루는 한 변호사는 “횡령이라면 회사의 공식적인 허락없이 자금을 사용했다는 것으로 영업사원 개개인의 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한 법적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라며 “약값상승, 의약품 오남용, 건강보험재정 악화 등을 초래하는 무거운 범죄로 리베이트 수수와 제공행위를 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재판부는 영업사원이 리베이트 관련업무에 관여하다 회사를 퇴직했다 하더라도 공모관계에 있는 다른 직원들의 범죄실행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 영향력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퇴사 이후 후임들에 의해 제공된 리베이트 범행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하나의 죄(포괄일죄)가 성립되는 공범관계로 판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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