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총무이사
"있는 수단 다 털어 환자 버티게 하는게 현 치료 목표"

"치매 신약이 계속 실패하는 데 좌절하지 말고, 전문가들을 믿고 기다려달라."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총무이사는 빅데이터 임상 활용을 주제로 8월 31일 열린 '대한치매학회 심포지엄'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글로벌 제약사 주도로 진행된 BACE(베타 시크리타제) 억제제 개발이 지난해 연속 고배를 마셨고, 기대주였던 로슈 '크레네주맙'과 바이오젠·에자이 '아두카누맙'의 임상3상도 올초 중단됐다. 이 가운데 바이오젠·에자이가 공동 개발 중인 초기 알츠하이머 신약 'BAN2401' 임상3상은 올초 시작됐다. 국내외 제약업계는 다소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신약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최 이사는 "항암제의 경우 지난 20~30년 전과 비교하면 부작용은 감소하고 치료율은 굉장히 올라갔다. 최근 개발되는 치매 신약들은 기존 약과 비슷한 프로세스로 아주 혁신적인 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존 약을 계속 개선하고 실패를 거울삼아 조금씩 나아가다보면, 항암제처럼 의미있는 약제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대한치매학회의 빅데이터 연구 현황' 주제로 발제에 나선 최 이사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치매 연구의 모순·한계점을 지적하고 건보공단·심평원·한미약품 등과 협업(Co-Working)을 통한 돌파구를 제시했다. 특히 조기검진사업·치매국가책임제 등 매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치매정책의 결과를 검증할 필요성이 있는데 여기에 빅데이터 연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 총무이사는 한양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신경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한치매학회 총무이사와 대한신경과학회 고시 간사를 맡고 있다. 

히트뉴스는 최 이사를 만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국내·외 치매신약 개발 동향과 학회 차원에서 추진 중인 빅데이터 연구, 향후 연구·사업 방향 등에 대해 물었다.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총무이사(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총무이사(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학회의 빅데이터 연구 사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지난해 12월 정기이사회에서 빅데이터 연구 안건이 통과되면서 올해 2월 빅데이터 연구TFT를 구성했다. 원활한 빅데이터 연구를 위해서는 먼저 여러 기관과 협력(Co-Working)해야 한다. 올해 3월 빅데이터임상활용연구회와 치매연구 MOU(업무협약)를 체결해 여러 협력사업을 시작했고, 5월 한미약품과 신규 플랫폼 구축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번 MOU로 한미약품의 빅데이터 연구 툴인 '큐브'를 대한치매학회 연구자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큐브를 활용한 파일럿 스터디를 통해 연구자는 본 연구에 앞서 연구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과는 9월·10월에 각각 정식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기존에는 심평원·건보공단이 보유한 빅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각 기관의 기관생명윤리위원회를 통과한 후 해당 기관에 연구 내용을 신청해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이 과정은 대개 6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이들 기관과 MOU를 체결하면 데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개인정보보호법 등 빅데이터 연구에 대한 허들을 완화하는 취지에서 올해 6월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실과 빅데이터 연구의 정책적 제안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치매연구의 문제점은?

"정부에서는 2008년 1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을 시작으로 치매 관련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특히, 2017년 9월 기존 치매 정책을 확대한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하며 막대한 예산을 치매 정책에 투입했다. 그런데 이 같은 치매정책에 대한 의학적 결과 분석·성찰이 충분했는지는 의문이다. 즉,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를 조성했으나, 치매조기검진사업 등이 얼마나 의미있을지에 대한 신뢰성 있는 검증 자료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학회에서는 치매정책 검증을 빅데이터 연구의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또 치매 관련 질환이 매우 다양·복잡하며 증상마다 정의가 다 다르고 계속 변화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치매를 일으키는 질환은 알츠하이머병치매·혈관성치매·레비소체치매 등 비교적 흔한 퇴행성 질환뿐 아니라 파킨슨병을 비롯한 다양한 퇴행성 질환도 있다. 프리온 질환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 내분비질환 등 내과 질환, 약물 중독 등도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뇌의 퇴행성이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는 특성상 임상 현장에서 치료 효과 판정이나 진단의 정확성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아울러 치매 관련 질환은 수치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바이오마커 검사 이후에도 인지기능 저하·뇌 병변·여러 혈청 검사 결과와 교육수준·연령 등을 고려한 전문가의 종합 판단이 필요하다. 더 왜곡된 건 치매 약제의 보험 급여 문제다. 치매 약제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 현장과 괴리된 일부 신경심리검사 지표로 보험 급여 여부가 판정되고 있다. 지난 5월 식약처가 도네페질의 임상재평가 결과에 따라 혈관성 치매 적응증을 삭제하면서 임상에서는 도네페질·리바스티그민을 쓰기 위해 진단명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 치매 약제의 보험 급여 문제로 진단명의 신뢰도가 상당 부분 떨어지는데, 이 같은 점이 빅데이터 연구에서 큰 장애로 작용한다. 

논문을 위한 논문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정책 관련 연구나 치매 진단·치료와 관련한 많은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연구가 부족하다. 어떤 위험성을 얘기할 때는 그 다음 프로세스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치매 진단율이나 조기검진 문제가 나오면, 해당 데이터가 치매정책에 반영되게끔 해야 한다. 단순히 빅데이터 관련 논문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해당 연구를 통해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빅데이터 연구에서 어려운 점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난관을 뚫고 6개월만에 간신히 얻은 건보공단·심평원 데이터는 우리가 쉽게 접근 가능한 의학 용어로 상세하게 구성돼 있지 않다. 해당 수진자가 언제 진단을 받고 어떤 약을 썼는지를 의무기록처럼 보여주는 게 아닌, 엄청나게 큰 엑셀로 훅 날라온다. 연구자는 해당 자료에서 수진자 키(Key), 성별, 연령, 거주지, 소득분위, 질환 보유 여부, 생활 습관, 가족력, 상병코드, 내원·입원일, 의약품 처방 내역, 수술 내역, 사망일, 사인 코드 등 각각 조건을 정의해 검색해야만 의미 있는 자료를 추출할 수 있다. 사실상 빅데이터 접근은 쉽지 않은 작업이므로, 임상 빅데이터 자료를 연구한 경험이 있는 통계학자와 함께 진행해야 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건보공단 자료는 사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망코드가 있는데, 심평원 자료에는 사망코드가 없다. 즉, 심평원 데이터를 통해서는 해당 환자가 사망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만일 심평원 데이터로 열심히 연구한 뒤 사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면, 그간 고생한 게 통으로 없어지게 된다." 

대한치매학회가 진행 중인 빅데이터 연구를 소개해달라

"지난 8월1일부터 '퇴행성 질환과 암 발생률의 관계'와 '치매조기검진사업과 치매 발병률 관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퇴행성 질환과 암 발생률의 관계'는 사실 퇴행성 질환 연구자들에게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인데, 단순히 치매 질환과 암을 비교하는 게 아닌 희귀질환과 암을 비교해 연관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치매조기검진사업과 치매 발병률 관계'의 경우 너무나 당연하지만 간과하는 것들이 있다. 치매환자와 치료·관리 비용이 급속도로 증가하는데, 치매조기검진사업을 전국적으로 실시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 주제를 잡았다."

데이터 신뢰성이 연구 질을 좌우한다

"그래서 임상 전문가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질환에 대한 약간의 개념이 있는 통계학자와 함께 진행하면서 데이터에 대한 오류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데 대화가 잘 안 된다. 결국 빅데이터에 대한 개념이 있는 전문가가 많아져야 하며, 그런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빅데이터 연구가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바쁜 임상의들이 빅데이터가 좋다고 연구에 무작정 뛰어들 수 없는 노릇이므로, 학회에서는 회원들로 하여금 빅데이터 관심을 환기하고 연구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인력·MOU·시스템(툴) 등을 제공하려고 한다. 학회를 통해 빅데이터 연구를 진행하고 그 신뢰성도 높여보자는 의미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국내·외 치매 치료제 개발 진척 상황은? 

"하나의 병리 기전을 가지고 그걸 해결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다. 더군다나 신약 개발 초기 비용은 어마어마해서 국내 제약사가 감당하기 쉽지 않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일정 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약 개발 시 기존 혈압약이나 여러 뇌영양제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프로세스는 굉장히 길다. 빅데이터를 통해 기존 약들의 효과를 발견하게 되면 신약 개발 프로세스의 앞부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치매신약 개발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치매에 한정해서 얘기하자면, 이 분야의 신약 개발은 쉽지 않다. 항생제나 항암제같은 경우 암세포·감염원·세균·바이러스 등 치료제 타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치매는 질환이 발생되기 20~30년 전부터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증상이 발현된 경우 이미 상당히 손상돼 접근이 힘들다. 그런 한계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주 우수한 약제여도 실제 임상에서는 데이터가 안 나온다. 

그러다보니 최근 임상연구들은 똑같은 아밀로이드베타 억제제라도 초기 환자들을 건드릴 수 있는 프로세스로 전환하고 있다. 에자이의 아밀로이드베타 저해제 'BAN2401' 등이 기존약과 비슷한 프로세스로 가고있는 거다. 이들 약은 아주 희망적이거나 혁신적인 약이라고 할 수 없지만,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문제여서 계속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항암제의 경우 지난 20~30년 전과 비교하면 부작용이 상당히 감소하고 치료율이 올라갔다. 퇴행성 질환 약제들도 아밀로이드베타를 억제한다는 기전은 비슷하지만, 실패를 거울삼아서 계속 조금씩 개선하다보면 의미있는 약제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2~3년 뒤에는 30대여서 아직 증상이 발현되지 않지만 유전상 100% 치매가 되는 환자에게 치료를 일찍 시작해 그 결과를 보는 연구들이 발표될 것이다. 일단은 이들 연구에서 뭔가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양적으로는 기존 약을 계속 개선하고, 실패를 거울삼아서 가야 한다. 이것도 가야할 길이며 의미없는 게 아니다. 

그리고 결국 치매도 관리 가능한 분야가 될 것이다. 바이오마커가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아직 공상과학적인 수준이지만 치매도 향후에는 관리 영역으로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손상된 뇌를 회복시키거나 버티게 해주는 건 사실 쉽지 않은 부분이어서 미리 관리하는 영역으로 가야될 것 같다. 정리하자면, 신약이 계속 실패한다는 것에 너무 좌절하지 말고, 전문가들을 믿고 기다려달라."

치매 예방약으로 처방되는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글리아티린)의 효능효과가 매년 도마 위에 오른다

"치매에 대한 무기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의미있는 치료는 다 해봐야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과연 도네페질이나 리바스티그민은 굉장히 좋은 약일까? 항암제·항생제와 비교해보면 단순히 증상을 지연시켜줄 뿐인데 이들 약도 건강기능식품일까? 나는 신약 개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무기들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글리아티린을 비롯해 인지중재치료, 뇌영양제 등이 제한적이어도 효과가 있다고 판정된다면, 그건 치료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 있는 수단을 다 털어서 최대한 환자가 버티도록 하는 게 치매치료 목적이다. 그런 점에서 무작정 건기식으로 될 건 아니다. 이렇게 치매 진행을 3~5년 정도 늦추면, 치매관리비용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빅데이터 연구에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지적이 많다

"우리는 개인정보보호를 무조건 풀어달라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를 모은다면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빅데이터를 의학 연구에 쓸 수 있다. 이 관점에서는 블록체인 기술 도입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를 풀자'가 아닌,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해서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게 문제가 된다. 태도를 바꿔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학회 차원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에 더 신경을 쓰고 연구를 진행할 테니 의료정보에서 오픈 가능한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달라는 것이다." 

치매연구 발전 방향은?

"치매학회에서는 그동안 치매정책 자문, 치매 연구, 치매환자 복지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요구를 받았고, 이에 부응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치매연구도 단순히 학자적인 호기심이 아닌 사회적 요구에 맞춰서 진행하고자 했다. 빅데이터 연구 또한 학자 개개인의 기호가 아닌, 치매정책 검증을 위주로 치매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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