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약 "철저한 검토없는 급여기준 건보재정 1조원 낭비"
"재정 누수 방치·약제 관리 실패" 주장

약사단체가 보건복지부·심사평가원의 직무유기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치매 예방약으로 처방되는 '콜린알포세레이트'(글리아티린)의 잇따른 효용성 논란에도 합리적인 급여 기준을 설정하지 않아 건강보험 재정 1조원이 낭비됐다는 이유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는 27일 오전 11시 '근거 없는 뇌기능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에 1조 넘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관해온 건강보험심사평가원·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공익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동근 정책기획팀장(오른쪽)과 송해진 사무국장이 27일 오전 11시 감사원에 방문해 심평원·복지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공익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동근 정책기획팀장(오른쪽)과 송해진 사무국장이 27일 오전 11시 감사원에 방문해 심평원·복지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공익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의약품 아닌 '건기식' 분류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Italifamaco)가 개발한 뇌기능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치매 전 단계의 가벼운 인지장애를 치료하는 치매 예방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127개 제약사에서 총 238개 제네릭으로 생산된다.

건약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콜린알포세레이트 건강보험 청구 건수는 매년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해 3천만 건에 달하며, 청구금액은 1조원을 상회한다. 건약은 "콜린알포세레이트가 뇌영양제·치매예방약으로 회자돼, 2018년 기준 건강보험 성분별 청구순위 2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문제는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용성이다. 이 약은 이탈리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베트남 등에서만 의약품으로 사용되지만,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허가받았다. 올해 2월 미국 FDA는 인지능력 개선 효과가 있다고 콜린알포세레이트를 광고한 회사에 잘못된 정보로 환자를 호도했다는 이유로 제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건약은 "미국에서 제제 받은 광고 내용이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 사항으로 버젓이 존재하는 황당한 상황"이라면서, "일본 후생성은 1999년부터 관련 약제들의 '뇌기능 개선' 효과가 의심스럽다며 대대적인 재평가를 시행해 최근 대거 퇴출시키고 있다"고 했다.

"철저한 검토 없이 급여기준 설정, 심각한 직무유기!"

건약은 "질환의 위중성·임상적 유용성이 떨어지는 약제의 경우 더욱 엄격한 급여 기준이 적용돼야 하지만, 비용효과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급여 기준을 설정한 것은 심평원의 고유 업무를 방기한 것"이라면서, "이는 심각한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2011년 심평원에 '뇌대사개선제로 임상적 유용성이 크지 않고 약품비 비중이 높은 동 약제의 급여 기준 설정 필요성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건약은 "당시 심평원이 제시한 급여 기준 근거는 교과서(Principle of Neurology, 2009)와 임상연구 문헌(Clin Ther. 2003;25:178-193)인데, 두 자료 모두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현 급여 기준을 증명하는 자료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해당 교과서는 치매 환자에게 '콜린 전구체'와 '아세틸 엘 카르니틴'(Acetyl L Carnitine) 2g을 병용투여했을 때 대조군 대비 기억력·인지력·언어능력에서 더 나은 효과가 입증됐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건약은 이 실험이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 △다른 약제와 병용 투여했을 때 효과를 언급했다는 점 △콜린알포세레이트 효능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내 급여 기준을 만족시키는 자료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경·중증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에게 콜린알포세레이트를 투여했을 때 인지 기능·능력이 개선됐다는 임상연구 문헌 또한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국내 급여 기준을 증명하는 자료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국내 급여 기준은 △뇌혈관 결손 또는 퇴행성 뇌질환에 의한 증세 △감정·행동 변화 △노인성 가성우울증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 중 2·3번째는 특정 질환에 의한 증세라고 보기 어려운 대다수 노약자에게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건약은 "이 약제는 2·3번째 증상으로 대부분 처방되지만, 이를 증명하는 근거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심평원의 근거 자료는 그 자체로도 과학성이 부족하며,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내용이어서 2·3번째 효능·효과를 증명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식약처 허가 근거, 무분별한 사용 근거로 전락"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범위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사항과 전적으로 동일하지만, 약제 급여 원칙에서는 허가 사항과 급여 내역을 엄연히 다른 기준에서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식약처는 제품의 안전성·유효성만을 판단하며, 심평원은 이를 근거로 약제의 비용효과성을 판단해 급여 범위를 결정한다. 

콜린알포세레이트 허가 당시 식약처는 퇴행성 뇌질환 환자 대상 임상시험자료를 제출해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건약은 "당시 식약처가 허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 파악이 어렵지만, 2010년 의약품 문헌재평가에서 검토한 자료인 '이탈리아 의약품집·임상시험자료·논문 1부'와 거의 동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식약처의 허가 당시 제출 자료는 '퇴행성 뇌질환 환자 대상 임상시험 자료'다. 건약은 "현 식약처 허가 사항인 '감정·행동 변화'와 '노인성 가성우울증'은 퇴행성 뇌질환과는 관련이 없는데도 본 약제를 무분별하게 쓰이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임상시험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됐는데, 위약 대조·무작위 배정·이중 맹검을 지키지 않고 비대조·개방형으로 설계됐으며 57명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 중 11명은 임상 규칙 위반으로 최종 분석에서 제외됐다.

아울러 투약 방법을 현 국내 허가 용법인 경구용과는 다른 '90일간 근육주사 이후 90일 경구 투여'로 설정했다. 건약은 "약제는 투여 방법에 따라 효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볼 때 이 시험은 국내 허가 사항을 입증하는 자료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심평원·복지부, 재정 누수 방치·약제 관리 실패"

건약은 "콜린알포세레이트 개발사 이탈파마코는 이 약이 전세계 15개 국가에서 판매 중이라고 주장하는데, 식약처·심평원은 이 약의 구체적인 허가 사항이나 건강보험 급여 여부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식약처의 허가 근거·심평원의 급여 근거는 이 약의 효능·효과를 증명하기 어려운 빈약한 자료"라면서, "심지어 처방의 가장 많은 사유인 '감정·행동변화'와 '노인성 가성우울증'에 대한 근거 자료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국내 약제비 비중은 21.3%로, OECD 평균 16.1%보다 월등히 높다. 2016년 15조4287억원, 2017년 16조2000억원, 2018년 17조8669억원에 달하는데,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제비 부담이 상당해 효율적인 관리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2017년 국정감사 서면 질의를 통해 심평원에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한 글리아티린 등과 같은 약제에 대한 약제비 절감 대책'을 질의했다. 당시 심평원은 "향후 본 약제의 외국 허가 현황·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관련 자료 등을 보다 더 면밀히 검토해 약제비가 낭비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급여기준을 설정하겠다"고 답했다.

건약은 "이 같은 약속에도 심평원은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재정 누수를 방치하는 심평원과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보험급여를 실시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책임을 지는데도 약제비 비중이 상당한 동 약제 관리에 실패한 복지부에 대해 직무 유기 감사를 청구한다"고 했다.

다음은 현장 질의응답. 

미국의 의약품 오인 광고에 대한 제제=벌금형이다.

미국 건기식 분류 기준=효능·효과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의약품의 경우 참조할만한 문헌이 있을 때 건기식으로 등재한다. 대개 환자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건기식으로 파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원하지 않는 감사 결과가 나왔을 경우 계획=국정감사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질의·요구를 진행할 것이다. 또, 복지부·식약처 대상으로 책임을 추궁할 계획이다. 

2017년에도 동일한 주장을 했었다=당시에는 국회의원·국정감사를 통해 관련 질의·내용을 청취하면서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었다. 이번 감사원 청구는 모아진 자료·증거를 가지고 진행한 것으로, 그 때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다. 지금은 우리가 급여 삭제를 주장할만큼 상황이 됐다.

이탈파마코 사가 진행한 임상시험의 문제=심평원·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탈파마코사의 임상시험은 치매환자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할 때는 대개 무작위 배정·이중 맹검으로 하는데, 이 시험은 비대조·개방형으로 설계됐다. 또, 어떤 환자가 약을 받는지에 대해 의사 등 관계자가 개입했다. 심지어 임상 시험에서 원래 사용하는 건 경구약이지만, 이 시험은 경구약과 주사약을 병용 사용했다. 즉, 시험 결과가 주사약에 의한 효과인지 경구약에 의한 효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질적으로 굉장히 부족한 임상연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017년 자료에서 업데이트된 내용은=방금까지 말한 내용들이 해당된다. 관련 법령,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의약품 목록·건강보험 청구 현황, 미국 FDA 보도자료, 일본 후생성 발표 자료 원문·번역본, 일본 뇌대사개선제 관련 국내 기사, 콜린알포세레이트 국내 허가 사항·급여 기준, 해외 급여 기준·사용량, 임상연구 문헌 등이 있다.

글리아티린이 일본에서는 건기식으로 바뀐 것인지=아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뇌기능 개선제가 의약품으로 등록돼있는데, 최근 일본에서 뇌기능 개선제라는 효능·효과가 삭제되고 있다.

미국·일본 외 글리아티린을 의약품으로 등재하지 않은 나라는=이탈리아와 동유럽 몇몇 국가에서만 의약품으로 등재돼 있고, 유럽 주요국이나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의약품이 아니다. 영국·프랑스·독일에서도 의약품이 아니다. OECD 국가에서는 이탈리아·폴란드·그리스만 해당되며, 그 외 국가는 의약품으로 허가되지 않았다.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지=우리는 이 약물의 효능·효과를 입증하는 자료를 심평원·식약처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해당 기관에서는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퇴행성 뇌질환에 대한 개선을 입증한 자료가 전부인데, 사실 기분·행동 변화나 우울증 증상은 퇴행성 뇌질환과는 무관한 증상이다. 치매 증상에 대한 효능을 증명하는 자료는 현재 찾아보기 어렵다. 효능효과에 대한 근거는 현재 이탈리아의약품집이 유일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따로 임상적 연구를 진행한 게 아닌, 이탈리아의약품집에 등재된 효능효과를 그대로 실은 것 뿐이다.

건약에서는 급여 삭제를 우선적으로 주장하는지=그렇다. 근거 자료 자체가 굉장히 빈약하며 건강보험 재정도 누수되고 있기 때문에 급여 삭제가 맞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약을 처방받기 위해 환자들이 계속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보다 더 중요한 환자를 진료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약국 입장에서도 면밀한 복약 지도 시간이 줄어든다. 사회 시스템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 등재로 효과가 미미한 약을 처방받기 위해 환자가 계속 병원에 오게끔 만든다. 효과가 미미하거나 불충분한 약은 건강보험 급여가 아닌 시장에서 건기식으로 활용하는 게 안전하고 확실하다고 본다. 급여 삭제가 안 된다면 현 약제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콜린알포세레이트에 책정된 가격 자체는 굉장히 비싼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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