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법안소위서 개정안 조문 삭제·심사 보류

심·뇌혈관질 유병력자 관리와 암데이터사업을 위해 환자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려던 입법안들이 줄줄이 가로 막혔다.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률의 위력이다.

국회는 지난달 16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2차 회의록을 최근 공개했다. 환자정보 관련 근거를 담은 당일 심사안건은 자유한국당 유재중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심·뇌혈관질환예방관리법개정안과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제출한 암관리법개정안이었다.

6일 회의록을 보면, 유 의원 법률안은 심뇌혈관 질환이 발병했던 사람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유병력자의 병력과 관련된 정보를 관리하고, 유병력자와 관련된 사항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유병력자의 치료·재발방지를 위한 지원시책을 수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박종희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심·뇌혈관 질환 유병력자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강화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하다고 했다. 다만 유병력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부분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봐서 검토의견을 말씀 드린다고 했다.

그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수집해야 하는 정보는 개인진료 내용과 같은 민감정보가 포함된 개인정보라는 점에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활용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관련 공익,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어떻게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정보 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인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보호 필요성을 모두 고려해서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의 취지인 유병력자에 대한 관리 강화는 적극적으로 반영하되 민감정보 처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병력자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포함한 개정안의 조문을 삭제하는 게 옳다고 수정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강립 복지부차관은 수정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도 심·뇌혈관질환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안소위는 별다른 이견없이 유병력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관련 조문안을 빼고 개정안을 의결했다.

비슷한 상황은 다음 안건인 암관리법개정안에서도 나타났다. 박종희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안은 암과 관련한 정책수립, 연구, 기술개발 등을 위해서 개별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복지부장관이 수집, 처리, 분석하고 이를 3자에게 제공하는 암데이터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정보에는 환자 질병명, 유전정보, 진료병원, 진료내용, 투약량과 투약횟수 등 수술과 관련한 내용, 혈압 등 일반검진 결과, 생활습관, 월 보수액 등이 포함된다. 암데이터사업은 이런 정보들을 국립암센터,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등으로부터 수집·연계해서 암 생존자 의료이용 현황 파악, 취약계층 암 발생률 등 분석, 암검진사업과 암 진료 질 평가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암 진단과 치료 등을 수행하는데 활용한다.

이에 대해 박종희 수석전문위원은 암 관련 정책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를 생산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의 질적수준을 제고하는 등 정보활동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하다고 했다.

그는 다만 고려할 사항이 많다고 했다. 우선 "개인정보보호법은 원칙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자가 수집 목적 외로 제3자에게 제공하려면 개인정보 주체로부터 정보제공에 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동의한 목적을 넘어서 제3자가 개인정보를 이용 또는 활용하는 경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박종희 수석전문위원은 특히 개정안에 따라 복지부장관이 수집하고자 하는 정보들은 개인의 건강과 관련한 민감정보로 개인정보 처리의 별도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민감정보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제3자 제공에 대한 개인정보 주체 동의없이 복지부장관에게 제공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불가한 사항이라고 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개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건강과 관련한 민감정보를 수집해서 사업을 추진하려면 공익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하고, 개인정보 악용 등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적 보완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개정안은 사실 복지부가 마련한 법안을 보건복지위 여당 간사위원인 기동민 의원이 대신 의원입법으로 발의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김강립 차관은 필요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쟁점이 많고 사전에 검토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다음번에 심사하도록 보류해 주는게 어떨까 싶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맞다"고 동의를 표했다. 법률안 발의자이자 법안소위원장인 기동민 의원은 유감을 표명하면서 언성을 조금 높였다. 기동민 의원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공청회도 진행했고, 복지부, 암센터 등과 수차례 논의를 진행하면서 제3자 정보제공 등은 이 법에 구체화시키지 않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의견들이 맞지 않아서 이게 마치 본질인 것처럼 왜곡돼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수 없게 됐다. 다시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기동민 의원은 제3자 정보제공 부분은 삭제하고 법안소위에서 다뤄질 것으로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암관리법개정안은 이날 제3자 정보제공 관련 조문으로 인해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 심사 보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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