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제약 청구사유 '올킬'...항소심도 고전 예상

일회용 점안제(약가인하처분취소) 소송은 예상대로 제약사들에게 버거운 싸움이었다.

지난달 26일 선고된 서울행정법원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제약사들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쳇말로 '올킬'이었다.

앞으로 항소심에서 다툴만한 거의 유일한 출구는 약가인하 처분에 따른 제약사들의 손실이 막대해서 '수인한도'를 초과한다는 걸 입증하는 것인데, 만만한 일이 아니다. 

히트뉴스는 일회용 점안제 소송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약사(원고)의 청구이유와 재판부가 각각의 주장들에 대해 판단한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해봤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이유는 약제조정기준 무효, 재량권 일탈남용, 신뢰보호원칙 위반, 절차상 위법 등 4가지였다.

재판부는 이번 약제조정기준이 모법의 위임범위를 일탈해 무효라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선 약제조정기준 개정안 행정예고, 전문가 자문회의, 제약사 등과 간담회,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고용량 점안제의 안전성이 언급되지 않았고, 식약처가 일회용 점안제 안전사용을 위해 약가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피고(보건복지부)에게 요청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런 협조요청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부가 고용량 점안제의 안전성을 약제조정기준 개정사유로 삼았다고 추인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동일한 기능과 효용(일회용 점안제)'을 가진 약제를 동일제제로 취급하도록 한 조정기준은 한정된 건강보험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따라서 현저히 합리성과 타당성을 잃었거나 소비자의 수인한도를 넘는 불편을 초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원고가 주장한 지나친 영업의 자유 제한과 관련해서는 재량권 일탈·남용에서 구체적으로 다뤘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의 처분이 사실오인, 비례원칙 위반 등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했다.

먼저 재판부는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이 개최한 안과전문의 자문회의 결과와 식약처 허가사항 등을 감안할 때 일회용 점안제 기준규격 설정은 정당하다고 봤다. 가령 안과전문의들은 점안제 1방울이 40ul이라고 할 때 환자가 잘못 넣어 흘러내리는 양을 감안해도 양안에 5방울씩 총 10방울에 해당하는 0.4ml로 충분하므로 0.3~0.5ml를 일회용 점안제의 적정용량 기준규격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일회용 점안제를 적정용법으로 사용했을 때의 예상사용량인 기준규격 내 제품 중 청구량에 따른 가중평균가나 이 가중평균가를 기초로 함량산식에 따라 산정한 가격으로 상한금액을 정한 건 건강보험재정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했다.

또 조정기준의 가격 산정방식이 생산원가를 개별적으로 반영하지 않았다거나 노인이나 수술환자 등 이례적으로 많은 양을 사용할 경우까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서 현저히 합리성이나 타당성이 결여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가중평균가는 실제로 시장에 형성돼 있는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족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낮은 산텐 제품을 제외하지 않았다고 해서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신약 등의 세부평가기준이 가중평균가 산정 시 가장 최근 연도의 연간 청구량을 기준으로 삼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법규적 효력이 없고, 설령 이 기준을 인정한다고 해도 대체약제가 최근 등재됐거나 청구량이 급격히 변화하는 경우 등에는 청구량 산출기간과 기준 급여목록 등을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복지부가 허가사항 변경 이후인 2016년 1월부터 가중평균가를 계산한 건 타당성이 인정되는데다가, 2017년 1~12월까지 가중평균가 202원과 2016년 1~2017년 12월까지 가중평균가 198원 간 차이가 크지 않아 이렇게 하더라도 제약사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약가인하 처분으로 조정된 상한금액을 수용했거나 더 낮은 상한금액을 적용받은 일회용 점안제가 전체 품목 중 약 38%에 달하는 점, 이번 처분과 무관하게 고용량 점안제는 비급여 판매가 여전히 가능한 점, 기존에 일회용 점안제 시장에서 제약사들이 얻었던 영업이익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영업이익이 감소하더라도 그 손해가 원고들의 수인한도를 초과할 정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처분은 일회용 점안제의 특수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조치이고, 원고들이 허가사항 변경 이후에도 일회용 점안제 상한금액이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신뢰하는 건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피고가 처분에 앞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고, 원고들은 일회용 점안제에 단위당 함량에 따라 동일한 상한금액이 적용될 수 있다는 걸 사전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했다.

더구나 이번 처분으로 인해 원고들의 손해가 극심해 새로운 상한금액 시행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이 신뢰의 파괴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기준변경에 따른 재평가와 상한금액 직권조정 근거를 둔 구 요양급여기준(13조4항4호)과 이와 관련한 세부사항을 공고하게 돼 있는 약제조정기준(별표4 3호가목(1)) 등에 비춰 보면, 복지부가 상한금액과 관련한 사항을 약제조정기준에 명시하지 않고 공고와 처분을 통해 정했다고 해도 건강보험법령을 위반한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허가사항 변경이후 전문가 자문회의, 제약사가 포함된 간담회, 상한금액 재평가와 열람, 이의신청과 약평위 재평가 등을 거쳐 처분이 이뤄진 점을 종합하면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없이 자의적으로 절차를 진행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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