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미라-키트루다, 사람 살리면서 수십조원 벌어

건강한 삶에 대한 인간의 염원은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그 뿌리가 깊고, 약(藥)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수단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약은 병이나 상처 따위를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이다. 치료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약리작용을 갖는 동물, 식물, 광물을 직접 사용하던 것에서부터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 개발까지 완치를 목표로 진화하고 있다.

질병을 피할 수 없는 인류가 있고, 이들의 건강한 삶에 관한 욕망이 존재하는 한, 더 나은 신약을 개발하려는 연구개발 활동은 지속될 것이며 제약바이오산업에겐 석양이 들지 않을 것이다.

질병치료와 신약의 가치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의약품 즉 신약(新藥)은 환자에게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생산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가 2017년 <신약의 가치: 비용 대비 혜택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암 치료제 등장으로 암 진단 환자 3명 중 2명이 최소 5년 생존율을 보이는 시대에 이르렀다.

신약은 불치병 치료 및 치유에 가장 강력한 해결 방안이다. 간 이식 및 간암의 주요 원인으로 증가 추세인 C형 간염환자들은 신약이 나와 8주에서 12주 치료를 받고 90% 가량 완치되고 있다. 한 때 치료제가 없어 불치의 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으로 인해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에이즈(HIV/AIDS)는 어떤가. 신약과 함께 치료법의 발전으로 이제 미국과 유럽 5개 국가에서 사망자 수가 최고 정점 대비 85% 하락했다.

생존율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의약품 이름만으로 신약의 가치, 즉 쓸모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1세대 세포독성항암제 탁솔, 2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 3세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등은 그 시기를 관통하는 대표적 신약들이다. 특히, 91세 나이의 뇌종양 환자였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면역항암제 치료해 완치되었다고 선언한 것은 면역항암제의 화려한 신고식이자 '왜,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질병의 치료 못지 않게 삶의 질 개선 약도 '건강한 삶'의 관점에서 쓸모가 크다. 발기부전치료제가 그렇고 '질병'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활발한 비만치료제 또한 같은 영역이다.

그런가하면 신약은 건강보험 재정에 큰 절감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는 종전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 치료를 신약이 대체해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미래의 이야기를 통해 신약의 가치도 추정해 볼 수 있다. KRPIA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발병을 단 5년 늦출 수 있는 신약이 나온다면 2050년까지 3760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만성질환으로 집 안에 머물거나 병원 침상을 지키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신약을 통해 생산적 활동에 나설 수 있는 경제적 가치도 간과할 수 없다.

신약의 산업 경제적 가치

해마다 신약이 나오고 있지만, 건강한 삶에 관한 의학적 미충족 수요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면역항암제가 나왔지만, 모든 암 환자를 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당뇨치료제들이 세대를 달리하며 출현했어도 치료 현장의 의료진들은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다.

이런 까닭에 신약 연구개발자와 제약기업들에게는 가능성이 있는 틈새며, 제약바이오시장은 성장할 수 밖에 없다. 2019년 판 <이밸류에이트 파마(Evaluate Pharma)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글로벌 전문의약품 매출은 연 평균 6.9%로 늘어나 1조1800억 달러 규모로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계에 신약 연구개발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의약품시장의 안정적 성장 가능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혁신적인 신약 하나가 이뤄내는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큰 것도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성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성인 크론병, 건선, 궤양성 대장염, 베체트 장염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로 쓰이는 애브비의 휴미라 2018년 매출은 204억8500만 달러에 달한다. 국내 전체 의약품 시장 규모와 맞 먹는다. 휴미라의 경우 특허만료로 2023년 유럽과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들이 출시되면 매출이 낮아지겠지만, 그 틈새는 바이오시밀러사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에게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휴미라가 내준 왕좌에는 지미 카터를 살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앉게 될 것이며 예상되는 매출은 17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신약의 경제적 가치, 대한민국도 뛴다

1990년 무렵부터 신약개발에 뛰어든 한국 제약산업은 연구개발과 오픈이노베이션을 가속화하며 글로벌 시장을 넘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30여개 신약을 개발했으며, 50개 이상 기업이 글로벌 고객들에게 케미칼 신약은 물론 항암 항체치료제 등 바이오신약, 바이오시밀러와 같은 다양한 의약품 개발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미래도 밝다. 100여개 기업이 1000개에 육박하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는 덕분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도 날로 풍성해지고 있다. 글로벌 수준의 신약개발 기술역량과 세계 8위의 임상 경쟁력 등을 기반으로 제약기업, 바이오벤처와 스타트업, 다수의 연구중심병원과 바이오클러스터, 벤처 캐피탈 등이 협업하며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우수한 IT 인프라와 BT 경쟁력, 빅데이터가 결합 된 인공지능까지 활용되면 휴미라와 같은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개발하는 영광스러운 순간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정부가 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을 위해 예산을 투입하고, 양질의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방안 논의도 고무적이다.

2014년 만해도 '조 단위의 후보물질과 기술'을 다국적 제약회사에게 수출할 수 있다고 누가 상상했겠는다. 얼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 단위 기술 거래를 심심치 않게 바라보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량이다.

섬나라 일본의 도시바, 소니, 파나소닉이 거대한 기업으로 우쭐거릴 때 미래를 꿈 꾸었던 삼성과 금성(LG)이 도전했고, 끝내 그들을 넘어섰다. 지금 제약바이오산업에도 휴미라와 키트루다를 꿈꾸는 연구자들이 적지않고, 기업의 열망도 뜨겁다. 인류의 건강에 대한 염원에 응답하고, 대한민국 미래 성장의 기반에 기여하는 신약 개발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제약바이오산업은 자랑스러운 일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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