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공단 이혜재 박사의 고비용약 연구

지난해 '고가의약품'을 개념화 해보자는 엉뚱한 기획취재를 했던 적이 있었다. 팀원들과 공동으로 진행했었는데 개념화에 대해서는 결론을 유보했었다.

다만,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놓을 수 있었는데, 개인적인 소견이라면서 "단가에 수량을 곱한 총액으로 판단해야 한다"(국회 보좌관), "시장논리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고 비싼 수준의 약"(제약계), "기존 투약비용의 3배 또는 전체 치료비용의 2배 이상을 동시에 만족하는 약"(제약계), "GDP 대비 1.5~2배 이상의 약"(임상의사) 등으로 정의하는 게 좋겠다고 했었다.

이들 전문가들은 그나마 진지한 고민 끝에 의견을 전해왔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가의약품'이라는 막연한 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게 의미가 없다거나 모르겠다고 기권했었다. 기자가 데일리팜 의약행정팀장으로 재직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정부가 '고가의약품', 더 정확히 말하면 '고비용의약품'에 대한 관리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최근 열린 '2018년 상반기 보험약가교육'에서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이혜재 부연구위원이 '건강보험 고비용의약품 현황과 관리방안'을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접했다. 이날 발표 PPT는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2017년도 정규과제 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또 지난해 12월 전문언론을 통해 해당 보고서는 이미 보도됐었다.

히트뉴스는 고비용의약품에 대한 관리방안 마련이 좀 더 가시화된 상황을 감안해 이혜재 부연구원 발제를 다시 정리해봤는데, 역시나 눈길을 끄는 건 '고비용의약품'의 개념화다.

3가지 차원의 접근=연구자는 고비용의약품 현황 분석을 위해 기게적 접근, 개념적 접근, 제도적 접든 등 3가지 측면에서 고비용의약품 개념화를 시도했다. 기계적 접근은 단순히 건강보험 청구액 상위품목 중 일정 금액 수준 이상으로 자르는 것이다. 개념적 접근에서는 표적치료제, 면역치료제, 세포치료제 등 최근 등재가 잇따르고 있는 절대값이 비싼 치료제들을 포함시켰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역시 교집합이 그려지는 위험분담계약, 경제성평가 면제특례 등을 적용받은 약제들로 선별했다.

기계적 접근은 청구액 500억원 이상인 고비용 약제를 중심으로 분석이 이뤄졌다. 고비용약제는 2010년 12개에서 2011년 17개, 2012년 19개, 2013년 21개, 2014년 24개, 2015년 24개, 2016년 22개 등으로 증가하고 있다. 청구액 비중은 2010년 7.4%에서 2014년 12.7%로 높아졌다가 2016년엔 11%로 조금 낮아졌다.

표적치료제, 면역치료제, 세포치료제의 경우 항암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한 게 특징인데 높은 약가로 등재 시 논란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표적항암제 청구액은 2010년 2339억원에서 2016년 5785억원으로 연평균 16% 증가했다.

연구자는 최초의 개인 맞춤형 유전자 변형 CAR-T 세포치료제인 노바티스의 킴리아에 대해 주목하기도 했다.

위험분담제 약제 청구액도 품목 수와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2014년 1월 20억원 수준에서 2017년 1월 1800억원 수준까지 늘었고, 경평면제 약제 또한 2016년 5월 5억원 미만에서 2017년 5월 250억원까지 청구액이 커졌다.

연구자는 이런 고비용의약품의 등장은 건강보험 재정부담을 늘리면서 동시에 치료의 질과 관련한 건강보험의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고 했다. 또 청구액이 크고 증가하는 약제들은 시장확대 요인과 고가신약 등재요인에 의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고비용의약품 관리방안=연구자는 전체 급여의약품 사후관리 틀 내에서 고비용의약품 관리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리범주를 저가와 고가, 시장확대 효과의 크고 작음 여부를 교차시켜 4개로 유형화 해 사후관리 방안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시장확대 효과가 적고 가격도 낮은 약품군을 '유형1'로 했는 데 이 경우는 사후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시장효과가 큰 저가 약품군은 '유형2'로 설정했다. 아토르바스타틴, 엔테카비어, 테노포비어 등 현재 청구액 최상위 권에 있는 성분들이 해당되는 유형이다. 연구자는 이 유형에는 사용량-약가협상을 개선(일반명 단위 대상선정)하고 제네릭 간 가격졍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부적으로는 협상단위 조정, 평가시점 조정(사용량 협상 유형다), 약가인하율 확대, 협상기준 추가 등을 예시했다.

시장확대 효과가 작은 고가 약품군은 '유형3'으로 설정했다. 글리벡 등이 해당되는 데 제네릭 등재 시 약가가 인하되는 현 체계를 유지하면 된다고 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건 '유형4'로 설정된 시장확대 효과가 큰 고가 약품군이다. 하보니나 소발디, 면역항암제 등이 대표적인 약제들인데 총액제한형 위험분담계약, 고비용약제 사용량-약가협상 별도 트랙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연구자는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약가인하율 제한 조정, 협상기준 추가 고려(탄력적 적용), 고비용의약품 특례 신설 등을 거론했다. 고비용의약품 특례의 경우 위험분담계약 개선과 강화의 영역으로 고려된 것이다.

연구자는 "우리나라는 가치기반 가격결정과 사후관리체계의 기본 울타리는 갖췄지만 고비용의약품들의 도입에 맞서 현 사후관리 기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연구는 다각도의 분석을 통해 몇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는 데 현 시스템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했다.

이어 "의약품이 이제 단순한 물질을 넘어 새로운 개념과 비용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치료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 치료의 질 관리에 대한 고민을 앞당겨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건보공단은 이 보고서 등을 토대로 사용량-약가연동제를 중심으로 사후관리 개선방안을 검토 중인 데, 곧 복지부와 협의도 시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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