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바이오는 일본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 이달 초 일본 동경에서 열린 바이오, 제약, 재생의료, 의료기기 전시 성격의 '인터펙스'라는 전시회에 다녀오게 되었다. 업계에서 제법 오랜 기간 있었지만 전시회는 처음이었다. 3일간 열린 행사장은 폐장시간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금껏 다녀왔던 학회는 하루이틀 지나면 참석자가 거의 빠져나갔다. 이 점에서 이 전시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의 단톡방을 살펴보니 누군가가 '일본 가지맙시다. 사지맙시다'라는 문자를 보낸 것을 보고 '나 지금 일본에서 돌아가는 길'이라고 댓글을 보냈다. 김포에 내려 다시보니 무플이었다. 괜히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적제제로 회사생활을 시작한 나는 자급자족(self sufficiency)이란 말에 아주 익숙하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지만 혈액의 목표가 그랬고 혈액제제가 그랬다. 그러다가 혈액제제의 자급자족은 진부한, 시대에 뒤떨어진 구호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소위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던 1990년대였다. 나중에 사연을 알고보니 미국이 수퍼301조를 동원하며 위협을 가했던 1990년대의 혈액제제 개방압력은 일본에서 미국 수입혈장으로 만든 혈우병치료제가 AIDS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일본이 미국혈장의 수입을 금지하자 신시장개척의 대안으로 한국을 선택하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AIDS 바이러스를 불활화시키는 기술이 없는 자국의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차일피일 이 기술로 생산된 수입품의 허가를 안해주고 있다가 대형사고를 친 것이다. 이 스캔들로 여러 공무원들이 죄값을 치르고 해당회사는 결국 다른 곳으로 합병을 당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혼란스러웠다. 당시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에도 일본의 규정이나 트렌드는 우리에게 오랜기간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나는 외자회사로 옮겼고 백신공장을 유치한답시고 그 회사에서 출장 온 직원들과 우리나라의 여러 회사의 정부기관을 돌아다녔다. 같니 다니던 중 그들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일본의 바이오는 유럽에 비해 20년이 뒤떨어진 상태이며 백신은 아마 영원히 못쫓아올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아니꼬왔다. 당시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우리나라의 많은 분야에서 롤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벨기에 같은 쥐방울만한 나라의 회사가 함부로 할 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아니면 그순간 무의식중에 오리엔탈리즘이 작동을 했거나. 그런데 지나보니 그말은 사실이었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의 강제징용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데서 비롯된 일본의 경제보복 기사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일본 정부가 일본회사만 보유하고 있는 의약품을 한국에 수출금지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생산에 필요한 핵심소재와 또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상상이 된다. 그럴 경우 한국정부는 일본 정부에 제발 살려달라고 싹싹 빌며 매달려야 하는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그런 제품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적어도 대체할 약제는 있어 보인다.

정부가 백신주권을 선포한 지 십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백신은 한 개도 없다. 글로벌로 눈을 돌린 지 십여년의 결과다. 그리고 여기서 외연을 확장하면 일본회사만 생산하는 의약품이 어떤 것인지는 좀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적으로 제품들을 국가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주어가며 개발시키거나 기술 도입을 하는 방법은 어떨까?

신약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시에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의약품의 공급일 것이다. 국내에 필요한 모든 의약품을 국내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꼭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대책은 늘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첨바법'이 일본의 재생의료법와 차별화된 방향으로 정리된 것은 매우 훌륭한 결정이다. 바이오는 제약분야는 일본따라하면 큰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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