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Check] 사람이든 사물이든 꼬리표는 한번 붙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백혈병표적항암제 글리벡, HIV치료제 푸제온, 혈우병치료제 노보세븐 등의 약제는 다국적제약사가 고가의 가격을 요구하며 논란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도 의약품 영역에서 유사사건이 일어나면 언제나 기억 속에서 호출된다. 아직 사태가 매듭지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 명단에 '리피오돌울트라액(아이오다이즈드오일)'이 더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리피오돌은 이런 요건을 다 갖췄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우선 전세계 독점권을 갖고 있는 회사가 공급 중단계획을 알리고 가격인상을 요구했다. 한국 가격이 너무 싸서 더는 공급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피해는 곧바로 환자들에게 이어졌다. 조영제인 이 약은 간암환자에게 시행하는 경동맥화학색전술(TACE)에 항암제와 혼합해서 사용한다. 간동맥색전술이 화학색전술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화학색전술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약제다. 지난 3월 게르베코리아의 공급중단 계획 통보 이후 최근 대형병원조차 재고가 바닥나기 시작해 시술을 연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게르베코리아의 요구를 사실상 들어주는 쪽으로 약가인상 조정신청 신속 평가를 거쳐 현재 약가협상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때문에 환자단체가 "간암환자를 볼모로 벼랑 끝 약가협상을 진행한다"고 게르베 측을 비난하고 나선 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보험약가도 보자. 리피오돌이 국내 허가를 받아 건강보험에 등재된 건 1999년이다. 당시만해도 림프조영.침샘조영에만 쓰도록 돼 있었는데, 보험약가는 앰플당 8470원이었다. 이후 2000년 5월 8410원으로 낮아졌다가, 2012년 11월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됐고 다음해인 2013년 2월 원가보전을 이유로 약가가 현 수준인 5만2560원으로 6배 이상 인상됐다. 그 사이 리피오돌은 2015년 간암 경독맥화학색전술로 사용범위가 넓어져 실제 사용량이 이전과 비교해 급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게르베 측이 현재 요구하는 가격은 26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최초 등재가격 대비 30배 이상 더 비싼 가격이다.

통상 신약은 신규 등재 이후 특허가 만료되면 가격이 급감한 뒤 지속적으로 인하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런데 리피오돌은 역순, 그것도 가속 역주행을 하고 있는 모양새여서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1965년 3월31일 프랑스에서 처음 시판허가를 받은, 국내에서는 특허권도 없는 이른바 '올드드럭'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53년전에 만들어진, (이 약의) 높은 가격과 독점권을 정당화시키는 '연구개발비'를 거론하기는 것조차 민망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간암환자를 살리는데 꼭 필요한 약이 하루 아침에 '환자를 볼모로 잡고' 가격을 협상하는 '갑질의 대명사'로 전락하게 된 이유들이다.

여기서 한꺼풀 더 들어가보자. '갑질'이든 '정당한 명분'이든 '리피오돌'의 힘은 독점권에서 나온다. 대체 세상에 나온 지 53년이나 된 약이 전세계적 독점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이 작아서 경쟁체제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약이 수십년 간 그나마 계속 생산될 수 있었던 건 프랑스계인 게르베가 조영제 전문기업이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리피오돌은 한국 허가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50이 넘은 나이에 획기적인 혁신을 이룬다. 림프조영·침샘조영제에서 간암 경동맥화학색전술 약으로 변신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청구량을 보면, 간암환자 약 1만4000명이 리피오돌을 썼다. 림프조영 등 다른 용도로 쓴 환자는 약 2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만 봐도 이 '올드드럭'은 첫 허가 이후 50년이 넘은 시점에서 시장을 7배나 더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치료영역을 만들었다.

다른나라도 다르지 않지만 한국의 약가제도는 사용범위가 확대된 의약품은 보험약가를 인하하게 돼 있다. 건강보험 재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제약사도 추가 부담을 일부나마 '쉐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게르베코리아가 전세계적 초과수요를 이유로 2015년부터 수 차례 약가인상을 요구했으니 복지부나 심사평가원이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건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게르베 측의 해명을 들어보면 게르베코리아의 이런 모순적인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리피오돌은 양귀비 씨 오일에서 추출한 요오도화지방산 에틸 에스테르를 주성분으로 한다. 양귀비 씨라는 천연물이 일단 확보돼야 원료를 만들 수  있는 데, 천연물 재료는 특성상 기후나 사회적 요인 등의 영향을 받아 계획된 공급량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여기다 경동맥화학색전술로 사용범위가 넓어지면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요가 폭증해 수년전부터 전세계적 차원에서 수급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령 중국의 경우 최근 수요가 6만개에서 12만개로 크게 늘었고,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도 급증세다. 한국은 연 3만개 정도 씩 공급돼 왔다.

게르베코리아 측 대변인은 이렇게 해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부족 사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본사의 선택지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나라에 우선 공급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었다.

한국지사인 게리베코리아 측이 터무니없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사용범위가 대폭 확대되는 상황에서 약가인하가 아니라 거꾸로 약가인상을 요청하게 된 건 한국을 우선 공급 국가에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회사 측 대변인은 "사실 2년 반이 넘게 일부 손실을 감수하면서 제품을 공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더는 버틸 재간이 없기도 했지만 본사 우선 공급지에 한국이 계속 포함되도록 하려면 약가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2015년부터 계속 조정신청을 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던 중 본사에서 한국을 우선 공급지에서 배제해 지난 3월 식약처에 공급중단 예정 통보했다는 것이다. 회사 측 대변인은 "공급중단 통보는 60일 이전에 하도록 돼 있다. 일단 중단계획을 정부에 알리고, 원가보전을 요청했다"고 했다. 한국법인 입장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조정신청을 무시해 사건을 더 키웠다는 야속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수백개나 되는 한국의 제약사는 리피오돌을 만들 수 없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리피오돌 수급문제가 불거져 국내 위탁생산이 가능한 지 타진해 봤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2곳이 리피오돌 원료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게르베와 게르베의 자회사였다"면서 "원료 수급이 안돼 국내 위탁생산은 불가한 것으로 자체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환자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조정신청 평가(심사평가원)와 약가협상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가격인상을 위해 퇴장방지약 지정도 이미 해제했다.

리피오돌 사태를 보는 우리사회의 우려는 이달 초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발언을 통해 집약할 수 있다. 환자단체 위원은 "제약사가 의약품 공급을 무기로 약가인상을 요구하는 데 대한 정부차원의 대응방안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고, 보건의료산업노조는 "공급과 관련해 제약사에 의무부과 조항을 만드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간호협회 위원은 "원가반영 또는 공급관련 제도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고, 조세재정연구원 위원은 "이번 사례가 향후 약가인상을 위한 제약사의 방법론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실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긴급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필수의약품 안정적 수급방안을 모색하면서 이른바 공공제약사 도입이나 필수의약품 컨트롤타워 구축 필요성을 재환기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게르베코리아 측 대변인은 "일련의 과정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본사 차원에서 국제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약가협상이 원만히 타결돼 한국이 일단은 우선공급 대상지에 포함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히트뉴스가 주목한 '리피오돌을 위한 변명'은 '게르베 본사'가 아닌 '게르베코리아', 즉 한국법인을 위한 것이다. 또 게르베 측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 사태의 본질의 '갑질적' 요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환기시키는 데 이번 '히트체크'의 목적이 있었다. 또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질타나 공분 만큼이나 국회 공동토론회(권미혁 의원&건약)와 같은 진지한 논의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